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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량 Nov 21. 2021

데낄라 말고 메즈칼

멕시코의 또 다른 국민 酒를 마셔보자  

작년 3월, 멕시코에 다녀왔다. 멕시코의 현대 미술, 양고기 수프 그리고 메즈칼에 흠뻑 빠져 돌아왔다. 그리고 메즈칼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지난 몇 년 간, 매해 생산량이 평균 38% 씩 상승한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나뿐이 아닌 것 같다. 자, 맛있는 거 마시는 거 좋아하는 당신 - 때는 바야흐로 메즈칼을 마실 때다. 


메즈칼은 멕시코의 또 다른 국민주(酒)인 데낄라와 마찬가지로 아가베가 주원료인 증류주다. 사실 데낄라는 메즈칼의 일종이다. 꼬냑이 브랜디의 한 종류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럼 맛도 비슷한가요? 그건 또 아니고. 익숙하지만 다른 것, 메즈칼의 매력적은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다.


일단 태생부터 살펴보자. 데낄라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의 데낄라 마을을 포함한 인근 다섯 군데 지역에서 대기업 자본에 의해 대량 생산되어 전 세계에 유통된다. 메즈칼은 남부 와하까 (Oaxaca) 주를 중심으로 총 9개의 지방에서 퍼져있는 수천 개의 소규모 양조장에서 내수용으로 생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법적으로 멕시코 내에서만 병입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멕시코 사람들은 데낄라보다 메즈칼에 더 큰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일주일 내내 메즈칼만 마시다가, 딱 한 번 고급 레스토랑에서 데낄라를 주문한 적이 있는데 소믈리에가 직접 나와서는 구글 번역기까지 써가며 데낄라보다는 메즈칼을 추천한다고, 꼭 마셔보길 바란다고 그러더라.


맛을 한 번 볼까. 먼저 데낄라는 두세 번 증류를 거친 술답게 깔끔함이 지배적이다. 보드카처럼 무색, 무미, 무취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시트러스, 허브, 바닐라, 시나몬과 후추 향 등이 다채롭게 어우러졌다. 그런데 훅 치고 들어오거나 입안에 오랫동안 질척이는 향이 없다. 오크 배럴에서 숙성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특유의 향이 강해지기는 하지만, 위스키 같이 강렬한 향은 아니다.


그에 비해 메즈칼은 꽤나 터프한 스모키 향이 특징이다. 당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아가베를 찌는 방식을 쓰는 데낄라와 달리, 메즈칼은 장작, 석탄 등으로 지핀 불에 아가베를 얹고  위를 달궈진 돌과 흙을 덮어 구워내는 전통방식을 쓰기 때문이다. 스모키 향이 알코올과 함께 뜨겁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고 나면 데낄라보다 진한 단맛과 함께 다양한 향이 올라온다. 다양한 향이라고 애매한 표현을  이유는 메즈칼은 30 종의 아가베 종을 조합해 만들기 때문이다 (데낄라는 블루 아가베를 단일품종이 주원료이다). 아가베 품종이나 생산자에 따라 풍미가 엄청나게 다양한 점은 와인과 비슷하다. 스모키 향보다 꽃향, 과일향의 비중이 더 높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처음 메즈칼레리아에 방문했을 때, 총 네 가지 메즈칼을 마셨는데, 세상에. 메즈칼인 줄 모르고 마셨더라면 다 다른 술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한 메즈칼은 바닐라 향과 미끌미끌한 질감의 조합이 조금 부담스러웠고, 또 다른 메즈칼은 섬세한 시트러스 향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무려 58도로 북쪽 산간지역에서 제조된 메즈칼이었는데, 입안을 알싸하게 마비시키는가 싶더니 목넘김은 깔끔 그 자체. 날씨 좋은 날의 바닷바람처럼 싱그럽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 갔고 나는 갓즈칼을 외쳤다.


동네장사 규모인 곳들도 제법 있기 때문에 구색을 갖춘 브랜딩이 전무한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부분이 장인정신을 선망하는 밀레니얼 세대 사상과  맞는다 (허세가 충족되기 딱이다). 하지만 메즈칼이 언제까지나 변방의 술로 남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변화의 바람은 2018 주류업계의 세계적 기업이자 대자본인 디아지오가 메즈칼 브랜드를 인수하며 이미 시작됐다. 북미권에서는 비록 한정된 종류일지라도 일반 주류점에서 메즈칼을 손쉽게 구할  있고 힙한 바라면 메즈칼 베이스의 칵테일을 한두 종류쯤은 취급하는 것이 흔하다.


메즈칼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은 일단 접어두기로 한다. 타임윌텔. 하나만은 분명하다. 지금이 메즈칼을 마실 때라는 것. 이왕이면 멕시코에서, 라벨도 없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것만은 분명하다는 추천을 받으며. 2020년의 메즈칼은 이후 대중화를 거친 메즈칼과 다를 것이다. 중국 군대가 점령하기 전과 후의 홍콩처럼. 미국 자본이 다시 들어오기 전의 쿠바와 맥도날드가 들어온 뒤의 쿠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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