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희망인가 환상인가

코인 열풍이 드러낸 투기적 사회의 민낯

by 피터

지난 글에서 우리는 ‘벼락거지’ 공포와 ‘영끌’이라는 현상이 어떻게 청년들의 삶을 짓누르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불안의 시대는 또 하나의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가상자산(코인) 열풍입니다. 마치 신기루처럼 등장한 이 디지털 자산은 많은 이들에게 ‘잃어버린 사다리’를 되찾아줄 마지막 희망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지난 15년간 재정 상담을 해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열풍에 뛰어드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한 20대 청년은 코인 투자를 위해 대출을 받아 시작했지만, 급변하는 시장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희망과 절망을 오갔습니다. 그는 결국 큰 손실을 보고 상담실을 찾았는데,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코인은 달랐어요. 이건 학벌이나 배경이 필요 없잖아요. 그냥 운만 좋으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청년의 이야기에는 코인 열풍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가상자산은 단순히 돈을 불리는 수단이 아니라,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뛰어넘어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환상을 품게 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은 희망이었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좌절을 낳은 환상이었을까요?


코인 열풍이 드러낸 투기적 사회의 민낯


코인 열풍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감 없이 드러냈습니다. 바로 ‘자산 아닌 기대감에 투자하는 위험’입니다. 전통적인 자산들은 실물(부동산)이나 기업의 이윤 창출 능력(주식) 등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가상자산은 명확한 실체가 없고, 오직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의해 가격이 형성됩니다.


저는 많은 상담자들에게 이 위험성을 설명했지만, 그들은 "그래도 지금 하지 않으면 나만 바보가 될 것 같다"며 불안감을 호소했습니다. 이들의 심리 뒤에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이 깔려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면, 차라리 한탕을 노리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왜곡된 사고가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는 코인 열풍을 단순히 투기 광풍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기성세대가 구축한 시스템에 대한 청년들의 절망적인 외침이었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이 열풍의 끝은 성공보다는 처절한 실패였습니다. 코인 시장은 불특정 다수의 정보에 좌우되는 '군중 심리'에 매우 취약하며, 한 번의 급락으로 전 재산을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제가 만난 한 자영업자는 폐업 위기에 놓인 가게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 희망으로 코인에 투자했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큰 부채만 떠안게 되었습니다. 그의 절망감은 단순히 돈을 잃은 슬픔을 넘어, ‘세상에 나를 위한 기회는 없다’는 깊은 좌절로 이어졌습니다.



희망과 환상 사이의 현실


코인 열풍의 확산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2023)에 따르면, 가상자산 투자는 특히 20~30대 청년층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주택 관련 대출 등 기존 부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곧, 부채를 갚기 위해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악순환에 빠져들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가상자산은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했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기존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코인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다수는 ‘묻지마 투자’의 위험에 노출된 채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희망은 환상으로, 기대감은 절망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저는 상담실에서 만났던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제 투기를 개인의 탐욕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코인 열풍은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투기적 사회를 부추기는 또 다른 강력한 힘, 즉 ‘SNS가 키운 묻지마 투자의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알고리즘과 불안의 확산이 어떻게 금융 소비를 왜곡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한국은행. (2023). 『금융안정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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