내 침대의 가격
처음 바르셀로나에 왔을 땐 한인민박의 여성 도미토리에서 묵었다. 한밤 중 떨어지는 비행기였고 어렵사리 택시를 타고 불러준 주소에 도착했을 땐 굳은 얼굴의 사장이 서 있었다. 실제 민박의 주소는 조금 떨어진 다른 곳이라고 했다. 도미토리의 모든 침대는 다 차 있었고 나에겐 매트리스 한 장만이 덜렁 주어졌다. 이층침대를 디귿자로 두고 그 가운데 바닥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엄연한 계약 위반 사항 같았음에도 그걸 항의할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 밖에도 여러 규칙들은 깐깐하고 길게 이어졌다. 몇 시 이후엔 모두 숙소에서 나가 몇 시까진 들어오면 안 되며 몇 시 이후엔 전체 소등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등 내 돈 주고 내가 묵는데 꼭 공짜로 묵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거실의 공용 컴퓨터를 사용하려다 면박을 당한 적도 있다. 말인즉 공용 컴퓨터는 '그' 컴퓨터가 아니라 '이' 컴퓨터란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었던 게 '그' 컴퓨터는 잘 보이는 곳에 있고, '이' 컴퓨터는 구석에 있어 보지도 못한 것임에도 나는 그냥 '네.' 하고만 말았다. 다 큰 성인들을 하숙생, 혹은 집이 망해 급히 피난 온 군식구처럼 대하는 곳, 그러나 그걸 상쇄하는 유일한 장점은 오직 밥, 그것도 푸짐한 한식이었다.
졸린 눈 비비며 식탁에 앉는다. 일찌감치 나갈 준비 다 하고서 밥만 먹으러 온 이도 있고, 나처럼 막 일어나 앉은 이들도 있다. 널따란 식탁 가운데는 전기그릴이 자리 잡았다. 그 위에 숭덩숭덩 큼직하게 썬 삼겹살이 펼쳐진다. 아침 댓바람부터 삼겹살?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다들 열심히 먹고 있다. 야무지게 쌈도 싸고, 잘 익은 김치도 척척 걸쳐 먹는다. 한인민박의 기조는 이러했다. 주머니 사정 빤한 젊은이들이 매끼 외식하기는 힘든 일이다. 아침과 저녁을 푸짐하게 줄 테니 마음껏 먹고 가라. 점심을 건너뛰어도 좋을 만큼 많이 먹어도 좋다. 잘 먹고 잘 다니고 조심히 돌아와라. 밥술 뜨는 모습만 보면 다들 무슨 훈련 중인 국가대표 선수들처럼 보였다. 대단한 아침 식사가 끝나고 나면 거실 가운데 모여 앉는다. 각자의 일정과 상황에 맞춰 간단한 코스 브리핑이 끝나면 조악하게 복사한 지도를 들고 다들 나섰다.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누구들과 몬주익을 함께 오르고 밤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보았다. 그게 나의 첫 침대였다.
여성 도미토리도 혼성 도미토리도 나는 군말 없이 잘 묵었다. 에어비앤비를 만나선 더욱 다양한 숙소를 찾아다녔다. 직장인 n년 차, 내가 정한 숙소비의 마지노선은 1박 10만원 정도였다. 놀랍게도 그 금액으로 집 전체를 사용한 적도 여러 번이다. 뉴욕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 파리 4구의 다락방도 그러했다. 작디작은 스튜디오나 건물 맨 꼭대기 층의 하녀방이었지만 나는 그곳에 머물기를 기꺼이 즐거워했다. 더운 나라로 향하면 사정은 훨씬 나아졌다. 메인 건물과 독채는 물론 마당에 전용 수영장이 있는 주택도 1박 15만원에 빌릴 수 있던 발리, 그곳을 생각하면 마음이 절로 푸근해졌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 오면서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물론 시간 차도 있고 그에 따른 물가 차이와 적당한 운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경험 이후 나는 민박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에어비앤비를 샅샅이 훑고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그렇게 호스트 집의 방 한 칸을 빌려 같은 지붕 아래 잠시 잠시 살았다. 방을 제외한 공간들을 공유하지만 그렇다고 가격은 결코 저렴하지 않은 집들에서 우리는 냉장고도 식탁도 나눠 쓰고 때론 주인집 강아지의 혓바닥도 공유했다. 오또는 검은색 닥스훈트로 호기심이 왕성한 강아지였다. 아침이면 길쭉한 코로 방문을 밀고 들어와선 손이며 발에 얼굴을 부볐다. 아직 아기 축에 드는지라 이따금 바닥에 배변 실수도 하곤 했는데, 호스트 엘리가 그때마다 미안해하며 열심히 대걸레질을 했기에 그럼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겨버렸다.
그런 자잘한 실수나 해프닝에 좀 더 조심스러워진 게 이번 여행이다. 유아 동반이니만큼 집을 공유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스트에게도 조심스럽고 우리에게도 그랬다. 그렇다면 집 전체를 찾아야 할 텐데 당연하게도 가격이 확 뛰었다. 예전 여행보다 여정이 길어 더 부담도 되었으나, 이왕 마음먹은 것 아쉽지 않게 지내다 가겠노라 생각했다. 그 결과 한 달 조금 못 미치는 기간 동안 두 군데 숙소를 정했다. 마음 같아서는 세 군데 정도 머물러보고 싶었지만 아이 데리고 하는 이사가 여간 복잡한 게 아님을 알기에 아쉬운 마음을 접었다. 두 집의 조건은 비슷했다. 방 3개, 화장실 2개, 거실과 부엌 그리고 발코니가 있는 집. 식사와 빨래가 가능하도록 기본 가전이 잘 완비되어 있는 곳. 다른 여행에 비해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도 길 터이니 여유 공간이 넓은 곳. 비교적 평점이 좋은 곳. 시내 한복판은 소음 때문에 피했다. 일정이 긴 만큼 주거지에 가까운 곳이 더 편할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정해놓고 나니 여행이 한층 실감이 났다.
비행기표 구매와 숙소 예약을 마치자 뭉텅이의 돈이 사라졌다. 모든 결제는 내 통장에서 이뤄졌다. 들고 나는 숫자들을 바라보며 나는 애매한 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나는 배포 넘치게 이렇게 저렇게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이마만큼의 돈을 불려놓고 이를 밑천 삼아 이번 여행을 우리 가족의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겠다고 천명했었다. '돈을 내가 낸다, 너희는 나만 믿고 따라 와라.' 멋지긴 진짜 멋졌는데 가장 중요한 대목이 '이렇게 저렇게 이렇게 저렇게' 였던 터라 여행 일정은 열 달에서 한 달로 줄었다. 그러니까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부동산 가격은 고공 행진하며 각자 침 튀기게 수익률을 자랑하던, 바로 그 호황기의 배포가 십 분의 일로 겸손히 쪼그라들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했다. 음, 날이 갈수록 자산의 크기가 줄어드니 비행기표와 숙소비를 미리 결제하길 잘했네! 하고.
매달 결제 금액 맞춘다고 열심히 팔아제끼면서도 마지막까지 들고 있던 것은 에어비앤비 주식이었다. 이건 상장된 다음 날 사서 줄곧 들고 있으며 마음 깊이 뿌듯해했다. 그러니 어수선한 시장 상황에서도 팔기는커녕 주변에 열심히 사라고 부추기고 다녔다. 말은 언젠가 코로나19 비상상황이 해제될 테니 그에 앞서 미리 주식을 사 두라는 거였지만, 그래서 애처로운 떴다방 같은 느낌도 풍겼지만 사실 그 허풍 속엔 진심이 있었다. 나는 에어비앤비 정신을 사랑하고 또 사랑했다. 초창기 창업자들의 에어베드 일화에서부터, 내가 머물렀던 침대들의 기억, 그리고 그게 좋아 내가 꾸렸던 에어비앤비의 추억까지. 여행자들을 위해 준비해 내어 주던 침대와, 주고받는 돈을 떠나 진하게 오고 가던 마음들을 사랑했기에 나는 에어비앤비 주식을 덥석, 아주 덥석 사들였었다. 아름다운 우상향 그래프를 보며 돈을 넣고 또 넣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나는 생경한 느낌과 마주하게 된다. 알고 보니 내가 고른 두 곳의 숙소는 모두 각각의 회사에서 운영하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호스트에게 에어비앤비 메시지를 보내나 그는 왓츠앱 메신저 혹은 개인 핸드폰으로 연락하길 원한다. 체크인하는 날엔 내가 아는 호스트의 이름과 다른 이름의 담당자가 나를 맞이한다. 쾌활하나 명확히 선을 긋는 태도로 숙소 사용법에 대해 설명한다. 첫 번째는 페르난도, 두 번째는 미마. 그들은 아마 최저시급 정도를 받으며 단기 고용된 이들 같았다. 달이나 주 단위가 아닌 각각의 건에 대해서 시급을 받지 않을까. 그러니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 안에 각자의 플랫폼을 다시 차려놓고, 게스트의 체크인과 체크아웃 사이의 과정들을 다 외주로 처리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머무는 동안 집을 청소하는 이를 만났지만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그도 우리의 이름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 방은 짐만 보관하고 침대는 쓰지 않았으니 침구 교체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라고 말하자 땡스, 하고만 답했을 뿐이다. 이메일을 체크하자 난데없는 대금 청구 메시지가 와 있기도 했다. 내가 수건을 더럽혔으니 그에 대한 비용을 청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첨부된 사진 속 수건은 옅은 초록으로 물들어있었다. 음? 음! 이건 내가 사용한 게 아닌데? 무엇보다 난 아직 숙박 중이잖아. 체크아웃한 것도 아니라고. 당황한 마음에 항의하는 메시지를 보내니 사과는커녕 받은 메시지를 캡처해서 보내달라고 한다. 그러면 회사에서 경위를 파악해 보겠다며.
여기까지 이르자 이건 내가 생각하던 에어비앤비가 아니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내 집에 머무는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에게 방을 내어주는 내가 누구인지 부드럽게 알리고, 지내는 동안 서로를 배려하며 일상을 공유하던 것은 이제 다 옛말이 되어버린 걸까. 너희 대체 왜 그래, 라고 묻는다면 그런 질문을 하는 나를 꼰대처럼 여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련 없이 에어비앤비 주식을 전액 매도했다.
달러로는 분명 손해인데 환율이 뒷받침해주어 손실의 상당 부분이 만회되는 기묘한 경험을 하면서 더더욱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예수금을 환전하기까지 며칠을 기다리는 사이 환율이 계속 올랐기에 손해는 더욱 줄고 줄었다. 그래, 환율 1100원에 사서 1400원 가까이 파는 것도 대단한 경험이지. 자축하기엔 씁쓸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이번이 특수한 경우였고 아직 세상 많은 곳엔 우리가 겪었던 숙소들처럼 독창적인 아름다움 혹은 호스트와 게스트 사이의 친밀한 관계가 살아있지 않을까. 아직도 가끔 예전 게스트들의 안부 연락을 받으며 그때 생각을 하는 나로선 완전히 미련을 버리진 못하겠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그런 숙소를 만들고 싶으니까. 그런 호스트가 되고 싶으니까. 주식을 팔았을지언정 마음만큼은 아직 충분히 연연해하고 있으니까. 약간 구질구질하지만 그런 것도 나니까 이를 어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