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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진 Oct 24. 2020

이방인의 자세

2020년 10월 24일

6년을 함께 한 회사와 이별 후,

새로운 회사와의 첫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새 회사의 출근 확정 후 누구나 그렇듯 첫인상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 줄까, 첫날부터 실수해서 찍혀서 회사 생활 꼬이면 어떡하나 등 온갖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내게 걱정과 불안이라는 마음을 가져왔지만, 이와 동시에 설렘과 기대도 가져왔다.


이직하는 새 회사도 업력이 9년이나 된다. 세월에 걸맞게 여기도 터줏대감들이 있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회사를 열심히 그려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색은 9년이라는 시간에 걸맞게 짙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색도 사회생활 10년이라는 시간에 걸맞게 꽤나 짙다. 


우리는 신입을 보고 도화지라고 표현한다. 그들은 사회생활이 처음이다. 그래서 회사의 색을 입히기가 좋다. 우리의 기업 목표는 붉은색입니다. 우리의 업무 프로세스는 푸른색입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녹색입니다.라고 이야기할 때 아무도 '왜 붉은색이지?' '왜 푸른색이지?' 의문점을 잘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색을 입히기가 좋다.


하지만, 경력직은 다르다. 경력직은 이미 그림이 다 그려져 있다. 자신이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며 느낀 것을 바탕으로 주황색 기업 목표와, 청록색 업무 프로세스로 칠해진 자신만의 그림이 있다. 그리고 그 기간이 오래될수록 색은 짙다. 


내가 회사를 이직하며 1달간 잊지 말자 다짐하고 다짐한 것이 있다. 중간에 잊어버리고 행동할 까 봐 자꾸자꾸 중간에 상기시키는 것이 있다.


'나는 이방인이다.'

'나는 저 그림이 좋아서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이방인이다.'

'나는 그림이 더 예뻐지길 원하는 것이지. 무작정 내 색을 칠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저 그림을 만드는 동안 기여한 것이 없고, 함부로 바꿔도 될 자격이 없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말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내가 녹아들어야 한다.

내가 스며들어야 한다.

내가 알아가야만 한다.

나는 물어봐야만 한다.

나는 허락받아야 한다.

나는 동의받아야 한다.


누군가는 주인의식이 부족하다고,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충분히 녹아들 때까지 나를 경계할 것이다. 나는 새로운 회사에 팀장으로 간다. 새로운 회사는 나를 내 능력보다 높게 평가해주려 노력하신다. 내가 회사를 좋은 방향으로 크게 바꿔주리라 기대도 하고 계신다. 자리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나는 권한이 있다. 


색을 칠할 권한이 있다.

내가 칠하고 싶은 색을 칠할 권한이 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주 5일의 시간 동안 색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팀원들과 1:1 면담을 하고, 대표님과도 거의 매일 대화하는 자리를 가졌다. 전사 회식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다른 팀의 팀원분들과도 점심 식사자리도 가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었고, 당신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서로 알아가며 천천히 함께 맞춰가려고 한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 권한을 남용하여 회사의 이것저것을 막 바꿨을 때 그 말로가 어땠는지, 그 간의 사회생활을 통해 꽤나 많이 깨달았다. 회사적으로나. 사람적으로나. 


바꾸지 않을 것이다.

함께 그려갈 것이다.


그리고 새 회사, 새로운 회사라고 부르는 것은 이 글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앞으로는 우리 회사라고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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