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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진 Mar 24. 2021

자리 정도는 양보할 수 있는 여유.

2021년 3월 24일

전날의 과음이나 철야로 피곤에 쩌들어 지하철을 탔을 때.

기적적으로 내 앞에 자리가 나서 앉아서 갈 때.

애매한 나이의 어르신이 내 앞에 선다면?


2주 전에는 양보했고, 엊그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엊그제는 숙취가 정말 심했다..




지금도 어리지만, 더 어렸을 때는 여유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게으르고, 철없고, 한량 같은 느낌으로 생각했다. 여유보다는 열정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했고, 뭐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하얗게 불태운 채 해탈해 있는 자태를 동경했다.


이런 내가 차츰 변하기 시작했는데,

주변의 조언과 팀을 운영했던 것이 크다.


거창하게 말하면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아가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 당연한 걸 참 늦게 깨달았다는 생각도 들고, 깨달음의 영역인가 싶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회사에서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마주하게 된다. 같이 일해야 하는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내가 치지 않은 사고를 같이 해결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일, 미팅, 결제, 사고, 사람, 상황 등 다양한 형태로 우리는 계획에 없던,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이에 당황하지 않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항상 여유라는 것이 필요했다. 일을 할 때 앞만 보고 전력 질주를 했던 시절이 있다. 당연하게도 전력으로 달리면 옆을 볼 수 없었다. 중요한 결제와 피드백을 기다리던 팀원을 보지 못하거나, 업무 과정에서 마음이 상한 동료를 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설령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음에 해결해야지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엊그제 지하철에서 마주한 상황 같이 다음을 기약하며..




김영하 작가님이 알쓸신잡에서 했던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체력이나 능력을 아껴두기 위해 노력해요. 그래서 집에선 대체로 누워있어요. 함부로 앉아있지 않아요." 경험에서 비롯된 인사이트도 담고 있으면서 적당한 위트까지 담고 있기에 정말 완벽했던 말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예상치 못한 어떤 일은 대부분 남을 통해 오는 것 같다. 남이 내 계획을 알 턱이 없으니 내 입장에서는 항상 예상치 못한 일로 다가온다. 이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내 행동이 크게 변하는 것 같다. 여유가 없으면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하고, 허둥대고, 어쩔 줄 몰라한다. 깊이 생각하지 못해 감정적으로 행동도 하는 것 같다.


김영하 작가님은 방송이라서 최선을 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로 재미있게 풀어내셨지만, 어찌 보면 최선의 문제보다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에서 번아웃이나,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자기 관리 방법이라고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나의 정신, 체력적 적정 여유 기준은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이자 '자리가 났을 때 옆 사람과 무리해서 앉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의 여유'이다. 


단순히 자리 양보를 떠나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상황을 들여다볼 만한 여유'를 내가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 이 정도 여유는 있어야 세상을 조금 더 이성적으로, 꼭 필요한 예의는 지키면서 살 수 있는 것 같다.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세상, 남에게 열 수 있는 내 마음의 여유 기준을 안다면, 내가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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