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잇고의 마음으로
시작은 사소한 문장 한 줄이었다. '엄마, 너무 많은 정보값을 주면 내가 그때마다 그걸 생각하고 판단해서 반영해야 하는 게 좀 힘들어. 그러니까 좀 자제해 주면 좋겠어요.' 이 한 마디. 저녁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숙소가 있는 블럭으로 넘어가려면 가로로도 건너야 하고 세로로도 건너야 한다. 엄마는 둘 중 어느 신호등이 먼저 바뀌는지를 파악하고 내게 전해주고 싶어했던 것인데, 유아차를 미는 나는 그 말에 발걸음이 엇갈리다 신호를 놓치고 말았다. 이에 나는 준비해 놓은 문장을 꺼내놓는다. 나름대로 미리 고심해서 내 의사를 부드럽게 요약한 말이라 생각했거늘 분위기는 갑자기 냉랭해진다.
꼬마를 씻기고 토닥여 재워놓고 나오니 엄마 방의 문이 닫혀있다. 문을 열어보니 엄마가 창쪽을 바라보고 모로 누워있다. 춥지도 않은 밤, 이불을 휘감고서다. '나 화났어.' 의 포스가 여실하다. 모르는 체하며 '엄마, 자요?' 하고 물으니 몸은 그대로 누운 채 경직된 목소리만 이불 건너 넘어온다.
'이건 여행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 돌아가는 표 알아봤더니 내일 모레 직항이 있네. 엄마는 짐 싸서 돌아가고 싶다.'
엄마가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지 두번째 밤이었다. 만 48시간도 안 되어서 우리 사이에 중대한 갈등이 생긴 셈이다. 감정에 일방적인 것은 없으니 그 짧은 시간동안 서로 불편함을 감지했다고 쳐도, 어쩜 저렇게 식상한 배수진을 치나? 싶었다. 갈등이 생기면 풀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나는 먼저 한국에 돌아가겠다, 아니 돌아갈까 생각 중이란 말은 너 지금 빨리 순순히 고개 숙여 빌라는 말과 뭐가 다른지. 과연 이게 성숙한 어른의 말인가 싶어 나는 나대로 화가 난다. 그렇지만 화를 누르며 침착하게 묻는다. '그래서, 표 끊었어요?', '아니, 아직 안 끊었다.' 그럼 얼른 표 끊어요. 원하는대로 하세요. 뭐하러 내일 모레 가? 그냥 내일 가도 될 텐데. 라는 말이 목구멍 아니 혀 끝까지 올라온다. 근데 그러면 아마도 영영 의절이겠지. 나라도 장단에 엇박을 맞춰야 하지 않나. '엄마, 내가 생각할 때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아.' 하고 간신히 말을 이어나간다. 단어와 문장을 짜맞춰 즉석에서 스피치를 쥐어짜낸다. 하지만 이건 즉석의 문제가 아니다. 고작해서 횡단보도 좀 빨리 건너고자 탄생한 갈등이 아니란 셈이다.
의욕.
평생 엄마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수식. '의욕'이란 명사에 무슨 말이 따라붙을까. 의욕이 넘치다, 의욕이 앞서다, 의욕이 끓다. 언제나 넘치거나 앞서거나 끓으면서 살아온 엄마다. 급하고 거세고 몰아치는 성격은 엄마를 새로운 곳으로 이끌곤 했다. 격한 파도의 이랑 위에서 그것이 어디까지 나를 밀어다줄지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더 나은 곳으로, 더 좋은 곳으로. 하지만 의사를 제대로 피력할 수 없었던 어린 내게 그건 긍정적이지만 않았다. 파도가 나를 내리꽂는다. 가까스로 퍼덕거리며 수면 위로 올라오지만 이내 다음 파도가 나를 휩쓴다. 나는 그 기세에 눌려 곧 기절할 것처럼 패대기쳐지곤 했다. 엄마의 힘, 엄마의 욕심, 엄마의 바람. 엄마는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 모든 것을 관장하고자 한다. 되면 되는 이유를, 안 되면 안 되는 이유롤 알고 싶어한다. 거기에 첨언하고 싶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뜻대로 되길 원한다. 그러므로 늘 끼어들고자 한다. 시시각각 끓어넘치는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는 사람. 사람마다 가진 고유의 에너지 레벨이 있다면 엄마는 그게 보통보다 높다. 내 기준으로 생각했을 땐 120% 정도랄까.
여행의 통솔자로 전반적인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서 엄마의 코멘트들은 내게 노이즈로 다가왔다. 왜 저런 말을 하지? 굳이 왜? 안 해도 되는 말인데? 란 의문은 엄마를 만난 이후 계속 맴돌았다. 그걸 좀 줄여라. 생각나는 모든 말을 하지 말아라. 안 해도 된다.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고 생각하는 데에 방해가 될 뿐이다. 그걸 엄마는 몹시 서운하게 받아들였다. '엄마랑 딸 사이인데 그런 말도 못 하나?' 라고 내게 항변했다. 응, 못 해. 엄마. 하면 안 돼. 가족이라고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혼자 해서는 안 돼. 당연히 참아야 하고 삼가야 하는 거야. 입 다물어요. 생각하고 말해요. 아무 말이나 하지 마요. 내뱉지 마요. 제발 부탁인데 음소거 좀. 그렇게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대신 나는 엄마의 말에 소극적으로 그러나 부정적으로 대응한다. 사소한 추임새, 감탄, 혼잣말에 아무 답을 하지 않는 거다. 엄마의 모든 말에 어떻게든 거들 여력이 없어서였다. 그 미묘하지만 냉정한 뉘앙스를 엄마 역시 알아차렸겠지.
엄마의 들끓는 의욕은 꼬마에게도 발현되었다. 뭔가를 새로 가르쳐주고 싶고, 그걸 알아듣는 꼬마의 영특한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모습. 그건 엄마 나름대로의 사랑 표현이겠지만, 나는 들을 때마다 과거의 기억이 겹쳐들었다. 직접 만든 문제집을 풀라고 시키던 모습, 만점이 아니라고 회초리를 들던 모습, 수없는 윽박지름과 훈계. 아, 내가 왜 꼬마에게 무엇무엇들을 열성적으로 가르치려 하지 않고, 어디어디 선생님을 초빙하지 않고, 어떤 교육기관에 보내 뭐라도 배우게끔 하지 않는 이유는 내 어릴 적 모습에 학을 뗀 게 아닐까. 그냥 너 좋은 거, 너 하고 싶은 거 해. 재미있는 거, 신 나는 것만 하렴. 놀기만 하렴. 아무렴 나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은 내가 방어할 수 있지만, 꼬마에게 새로운 걸 많이 가르치려는 의욕을 보이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그건 딱 잘라 말했다. '그렇게 하지 마세요.'
꼬마가 머리 감기 싫다고 떼 부릴 때나, 밥 먹기 싫다고 고집 부릴 때 어린이집 친구들 이름을 들며 '누구는 이거 잘 한다는데, 할머니는 누구랑 같이 해야겠네!' 같은 소리를 할 때도 내 마음은 파사삭 얼어붙었다. 하지 마, 하지 마. 그런 소리 하지 마. 나는 서늘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등 돌리고 누운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내가 지금까지 친구들 이름 들먹이며 누구 엄마는 이랬대, 누구 엄마는 이런 것도 해 줬대. 한 적 있어요? 엄마를 비교한 적 있어요?' 그런 적은 정녕 없었기에 엄마는 아무 말이 없다. 엄마는 누구 딸이 어쨌고 저쨌고 말한 적이 있으나 맹세코 나는 내 부모를 다른 부모와 비교해 나열한 적이 없다. 말 없는 등 뒤의 속마음도 빤히 읽힌다. 딸 말이 다 맞는데,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 칭찬의 기준이 높고 높아서 언제나 그건 당연한 성취일 뿐, 기특하고 대단하다 북돋아주고 싶지 않은 마음. 대체 그런 심보는 어디서 왔는지, 나를 평생 괴롭게 만든 그 마음의 씨앗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엄마 옆에 무릎 세우고 있는 내 깊은 곳에선 모락모락 원망이 피어오른다. 애정 아니고 애증, 어쩌면 앞의 '애'는 흐릿하게 지워지고 이제 증오만 남은 상태다. 대체 왜 나한테 그랬어요. 왜. 왜. 왜.
엄마는 항변한다. 본인 의도의 순수성에 대해서. 자신은 온전히 순수한 마음, 즉 너 잘 되라고 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더 잘 되라고, 응원하고 독려하고 가르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변호임도 안다. 근데 그 밑엔 다른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나는 안다. 반듯하고 번듯한 어떤 그림. 성취를 이룩한 자녀와 그의 엄마라는 화려한 그림을 향한 욕망임을 안다. 그건 본인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어찌 너 잘 되라는 순수한 마음에서만 비롯된 것이라 말하는 걸까. 설령 백 퍼센트 순수한 열정에서 기인한 것이라 해도, 그게 모든 것을 상쇄시킬 마법의 문장은 되지 못한다. 순수해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거고, 상처준 것은 상처준 거예요. 그게 없어지진 않아요. 부인하지 마세요. 나는 충분히 상처받았고 충분히 괴로워했어요. 엄마 자식 간에 그런 말도 못 하냐고요? 그런 편한 사이가 못 되냐고요? 네, 못 됩니다. 나는 내가 바닥 깊이 내려꽂혀 좌절할 때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어요. 나 괴롭다고 힘들다고 털어놓지 못했어요. 받아줄 사람 같지 않으니까요. 나한테 엄마는 마냥 편한 사람 절대 아니에요. 내가 잘 하는 것만 자랑하고 그렇게 인정받고만 싶었어요. 그래도 인정해주지 않았지만요.
어째 삼십대 후반이 되도록 이러고 있을까.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스스로를 돌아본다. 어쩔 수없이 나는 엄마의 일부분을 물려받고, 엄마 품에서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배우고 자란 탓에 내 안의 부족한 점들을 켜켜이 발견한다. 그게 내가 만든 가족, 달과 꼬마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도 직시하게 된다. 결국 엄마를 마주하고 엄마와 싸우는 건 거울 속 나와 싸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볼록렌즈 속 언제나 나보다 큰 엄마와.
자정이 넘어 새벽을 향하도록 우리는 의미없는 펀치를 휘둘렀다. 결코 봉합되지 않은 상태로 어색하게 막 내린 밤. 잠든 꼬마의 곁에 누워 부드러운 머리칼과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 당신을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한때는 내게 너무나 절대적인 명제였으나 나는 이제 그로부터 먼 곳까지 홀로 헤엄쳐 나왔다는 것. 나는 스스로를 방어하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나도 어쩌면 그 아름답게 보이는 어떤 그림, 서로 사랑하는 화목한 가족이라는 추상적 명제에 매달린 게 아닐까. 혼란 속에서 늪 같은 잠에 빠져들 때면 애니매이션 속 노랫말을 중얼거렸다. 렛잇고, 렛잇고. 모든 것을 흘려보내리. 가야 할 것들을 이만 붙잡지 않고 보내주겠다고. 나는 엄마와 매우 친밀하고 친구같은 이들도 부러워했으나 사실 엄마와 몹시 데면데면하고 남처럼 굴 수 있는 이들도 부러워했어요. 나는 지난 날의 우리를 너무 연민하지 않고, 얽매여 있지 않고 그저 멀리 보내주고 싶어요. 해묵은 감정 모두 잘 가라고, 그런 날도 있었다고. 이제는 더이상 거기에 연연하지 않을 거예요. 않을 거라고요.
그 다짐을 여행 내내 밤마다 반복했다.
나는 아무래도 엄마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