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진 Aug 31. 2021

글쓰기를 멈춰도, 조회수는 오른다.

2021년 8월 31일

4월 1일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글쓰기가 함께 멈췄다.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 같은 퇴사 소식을 전하며, 글을 쓰면 재미있겠다 생각했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 했지만.. 내 게으름 세포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미리 제목과 인트로까지 정했으나 발행 실패..


만우절에 너무 의미를 부여한 탓일까? 무슨 아이돌도 아니면서 브런치 복귀 각을 쟀다. 언제가 좋을까 하면서 말이다. 사실 날짜를 쟀다는 것은 핑계 같기도 하다.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백수가 되었으니까 푹 쉬어야지!' 같은 다짐은 필요 없었다. 백수가 되니 몸이 알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 마음 역시 오랜만에 몸과 물아일체가 되어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더라.


아무 행동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이 기회에 생각을 멈추고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 내 미래는 어떻게 할지 고민에 잠겨보기로 했다. 


그렇게 다섯 달이 흘렀다. 

미래에 대한 건설적인 고민은 무슨.


약 다섯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내가 가장 열심히 한건 유튜브에 있는 무한도전을 몰아 본 것이었다. 무인도 특집부터, 무한상사, 조정 특집, 와이키키 특집 등 쉬는 시간 대부분을 무한도전 보는 것에 썼다. 10년이 넘게 방영된 무도의 영상 컨텐츠는 정말 어마어마했고, 영상들의 조회수는 몇 백만을 웃돌았다. 업로드 한지 몇 년이나 흐른 영상에 어제 날짜로 댓글도 달려있더라.


스케일은 다르지만 내 브런치도 마찬가지다. 4월 1일부터 내 글쓰기는 죽은 상태였지만, 내가 쓴 글들은 디지털 세상의 곳곳에 얼굴을 내비치며 변함없는 일상을 영유하고 있었다. 꾸준히 월 300회의 귀여운 조회수를 기록했고, 팔로워도 한두 명 늘었다. 

조회수는 폭락했지만, 0이 되지는 않았다.


사실, 이번 휴식 기간 동안 죽어 있었던 것은 브런치 글쓰기뿐만이 아니었다. 내 일에 대한 시간도 함께 죽어 있었으며, 그 시간이 차츰 길어짐에 따라 일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써놓은 글들이 브런치가 살아 있음을 알리듯, 내가 했던 프로젝트와, 내가 함께 했던 사람들이 일에 대한 나의 열정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주었다.


지인들의 입사 추천과 응원을 받으며 자신을 다독였고, 면접에서 나를 이야기하며 자신감을 회복해나갔다. 브런치에 써놓은 글들과 내가 했던 일과 행동들은, 내가 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누군가에게 지속적으로 먼지 같은 영감을 제공하고 있었다.


나는 항상 글과 사람에게서 영감을 받는다. 그래서 영감을 주는 글을 쓰고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외에 다른 꿈, 목표, 장래희망 등을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은 딱히 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없다. 그래서 최근 면접 볼 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했다. 


"어른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그것도 성숙한 어른이요."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말도,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 나를 경계해야 하고, 나를 지속적으로 다듬어야 한다.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은 없어지지 않는다. 어디엔가 살아남아 남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고, 나를 기억하게 하고, 나에 대한 인상을 남긴다. 마치, 내가 써놓은 브런치 글처럼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브런치의 글들도 조금 정리했다.

너무 감정적인 글들. 누군가에게 좋지 않은 영감을 줄 수 있는 글들을.

글쓰기를 멈춰도, 조회수는 계속 오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자리 정도는 양보할 수 있는 여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