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과 탈코르셋

수영장과 탈코르셋

by 한량

먼저 귀국하는 달을 배웅하는 길, 아침 일찍 집 앞에서 공항버스를 탔다. 바르셀로나엔 공항철도가 없는 대신 5분 간격으로 공항버스가 있다. 심야 시간엔 배차 간격이 조금 길어지지만 24시간 운행에는 변함이 없다. 사방은 아직 푸르스름한데 버스 안은 환히 밝다. 아직 침대에 있을 시간, 유아차에 앉은 꼬마는 멍한 표정으로 품 안의 여우인형만 쓰다듬고 있다. 에스파냐 광장을 지나자 정차 없이 줄곧 내달리는 버스다. 창밖 풍경이 조금 바뀌는가 싶더니 이내 관제탑과 드문드문 날아오르는 비행기들이 보인다. 버스에 내려 터미널에 들어서자 달의 귀국이 실감난다. 이른 시간임에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 가고 있다. 출국을 준비하는 사람들 귀나 턱 아래 대롱대롱 매달린 마스크들이 낯설다. 그동안 마스크 없이 보낸 시간들이 새삼 꿈같다.


수속을 모두 마친 달은 이제 검색대 너머로 가야 한다. 꼬마랑 꼭 끌어안은 다음 나와는 슬쩍 어색한 포옹을 한다. 다툼도 아닌 토라짐도 아닌 뭔가 서로 희미하게 마음이 상한 상태로 어제 하루를 보냈다. 꼬마가 잠들고 난 밤엔 마지막 짐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나와 꼬마의 짐 가운데서 쓸모없는 것, 이를테면 숙소 두 군데에서 모두 사용할 수 없었던 압력솥이나, 남은 기간에도 입지 않을 두꺼운 옷들을 추려냈다. 우리 사이엔 실용적인 대화만이 오고 간다. '비닐봉투 큰 거 있어?', '저 방 옷장에 있을 거야.', '내일 7시 버스 타면 되지?', '그럼 아침은 생략하고 공항에서 빵 좀 먹여야겠네.' 그러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짝 긴장해 잠들었기에 이러쿵저러쿵 내가 잘했네, 네가 못했네, 그러다 서로 뭉클해진 마음으로 사실 제가 미안합니다, 하고 화해할 타이밍을 놓쳤다. '잘 가, 도착해서 연락해.', '그래, 남은 시간 잘 보내다가 와.' 이렇게 담담한 인사만 나누었다.


헤어진 그 길로 나와 꼬마는 한 층 아래의 입국장으로 향한다. 구글에 편명을 검색해보니 비행기는 이미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다고 나온다. 그럼 이제 짐만 찾아서 나오면 되겠지 싶어 입국장 출입문 앞을 서성인다. 이윽고 누군가 보인다. 나에게 잠시 손을 들어 보이다가 이내 유아차 안 꼬마에게 눈을 맞추고 달려오는 사람. 엄마가 왔다.


엄마.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우리 엄마 혼자 비행기 타고 바르셀로나까지 오기로 했어. 그것도 중간에 경유해서.' 라고 말하면 다들 엄마의 안녕을 빌었다. 그거야말로 유튜브 컨텐츠감인데? 하며 엄마 목에 고프로 하나 걸어드려. 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나도 아부다비에서의 경유가 걱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믿을 것은 오직 공항 와이파이와 라운지. '엄마, 35번 터미널 근처에 라운지가 있어요. 거기에서 샤워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좀 쉬다가 다음 비행기 보딩 안내가 뜨면 가서 타면 돼.' 물론 말이야 쉬웠지만 내심 불안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 봐야지 더 늙으면 시도도 못 할 것 같다는 엄마의 말이 위안이 되었다. 그래, 공항이니까. 진짜 어려우면 어디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겠지. 부디 경찰만 아니면 좋으련만.


그리고 정말 엄마가 왔다. 별 탈 없이 순조롭게 무사히.


우리는 다시 공항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한다. 엄마는 나를 만나 긴장을 확 푼 모양이었다. 자세는 편안해지고 목소리는 커진다. 더불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 꼬마를 만나 몹시 행복해하고 있다. 반면 나는 새롭게 중무장한 자세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달과 함께 여행할 때와는 다르다. 이제 나 혼자 이 둘을 안전하게 이끌어야 한다. 나만 믿고 있을 두 사람을 생각하면 긴장이 절로 되었다. 일정도 길 찾기도 의사소통도 모두 내가 책임지고 해내야 하니까. 이미 여러 번 봐 두었지만 다시금 이번 주의 날씨부터 체크한다. 내일까지 맑고 그다음 날 비가 내린 후 기온이 뚝 떨어진다. 떨어진다고 해도 늦여름의 느낌이겠다만 꼬마와 함께 하는 수영장 그것도 야외수영장은 이야기가 다르다. 엄마, 내일은 우리 수영장 가요. 수영복 가져왔지?

바르셀로네타 해변의 수영클럽. 이전 여행에서 여길 찾은 후 달과 나의 꿈은 이 클럽의 연간회원이 되는 것이었다. 아직은 요원한 일이기에 우리는 일일권 패스로도 충분히 만족해하며 이 도시에 사는 이들을 부러워했다. 말이 돼? 10월 말까지 야외수영을 할 수 있다니. 연교차 50도의 세상에 사는 동북아인의 시기와 질시가 포말 아래 꿈틀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수영클럽엔 3개의 야외풀이 있다. 그 곁엔 비치발리볼이나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있다. 실내에도 수영장과 헬스장, 샤워실을 비롯해 여러 강습을 위한 공간이 있다. 우리는 늘 썬베드에 누워 해를 쬐다가 풀에 풍덩 뛰어들곤 했다. 눈 아래론 야자수와 모래사장, 푸른 바다가 보였다. 해변엔 자전거를 타는 이들, 걷는 이들, 뛰는 이들이 점점이 오고 갔다. 요트의 돛과 패들보트도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나는 엄마에게 이런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나이, 어떤 몸매라도 해 아래 자연스레 드러낸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려야 하고 감춰야 할 때 몸은 부자연스러운 대상이 된다. 거울 앞 자신을 검열하게 되고 그 겸연쩍음과 부끄러움은 타인에게도 엄격한 잣대로 적용된다. 스스로를 향한 손가락질이 내면화된 내추럴 본 한국인인 나도 엄마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이 도시, 여기 이 수영장에서 만난 놀라움과 환희를 엄마에게도 전하고 싶었다. 이런 내 속마음을 엄마는 알까. 우리는 함께 탈의실에 들어선다. 나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꼬마의 매무새를 점검해준다. 유아차를 접어 사물함에 넣고 50센트 동전으로 잠근 뒤 열쇠를 챙긴다. 그 사이 엄마도 옷을 갈아입는다. 탈의실 밖으로 나가 썬베드를 골라 자리 잡은 후, 가벼운 샤워를 마치고 풍덩 물속에 들어간다. 등이며 품이며 매달리는 꼬마와 함께 헤엄을 치고 사진도 찍는다. 엄마는 꼬마 손을 잡고 아래층 모래놀이터를 다녀오더니 오늘의 한 줄 소감을 말한다.


스페인 할배들이 엄마만 쳐다보더라.

그건 자의식 과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진실로 스페인 할배들, 그리고 할매들과 구조요원들까지 엄마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는 손목 끝까지 오는 분홍색 래시가드에 무릎까지 오는 검은 반바지, 그리고 검은색 보닛에 썬글라스 차림이었으니까. 거기엔 파고드는 햇볕 한 자락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내 몸 어디도 함부로 노출하지 않으리란 결의가 느껴졌다. 그와 대조적으로 사방엔 여기저기 벗고 드러낸 차림뿐이었다. 9월의 월요일 오전, 여기저기서 반가운 기색으로 인사하며 수영장에 모여드는 이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이었다. 그러나 차림만 보면 나이도 구분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 가진 몸 그대로를 드러낸 사람들. 밝은 햇살 아래 꺼내놓고 나면 가슴은 그냥 가슴일 뿐, 그게 누구 가슴인지 어떤 가슴인지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내가 너무 나이브한 걸까. 여기서만이라도 제발 좀 그렇게 지내고 싶었다. 누구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스스로를 단속할 필요도 없이. 잘 놀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엄마는 말했다.


다들 너무 자유롭네. 진짜 너무 자유롭네.


그 이후로 엄마의 외출 준비는 급격히 간소해졌다. 편한 옷차림에 썬크림만 쓱쓱 바르고 집을 나섰다. 탈브라까진 못 가도 탈코르셋에 근접한 셈이다. 무엇보다 노브라 차림의 나를 보고도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친구 만난다고 늦은 밤 집을 나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뭐라고 하면 더운 날씨를 핑계 댈 참이었다. 혹은 뭐 어때! 나 여기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 라고 말하려 했다. 당장 아는 사람 만나러 나가는 마당에.) 지금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라운 변화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엄마는 일찍부터 일어나 머리를 말고 정성스레 화장을 한다. 가져온 옷 중에서 점잖은 옷을 입고 앞코가 막힌 플랫슈즈도 신는다. 이건 딱 11시 예배 가는 느낌이다. 그러더니 핸드폰과 셀카봉의 연결을 확인하고선 손 흔들며 집을 나선다. '재미있게 잘 보고 올게, 이따 만나자. 연락할게!' 엄마는 오늘 가우디 투어를 들으러 간다. 한국인 가이드에 한국인 여행자들의 모임. 이에 엄마의 탈코르셋 도전은 잠시 멈춘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낯선 거리에서 한국어 소리가 들리면 귀부터 쫑긋하고, 괜히 스스로를 돌아보게끔 만드는 좁은 사회에서 자랐으니까. 하지만 이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엄마에게 지금껏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른 삶들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건 이미 성공적이었다, 엄마. 세상엔 이런 사람들도 있어. 이렇게 살아도 돼. 얼마든지 괜찮다고. 나는 사실 그렇게 이해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엄마, 그냥 편한 대로 자연스럽게 살아도 돼. 나 좀 그렇게 살게. 나를 내버려 둬,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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