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알록달록한 밤

BCN

by 한량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는다. 데이트를 준비하는 기분이다. 무릎 위로 훌쩍 올라오는 기장의 원피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선다. 약속 장소로 정한 레스토랑은 7년 전 우리가 갔던 곳이다. 빠듯한 예산에도 두 번이나 갔던 곳. 그곳은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달과 나는 입맛을 다시며 골목길을 걷는다. 시간이 남아 작은 책방에도 들러본다. 나무로 된 나뭇바닥은 걸음마다 낑낑 앓는 소리를 낸다. 서점에 어울리는 소리다.

이윽고 횡단보도 저 편에서 두 사람이 걸어온다. 아니 와락 달려왔나. 우리는 반가워 호들갑을 떤다. 우리의 만남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만큼 귀한 인연이다. 4년 전 여름, 우리는 집주인과 세입자로 만났다. 숲 속 언덕에 있는 집엔 현관문이 둘 있었다. 같은 번짓수 아래 빨간 대문과 노란 대문. 이 동화 같은 주소는 실제 우편물을 받아보는 주소이기도 했다.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은 것을 함께 보고, 더운 여름 서로의 마당에 물을 뿌려주며 가끔 식사 초대에 응하는 사이 4년이 흘렀다.


옆집 가족이 몰타에 가고 나선, 그들을 만나러 그곳까지 날아가기도 했다. 지중해 작은 섬에서 다시 만난 것을 자축하며 기울이는 잔. 그러다 열이 오르면 바다로 첨벙첨벙 뛰어들었다. 거기선 맨몸으로 만난 시간보다 물 속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집주인과 세입자라기엔 어딘가 이상한 사이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차를 넘어 통화를 하고, 그 틈엔 인생의 향방에 관한 의논도 끼어든다. 마치 그러길 기다렸다는 듯이 의논할 거리들이 자라났다. 지난 겨울, 달과 내가 몹시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 들려준 위로를 기억한다. 밤이 깊도록 마주 앉아 식은 차를 마셨다. 눈물을 보인 것도 처음, 그래도 부끄럽지 않았던 것도 처음이었다.


그랬던 우리가 여기,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만난다. 함께 메뉴판을 들여다 보고, 미니 핫도그의 정말 작은 사이즈에 웃는다. 아스파라거스와 양송이 구이에 감탄하고, 소금이 묻어 짭쪼롬한 손가락을 빤다. 늘어놓은 타파스 접시들 위로 밀린 사연들을 펼쳐놓는다. 접시를 물리는 사이, 각자 앞에 둔 출발을 응원하며. 난 예전부터 그게 좋았다. 계속 변화하며 나아가고, 행복을 탐구하는 모습. 십 대의 자녀를 둔 엄마. 그 역할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흐트러 놓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책 밖의, 미디어 밖의 직접 마주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나의 귀한 참조목록.

날이 차차 어두워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몬주익 분수쇼를 본다. 어두워진 하늘엔 오색의 조명이 한창이다. 거침없는 물보라가 머리 위로 날린다. 음악도 분수도 멈춘 밤, 우리는 에스파냐 광장에서 손 흔들며 헤어졌다. 시를 읊지 않아도,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굳게 믿으며. 날짜가 찍힌 필름 사진 덕에 어릴 적 유원지 풍경이 떠오른다. 알록달록한 배경과 그보다 더 알록달록한 얼굴들. 함께 찍은 우리들 사진은 그래서 더 기념사진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비행운으로 가득한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