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시끄러운 지구가 매일 같이 나를 찾아온다.
어젯밤.
언제나 그렇듯 침대에 누워 일단 뇌를 빼고 SNS 켠다.
지금 여기가 유튜브인지, 인스타그램인지, 틱톡인지도 모른 체 엄지를 아래에서 위로 까딱거리며 일초에 하나씩 콘텐츠를 넘긴다. 순간 숏츠에 흥미가 사라지면 X와 쓰레드도 훑는다. 엄지 까딱 한 번에 4~5개 글들이 정독하기엔 빠르고, 무슨 글인지 알기엔 적당한 속도로 스크롤링된다.
내 눈을 사로잡고, 엄지를 못 움직이게 사로잡는 콘텐츠는 언제나 하트 4천 개 이상, 댓글 500개 이상의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은 콘텐츠다. 콘텐츠를 다 보지도 않고 댓글을 본다. 영상은 틀어져있으나 나의 시선은 댓글을 훑는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구나, 요즘 이런 것이 인기구나, 이런 어젠다에 사람들이 이렇게나 분노, 열광, 선망, 울컥하며 반응했구나를 느끼며 다시 새로운 콘텐츠를 찾아 나선다.
그렇게 콘텐츠보다는 이슈와 감정을 소비하고 잠에 든다.
산불이 난다. 씽크홀이 생겼다. 건물에도 불이 난다. 연예인이 하늘나라를 갔고, 교황님도 선종했다. 문득 예전에 시끄러웠던 뉴스들을 다시 검색해 봤다. 어떤 유튜버의 나락, 군인이 개입된 정치 이슈, 어떤 재난 상황 등 당시에는 댓글마다 분노와 안타까움이 쏟아졌고, SNS에는 해설 스레드가 이어졌는데 지금은 조용하다. 불과 얼마 전 일인데, 마치 오래된 일처럼. 활활 타던 관심 장작이 사그라들었다.
생각해 보면 관심이 식은 게 아니라, 새로운 감정을 받아들이느라 이전 감정은 자연스럽게 밀려난 것 같다.
며칠 간격으로 새로운 사건이 터진다. 총격 사건, 국제 분쟁, 연예인 논란, 정치인 망언, 대형 OTT의 드라마 신작까지. 어제의 충격은 오늘의 무관심으로 바뀌고, 그 흐름은 점점 더 빨라진다.
예전처럼 TV 앞에 앉아 뉴스를 기다리는 일은 없다. 뉴스는 알아서 찾아온다. 푸시 알림으로, 타임라인으로, 유튜브 홈 화면으로. 전 세계의 사건이 내 손바닥 안으로 들어온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전파되고, 퍼지고, 번지고, 사라진다.
얼마 전 봤던 넷플릭스 신작 <중증외상센터>도 그랬다. 꽤 묵직한 주제였고, 회자도 많이 됐다. ‘이건 오래 남겠지’ 싶었는데 며칠 후엔 이미 다른 시리즈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그 사이에 새로운 드라마가 떴고, 또 다른 논란이 터졌고, 관심은 자연스럽게 옮겨 갔다. 감정도 자주 불러일으켜지면 피곤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애써 기억하지 않는다. 무심해서가 아니라, 버티기 위해서.
감정은 예산처럼 한정돼 있다. 공감도 너무 자주 쓰면 고장이 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충격적인 장면과 소식을 보다 보면, 그중 하나는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아니면 너무 힘드니까.
문제는, 이런 감정의 무뎌짐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그 감각이 디폴트가 되어버렸다. SNS 속 감정은 반응으로 바뀌었다. 좋아요, 공유, 리그램. “이건 꼭 봐야 해요”라는 말과 함께 퍼지지만, 정작 본 사람은 얼마나 오래 그것을 마음에 남기고 있을까. 나도 그렇다. 링크를 눌렀고, 영상을 끝까지 봤고, 친구에게도 보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정보는 남는데 감정은 희미해진다. 기억이 잠깐 머물다 간다.
친구가 보내준 링크를 저장만 해두고 잊은 것도 많다. 단톡방에 누군가 3줄 요약을 올려주고, 몇 마디 오간 뒤 그 뉴스는 자연스럽게 묻힌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정주행 했지만, 일주일 뒤면 제목만 기억난다. 처음엔 내가 집중력이 부족한 줄 알았는데, 이젠 그냥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많은 이슈, 너무 많은 콘텐츠, 너무 많은 감정. 사람 마음도 결국 용량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이슈 중 하나를 붙들어 나에게 의미를 부여하려고도 한다. 이게 왜 이슈였는지, 나는 이걸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든 이슈에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 감정도 남기지 않는 건 어쩐지 아쉽다.
요즘은 뜨거운 것이 오래가지 않고, 오래가는 것이 뜨거워지기 어렵다. 그런 시대일수록 감정의 리듬은 내가 고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때 그 뉴스 봤어?" 그럴 때, “봤는데 기억 안 나”가 아니라 “그때 좀 이상한 감정이 들었어”라고 내 마음에 세겨 놓았던 것들을 공유하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세상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하고, 이슈는 매일매일 갱신된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내가 어떤 감각을 간직했는지는 스스로만 알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감각은, 그 ‘간직하는 힘’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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