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영역
Hospaital del Mar. 말 그대로 바다 병원. 어디 안 가 본 놀이터가 있을까 하여 지도를 살피다 이 병원을 찾았다. 바다와 병원과 놀이터. 모두가 Somorrostro beach 여기에 모여있었다.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조금 더 북쪽, 그래서 조금 한산하고 조용한 감이 있다. 농구장과 탁구장, 스케이트 보드를 탈 만한 광장도 마련되어 있다. 물론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넓게 펼쳐져 있다. 놀이터에 이르면 꼬마는 유아차에서 내릴 준비부터 한다. 벨트를 풀어주면 울타리 잠금쇠를 직접 열고 들어가 놀이기구에 올라탄다. 시소도 미끄럼틀도 그 밖의 창의적인 놀이기구에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매달린다. 이곳이 마음에 든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던진다. 맨발을 모래에 푹푹 꽂아 넣는 것을 보며 그래, 그 기분이 참 좋지 생각한다. 그러다 아, 이제 양말을 신는 계절이 되었네! 하고 깨닫는다.
여기저기에 오르고 내리며 노는 꼬마와 그걸 졸졸 따라다니며 놀이로 만드는 엄마를 두고 나는 좀 걷다 오겠다고 말한다. 놀이터 벤치의 야자수 그늘 너머는 이미 바다다. 나는 끌리듯 그곳을 향해 걷는다. 왕복 2차선 도로를 총총 건너면 자전거 도로와 넓은 보도가 이어진다. 난간에 기대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왼편 오른편 가릴 것 없이 시야의 전부가 모두 바다다. 드문드문 놓인 파라솔 아래 아직 몸을 굽고 있는 이들도 있다. 바다에 들어가는 몇 명의 사람들도 보인다. 선두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패들보트들은 철새 떼 같다. 해 아래 잔잔히 부서지는 파도가 아름답다. 바다는 조용하고 파도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걷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가끔 인라인이나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이들도 있다. 이 고즈넉한 평화를 깨고 가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노란색 바탕에 파란 십자가를 붙인 앰뷸런스들이다. 오고 가는 차들이 여기에 병원, 그것도 큰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바다를 등지고 고개를 들면 바로 병원이다. 자동문이 열리면 로비가 힐끔 들여다 보인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과 평소보다 더 많은 수의 휠체어들도 오고 간다. 가운 차림에 출입증을 목에 건 의료진들도 문 사이로 들락날락한다. 그들은 나오자 말자 아무렇지 않게 라이터를 켜고 담배를 문다. 그 옆으론 작은 상점이 있다. 병원 1층에 자리한 가게라면 어떤 물건들을 팔고 있을까? 병문안 갈 때 살 만한 음료수 세트나 환자들을 위한 유동식, 간식, 잡화 등이 생각난다. 보호자를 위한 치약 칫솔 세트나 속옷, 양말 같은 것도 떠오른다. 그러나 여기 바다 병원의 가게에선 해수욕 용품들을 팔고 있었다. 이건 농담이 아닌 진짜다. 색색의 수영복들과 쪼리, 어린이용 팔튜브, 모래놀이 장난감 같은 게 잘 진열되어 있었다. 똑똑 하고 가게에 들어가 '혹시 여기 해먹이랑 아기 상어 튜브 있나요?' 물어보면 '잠시만요, 재고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무렴 여기는 병원, 그것도 바다 병원이란 말이지. 바닷가 바로 앞의 이 큰 부지를 병원으로 쓰고 있다니, 태어날 때부터 늘 바다는 곁에 있는 거라 귀한-정확히 말하자면 비싼-취급을 안 해주는 건가? 싶다가도 바다를 향한 병실의 커텐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아, 이 병원의 환자들은 매일 바다를 보며 회복하고 있겠구나. 정말 멋지다, 란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에서 느낀 점은 이거였다. 누구나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즐거움.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의 영역부터 언제나 손쉬운 산책, 예술과 스포츠, 그리고 산과 바다, 공원들. 도처에 널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평범하지만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거다. 어떤 욕망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해소될 수 있는 공간. 따라서 한계까지 억누르다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느낌이 없었다. 왜 행복을 참아야 하지? 지금 누릴 수 있는데. 구석에서 인상 쓰지 말고, 이리 와. 여기 앉아서 같이 놀자. 이런 느낌이 들었다.
여느때처럼 커피 사러 나간 아침, 출근길의 경직된 얼굴들은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일요일 아침은 여느 때와 달랐다. 군데군데 펜스를 쳐 놓고 안전요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 있길래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해졌다. 종로에 오래 살았던 이로서 반사적으로 든 생각은 오늘 시위가 있나? 경찰버스가 오려나? 같은 거였다. 커피를 마시며 조금 걷다 보니 달리는 이들이 보인다. 가슴팍에 번호표를 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는 사람들. 아, 오늘 마라톤이 있나 보네. 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모여 뛰는 이들도 있다. 휠체어를 타고 달리는 이들도 있다. 나처럼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도 있다. 골목을 돌아가니 커다란 풍선 게이트 아래로 마라톤 참가자들이 바삐 지나고 있다. 옆에선 마이크로 열띤 응원을 보내고 있다. 통과한 이들이 계속 달려가는 것을 보니 아마 중간 반환점쯤 되나 보다. 이제 거의 다 지나갔나? 싶으면 거리를 두고 계속 새로운 무리들이 달려오고 있다. 그걸 잠시 구경하다 집으로 향한다.
예전의 여행들에서 나는 안 그래도 꽉 찬 가방에 뭘 더 못 넣어가서 안달이었다. 미술관에선 마지막 전시관쯤 지날 무렵이면 마음이 쿵쿵 뛰었다. 작품이 주는 감동에 벅차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다음 이어질 섹션 어쩌면 내게 가장 중요한 기념품샵 구경에 미리 설레서였다. 벽에 걸린 저 위대한 작품은 눈에만 담아가지만 여기 이 작고 앙증맞은 물건들은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아까 눈여겨봐 뒀던 그림이 엽서로 나와있길 빌며 기념품샵을 돌고 돌았다. 여행 기분을 낼 만한 아이템들, 화려한 분위기의 액세서리나 평소에는 잘 쓰지 못할 큰 밀짚모자 같은 것에도 열을 올렸다. 게다가 마음먹고 쇼핑에 나서다 보면 여행 다음 계절의 옷도 좀 사고 싶어졌다.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간절기 외투를 왜 고르고 있는 걸까. 자각할 새도 없이 바쁘게 바쁘게 가게들을 건너 다녔다. 이번에도 뭐 예쁜 것이 있을까? 구경 한번 가 봐야지 하여 홀로 까딸루냐 광장 근처를 돌고 돌았지만 예전과 같은 기분은 느끼지 못했다. 한 달 사이 산 거라곤 작은 스카프 한 점, 열쇠고리 하나, 엽서 세 장. (그나마 엽서는 모두 다 우편으로 부쳐버렸다.)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대학 로고가 써진 후드티 하나. (1450년 창립이라 쓰여있다. 약간 성균관 느낌이랄까. 학교를 나타내는 문장의 제일 윗부분엔 밝은 태양이 그려져 있다. 아, 내가 졌다. 졌어. 너네 날씨 좋은 것 잘 알겠어.) 이 정도가 전부다. 도시를 기억하기 위해, 간직하기 위해 뭔가를 사서 집에 저장해두려는 마음이 사라진 것 같았다. 그건 늘 아쉬움에서 비롯된 강박일 것이다. 언제 다시 여기에 올 수 있을까. 못 오면 어떡하지. 이 기억을 오래 남기고 싶어. 그 익숙한 초조가 이상하게 사라져 있다. 언제고 다시 올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던 걸까. 냉장고에 붙여두는 대신 눈과 마음에 충분히 담아간다는 말일까. 내 사랑의 영역이 다른 지점으로 접어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