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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Aug 19. 2021

고양이를 좋아하는 삶은 얼마나 평온할까?

나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싶다.

어떤 드라마의 주인공은 길에서 고양이를 만나면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와 대화를 나눈다.

고양이가 배고파 보이면 안타까워하며 슈퍼에서 캔을 사다가 먹이로 놓아주기도 한다.

가만히 쓰다듬어 주고 발밑을 뱅글뱅글 도는 녀석과 발 장난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나도 고양이를 좋아하고 싶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삶은 별다른 무리 없이 흘러가겠지만 고양이를 아주 무서워하는 삶은 참으로 피곤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고양이를 무서워해왔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냥 동네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보면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 못했고, 가끔 몸을 쭈욱 늘려 음식물 쓰레기통을 잡고 있는 모습이라던가 담벼락 위에서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는 고양이와 무심코 눈이 마주칠 때 공포를 느껴 꼼짝 못 하곤 했었다.

최근에는 많이 좋아져서 그저 옆에서 바라보는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아직도 고양이가 지키고 있는 길은 지나가지 못해서 녀석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삶은 생각보다 꽤 불편하다.


겨울의 주차장은 고양이에게 잠시 쉴 곳을 제공해 준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 옆을 무심코 돌아보았는데 웅크리고 앉아있는 시커먼 고양이를 볼 때면 심장이 내려앉는다. 그래서 날씨가 싸늘해지면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릴 때마다 머리털이 쭈뼛 설만큼 긴장하며 주변을 샅샅이 둘러본다.


지난번에는 집 앞 계단을 올라갈 때 위층 계단 난간 쪽을 돌아보다가 내 얼굴 높이에 앉아있는 얼룩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난리를 피우는 통에 신발까지 벗겨지며 넘어질 뻔하는 추태를 보였다. 아무도 그 모습을 보지 못했기 망정이지 나이가 어리지도 않은 사람이 그러고 있는 걸 누가 봤더라면 한심함에 혀를 찼을 것이다.


가끔 교외의 카페나 식당에 가면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있다.

한 번은 동료들과 찻집에 갔는데 그 집에 고양이가 있었다.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인지 고양이는 누가 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높은 선반에 앉아 손님들을 내려다 았다. 자태마저 아름다워 인테리어의 일부인 듯 그곳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고양이를 보며 예쁘다고 칭찬도 하고 한번 와보라고 손짓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곳에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얼음'이 되어버렸다.

무슨 차를 마셨는지 뭔 얘기를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혹시 선반 위에 있는 그 녀석이 내려오기라도 할까 봐 초 긴장 상태였고, 눈동자는 계속 그쪽 선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고양이를 무서워한다는 것을 아는 동료들은 저 고양이는 절대로 가까이 오지 않는다며 안심하라고 해 주었지만 일단 그 녀석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발끝이 오그라드는 것을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워크숍을 갔을 때에도 그랬다.

경치 좋은 교외의 한적한 캠핑장 같은 곳이라 저녁이면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고기를 굽고 있으니 슬슬 동네 고양이가 한두 마리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캠핑장 주변에 살면서 사람들이 주는 간식을 먹는 재미가 쏠쏠했을 녀석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의자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동료들은 고양이와 발 장난도 하고, 고기 조각도 던져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데 바로 옆에 앉아있는 나는 냉동된 듯 빳빳한 채로 다리를 의자 위에 올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동료들 중에는 나와 같이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친구들도 있긴 했지만 나처럼 혼자 공포영화를 찍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 자신의 등신 같음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올봄까지는 퇴근 후에 아이들과 잠깐씩 놀이터에 가곤 했었다.

놀이터에 갈 때마다 아들과 한 학원을 다닌다는 조그만 여자아이를 자주 만났다. 아이들은 어울려 놀고, 어른들은 운동을 하며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날도 놀이터에는 그 아이가 먼저 와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노는 동안 운동 삼아 놀이터 안을 거닐었는데, 한쪽 구석에 유모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조심하세요. 안에 치즈가 있어요!"

유모차 옆을 지나는 나에게 여자아이가 소리쳤다.

치즈? 치즈를 가져왔다는 건가?

별생각 없이 유모차를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치즈처럼 노오란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고양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보다 없을 줄 알았는데 마주치면 놀람이 두세 배는 된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귀여운 그 아이는 놀이터에 드나드는 길고양이를 애완동물처럼 예뻐하며 만날 때마다 반갑게 놀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부터 놀이터에 갈 때마다 각오가 필요했다. 치즈를 만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 곳곳에는 참 많은 고양이들이 있다.

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겠고, 집 없는 그들이 불쌍한 것도 알겠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이연복 셰프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들도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어요?"

가슴이 찡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들을 못마땅해했는데, 그들이 길 고양이 번식을 막기 위해 중성화 수술을 해준다는 말을 들었다. 행복할 수만은 없는 생명들이 무작정 번식하는 것을 막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가끔 집 안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좋은 먹이를 먹고 자라는 윤이 반지르르한 고양이를 볼 때면 꺼칠한 털로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도망 다니는 길 고양이가 생각나 마음이 안 좋다.

럼에불구하고 무서운 마음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 참 싫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뛰고 있는데 치즈가 나타났다.

치즈는 평소에 아이들이 귀여워해 주어서인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사람이 많은 곳에도 잘 다가왔고, 아이들이 오라고 하면 옆에 가서 재롱도 피워주었다.

고양이에게 치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던 아이는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치즈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간지럽다며 깔깔거렸다.


내가 하도 무서워하니 남편은 치즈가 나타나면 옆에 오지 못하게 쫓아낸다.

쫓아내려는걸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쪼르르 다가오다가, 발을 쾅 굴러 쫓으니 허겁지겁 돌아서서 놀이터 난간 사이로 도망가 버렸다.

예뻐하는 줄 알고 쫓아오다가 멈칫 놀라 돌아서 달려가는 그 뒷모습이 오래도록 아른거렸다.


길고양이가 많은 요즘 길에서 느끼는 긴장감이 너무 피곤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고양이를 예뻐하는 사람이고 싶다.

제대로 먹지 못해 털이 꺼칠한 녀석들을 만날 때면 여유롭게 고양이 참치캔을 사서 먹이로 놓아주고 싶다.

길가 벤치에 앉아있으면 발밑으로 다가오는 녀석들과 발 장난도 하고, 가만히 쓰다듬어주고 싶다.

치즈를 좋아하는 꼬마 아이처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슬쩍슬쩍 다리를 움직여주며 장난도 치고 싶다.

어울려 놀고 있는 녀석들을 공포가 아닌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한겨울 매섭게 추운 날 집 없는 녀석들이 잠시 쉬어가려고 우리 차 보닛 위에 앉아있으면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네고 떠날 때 가지 기다려주고 싶다.


지하 주차장에 늘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 안장 위에 겨울이면 새벽마다 앉아있는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아침 일찍 출근길에 주차장 문을 열면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매일 반복되다 보니 그 자리에 그 녀석이 있으려니 했다.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는 못했고, 내가 지나갈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거기 있으라고 중얼중얼 말도 건넸다.

제발 그 자리에 있지 말고 다른 데로 좀 갔으면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또 어떤 날 녀석이 보이지 않으면 어이없게도 걱정이 되었다.

"어디 갔지? 얘 어디 가서 죽은 거 아니겠지?"

"뭐야, 맨날 무서워하면서 왜 착한척하고 그래."

남편이 핀잔을 주기도 한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내 모습을 아들이 닮을까 봐 걱정이 되는데 다행히 아들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이다. 엄마 때문에 꿈도 못 꾸지만 가끔은 우리도 고양이 키우고 싶다는 말을 해서 나를 놀래키기도 한다.

"나중에 결혼해서 너희 집 가서 키워."

말은 이렇게 하지만 엄마도 고양이가 예뻤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올 겨울에도 지하 주차장 오토바이 안장 위에 그 녀석이 찾아올까?

자주자주 만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나오는 영화도 많이 보고, 그러다가 정말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길에서 만나는 생명이 반가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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