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팔-개월
가우디의 ㄱ 근처에도 가지 않고 일주일이 흘렀다. 유아차 바퀴 하염없이 굴리며 일상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시장, 놀이터, 마트, 놀이터, 도서관, 놀이터, 공원, 놀이터, 수영장, 놀이터, 바닷가, 놀이터 이런 식이다. 그나마 병원이나 약국 근처를 배회할 일은 없었으니 참으로 다행인 셈. 한 달 살기를 기획하고 준비하며 많은 것을 예측하려 애썼지만 도통 알 수 없는 것은 꼬마가 이곳에서 맞이할 27개월과 28개월의 모습이었다. 다 자란 우리야 같은 해에 태어나면 다 친구에다 위아래 몇 살 쯤은 그냥 맞먹기도 하지만, 꼬마들의 한 달 한 달은 저마다 다르다. 말과 행동을 비롯한 전반적인 성장 모두가 그렇기에 같은 해의 1월생과 12월생 사이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아직 겪어보지 않은 이후의 일들에 대해선 역시 선배들의 조언으로 짐작할 수밖에.
'28개월? 말 그대로지 뭐. 발음 나는 대로 읽어봐. 이-십팔-개월. 딱 이런 느낌?'
이런 귀띔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더없이 겸손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25개월부터 말문이 트인 꼬마의 언어는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었으며 그건 곧 자기 생각을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촘스키? 그래, 촘스키가 말한 폭발적인 언어 습득 능력. '무엇과 무엇이 똑같다.' 라는 말을 어제 했다면, 오늘은 '무엇이랑 무엇도 마찬가지야.' 라고 말하고 있다.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음에도 정확한 존댓말을 구사하고 있으며, 거기엔 한국인의 감성이 듬뿍 담겨 있었다. '엄마 빨리 오세요! 엄마 빨리 오세요!' 이렇게. 그러니 보다 어릴 적처럼 그냥 들어 안아 자리를 피한다거나 다른 것으로 쉽게 유인해 관심을 돌린다거나 하는 일이 하루하루 더 어려워진다는 소리였다. 꼬마를 설득하기 위해선 이제 타당한 논리를 갖춰야 했다. 되는 이유와 안 되는 이유를 구분해 설명하고 나중을 기약한다면 언제 어디에서 가능한지를 덧붙여야 하고 그건 되도록 지켜야 했다. 되게 깐깐한 클라이언트와 함께 여행하는 셈인데, 아직 혼자 세수하면 앞섶을 적시고 잠들 때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그런 클라이언트다.
그래서 여기저기의 가 볼 만한 곳들 사이에 언제나 놀이터가 끼어든다. 다행히 이 도시의 곳곳엔 크고 작은 공원들이 많다. 이런 곳에도? 싶은 곳에도 작은 미끄럼틀과 그네, 철봉과 시소가 놓여있다. 아이들은 손 닿는 곳은 어디든 열심히 기어오르고 그러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찾아 비둘기들이 오고 간다. 놀이터 근방에서 제일 점잖은 것은 역시 강아지들이다. 구엘공원에선 그깟 타일 바닥과 돌멩이 나부랭이 사이에서 집중력이 흩어져가던 꼬마를 달래다, 우연히 놀이터를 만나 어찌나 반가워했는지 모른다. 높다란 나무 그늘 아래 산비둘기가 꾸욱꾹꾹 우는 소리 들린다. 다채로운 높낮이의 놀이기구 틈에서 꼬마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보고 배운 게 무섭다고 요즘 한참 열중하는 놀이는 까페 놀이다. '커피 한 잔 주세요.' 하면 '아메리카?' 하며 놀이기구의 나사를 누르고 있다. 입에선 에스프레소 머신 저리 가라 할 법한 소리가 나온다. '오렌지 주스 주세요.' 하면 바르셀로나 슈퍼마켓의 오렌지주스 기계를 열심히 묘사한다. 오렌지는 기계 안으로 텅텅 떨어지고 버튼을 누르면 주스가 위잉하고 나온댄다. 애 앞에선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 말은 정말이다. 커피와 주스 제조의 레퍼토리가 끝나고 나면 '엄마 맥주 만들어줄까?' 한다. 과연 인생 처음으로 말한 문장이 '부어봐.' 였던 꼬마답다. 아무래도 그걸 가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차차 놀이터에 의지하고 놀이터에 스며드는 생활이 이어진다. 이른 아침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서도 우리는 자연스레 놀이터부터 찾는다. 점차 인파가 불어나고 좁은 길바닥에 좌판이 깔리기 시작해도 놀이터 울타리 안은 몹시 아늑하다. 유서 깊은 성당을 배경으로 꼬마는 미끄럼틀 계단을 오르고 작은 지붕 아래로 숨어든다. 365일 늘 붐비는 곳이니만큼 가방이며 소지품을 잘 챙겨야 하지만 이상하게 여기 놀이터 안에선 마음이 느긋해진다. 아기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 엄마, 흘리는 침을 닦아주고 있는 모습, 미끄럼틀 아래서 팔을 펼쳐 기다리는 장면. 이런 것들은 여기 사그라다 파밀리아나 숙소 근처의 공원에서나 서울의 놀이터에서나 모두 비슷비슷하다. 인류의 유산을 뒤로한 채 오늘의 모래성을 쌓는 꼬마들. 일정에 욕심내지 않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려 하지 않으면 꼬마와의 여행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는다. 도를 닦는 자세로 심해의 진주조개처럼 오늘치 사리를 빚어내는 마음으로, 하루 다섯 번 절을 하듯 나무아미타불아멘인샬라.
아직 하루 한 번의 낮잠은 꼭꼭 자는 꼬마. 다행히 여기는 시에스타의 나라다. 동네의 작은 까페나 상점들은 오후에 문을 닫는 시간, 우리도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암막커튼을 내리고 어딘가 내팽개쳐져 있던 인형들을 침대로 가지고 온다. 내복 차림의 꼬마에게 한 손에 인형 하나씩 들려주고 토닥여 낮잠을 재운다. 꼬마가 자는 동안 즉 정신적 육체적 자유를 획득한 시간 동안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있는데. 하다 옆자리 누운 우리도 까무룩 잠이 든다. 아마 늘 해를 많이 쬐기 때문일 거야. 어디든 잘 걸어다녀 그런 것일 테지. 입맛도 좋고 소화도 잘 되고 기분도 좋고 그래서 쿨쿨 낮잠을 잘도 자는 오후. 그러기에 행여 밖에서 낮잠을 자게 되는 스케줄이 되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꼬마는 유아차 안에서 달콤한 낮잠을 자고 완충된 상태로 일어나거늘, 우리는 제대로 눕지도 못한 채 그런 꼬마를 감당해야기에.
티비다보, 그 장엄하고 영험한 산의 놀이동산-1901년 개장하여 스페인에선 가장 오래되고, 유럽에선 두 번째로 오래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침나절부터 기다림과 배회와 다시 기다림을 거쳐 몇 개의 놀이기구를 타고 조잡하지만 아주 맛있었던 샌드위치로 배를 채운 다음, 우리의 체력은 모두 방전되었다. 흐릿한 눈으로 주변을 탐색한 다음 당을 채우기 위한 아이스크림을 사 함께 떠먹는다. 그게 꼬마 인생의 첫 아이스크림이었다. 첫 놀이동산의 첫 아이스크림. 간당간당한 90센티의 키로 어떤 것은 요령껏 타고, 또 어떤 것은 입구에서 '쏘리, 베이비.' 소리를 들으며 밀려 나오기도 했던 티비다보. 그러나 우리와 함께 어린이용 기차를 타고, 또 꼬마 혼자서 어린이용 범퍼카를 타기도 하는 등 다이나믹하기론 최고였던 하루였다. 아주 시간이 많이 지난 후, 이-십팔-개월이 아니라 이-십팔-살 정도가 될 무렵 우리는 이 날을 어떻게 기억할까. 물론 그때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며 어버이 은혜에 감사하라는 그런 의도는 전혀 아니다. 내가 너를 키운 공을 운운하는 마음, 그런 마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아직은 그럴 때다. 기대 없이 본전 생각 없이, 오늘도 빠져나가는 영혼을 부여잡으며 '귀여워서 봐 준다.' 말할 수 있는 때. 이-십팔-개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