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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Sep 09. 2021

공부왜 해야돼? 아이의질문에 답을 주었다.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_ 오은영

아이를 기르면서 공부 고민을 안 할 수 있을까.

건강하기만 바라던 어린 시절이 가고 아이가 글씨를 익히기 시작할 때부터 아니, 사람에 따라 말을 시작할 때부터 공부 걱정이 따라붙는다. 


아기가 백일도 되지 않아 출산휴가 중이던 시절에 조리원에서 소개를 받고 책을 판매하러 오신 분이 있었다.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으실지 한번 테스트를 해보세요."

테스트 용지에는 몇 개의 보기가 있었다. 

정확한 표현은 생각나지 않지만 1번 보기는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이었고, 2번 보기는 '건강과 더불어 똑똑하게 자라는 것'이라는 정도의 뉘앙스였다. 

나는 당연히 2번 보기를 선택했고, 그분은 2번을 선택하신 분들은 책이 필요하다며 책을 추천해 주었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두뇌발달이 늦어질 것이라며 약간의 불안을 조장하기도 했다. 

차 한 잔만 대접하고 책은 구입하지 않았는데 그때 앞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경우를 많이 겪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느 엄마가 테스트 용지를 보며 '몸만 건강할 것'에 표기를 하겠는가. 두 번째 보기에 '건강+똑똑'이 있다면 2번을 선택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반발심이 좀 더 컸던 것 같다. 

그때 이후로 수많은 학습지 홍보를 보았지만 시키지 않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기 직전까지 한글을 숙지하지 못해서 학습지 선생님을 만났고, 그 후 약 3년간 학습지를 하다가 지금은 체육과 미술 사교육만 하고 있다. 


아이는 수학을 못하는 편인데 학원에 가라고 하면 저항이 너무 심해서 혼자 열심히 해보라고 독려만 하는 상태이다. 물론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 

책을 많이 읽어두면 나중에 학습하는 역량이 쌓일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사는 방식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책 읽기만 권장하고 있다. 그 또한 내가 말한다고 열심히 책을 읽지는 않지만 수학 학원보다는 저항이 약하고 그나마 재밌는 것들을 골라 읽는 편이라 차차 나아지겠지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걱정도 더해간다. 낮에 양육을 책임져주시는 우리 엄마와 이모는 걱정이 태산이시다. 

같이 돌봐 주시는 조카에 비해 우리 아이는 턱없이 공부를 싫어하고, 조카는 잘만 다니는 수학학원을 본인은 안 가겠다고 버틴다. 저러다가 할머니들과 사이가 안 좋아질까 걱정이 되어 '이제 학원 가라는 말은 효력이 없음이 검증되었으니 그만 말씀하시라'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물론 할머니들도 만만치 않다. 계속 말씀하신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아이 공부에 대해서는 나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한편으로는 그렇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이기 때문에 하루에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고작 두 시간 남짓이다. 

아침에 깨워서 데리고 나가 할머니 댁에 떨어뜨려 놓으면 저녁 퇴근 후 8시경에나 얼굴을 본다. 그리고 잠자리에 드는 10시까지가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전부이다. 

그동안 공부 얘기를 시작하면 웃으며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없어진다. 

하루 30분 정도 책 읽기를 함께 하는 것은 별 저항 없이 즐겁게 하기 때문에 그것만은 지킨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웃고 떠들고 같이 뒹굴거리다가 잠자리에 든다. 

이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린다. 


그런데 이 시간 동안 공부에 대한 조언을 하거나 공부 관리를 하면 아이도 나도 기분이 상하고 지친다. 

그런 갈등이 더해지면 학교 숙제를 하라거나 양치질을 하라는 간단한 지시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공부 못하는 아이를 두고 볼 수도 없고, 나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던 차에 예전에 사서 책장에 꽂아 두었던 책이 눈에 띄었다.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육아서를 무더기로 사던 시절에 같이 샀나 보다. 오은영 선생님 책은 나오면 사는 편인데 이 책도 아마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때쯤 사놓고 제대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유아기부터 공부에 대해 부모가 갖춰야 할 자세와 아이를 대하는 세부적인 방법이 나와있어 미리 볼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시절에는 나도 절박함이 적었기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약간의 걱정이 더해져 책이 쏙쏙 읽혔다. (공부나 책이나 다 내가 필요해야 한다. 이렇게 분명한 것을 왜 아이에게 대입하면 흔들리는 걸까.)


앞부분은 유아기, 중반 이후부터는 초등기에 대한 내용인데 전반적으로 부모의 마음가짐에 대한 얘기가 반복해서 나와 다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여러 가지 사례가 재밌게 쓰여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어떤 부분은 내 아이 얘기 같고 어떤 부분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흥미로운 부분은 먼저 발췌해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챕터라고 생각한다. 



'공부의 목적에 대해 아시나요?'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 큰 깨달음을 얻었다. 머릿속으로 뭉게뭉게 들던 생각을 표현하기 힘들었고, 어떤 잡히지 않는 논리를 가지고 아이를 대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단원이었다. 


Story 03. 공부의 목적에 대해 아시나요? 
- 아이가 공부를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성장기의 공부는 대학이 아니라 두뇌 발달에 필요
- 좋은 직업 선택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배우기 위해서
- 공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얻는 수단
- 잘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_ 오은영 저 _ 목차 中


이 목차만 봐도 답이 보인다. 

공부는 저런 이유로 하는 것이다. 


아들이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매번 말한다. 

"대체 이거 왜 하는 거야? 계산기로 계산하면 되는데 수학을 왜 해? 무슨 길 찾기 몇 킬로미터 이런 거 몰라도 길 다 찾는데 왜 해? 글짓기는 왜 해?"

이런 말을 쏟아 놓을 때마다 학교에서 배우니까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나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사실 나부터도 정말 안 해도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 질문에 대한 모법 답안이 여기에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아들과 조카를 앉혀놓고 설명을 해주었다. 

"공부는 공부한 지식을 써먹기 위해서만 하는 게 아니야. 너희 그거 몰라도 다 잘 살 수 있어. 과학 안 배워도 요리할 수 있어. 국에다 소금 넣을 때 소금이 용해되어 대류현상이 일어나야 짠맛이 냄비 전체에 고루 퍼진다. 이런 거 몰라도 그냥 국에다 소금 넣으면 휘휘 저어 먹잖아? 수학 몰라도 계산기 두드리면 돈 계산할 수 있고, 그러니까 공부는 그것 때문에 하는 게 아니야. 오은영 선생님 알지? 그 선생님이 이 책에 말해 주셨어. 너희 머리는 지금 자라는 중이고 그 사이에 적당한 자극을 주지 않으면 자라지 못하고 그냥 열한 살, 열두 살 그대로 머물게 돼. 너희들 우유도 안 먹고, 밥도 잘 안 먹으면 키도 안 크고 몸도 약해지겠지? 밥 잘 먹고 운동해야 키가 크듯이 책을 읽고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머리도 자랄 수 있는 거야. 머리가 자라는 밥을 주는 거야. 그러니까 점수를 잘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거야."

이 말을 하면서 속이 후련했다. 그동안 머뭇거렸던 공부를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주는 것 같았다. 

모범생 조카는 고개를 계속 주억거리며 열심히 들었고, 비 모범생인 나의 아들은 마지못해 몸을 비비 꼬며 들었지만 중간중간 동의의 표시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마무리가 썩 바람직한 편은 아니었다. 

"엄마, 이 책 좀 할머니 좀 갖다 드려. 제발 할머니 좀 드려. 내가 성적표에 노력 요함 한 개 나왔거든. 근데 내가 물어보니까 다른 애들은 막 네 개 다섯 개 나온 애도 많아. 근데 할머니들은 노력 요함 한 개 나오면 공부 못하는 거라고 자꾸 씽크빅 다니라고. 막 그래. 성적표 나온 날도 씽크빅 다녀라. 다음날도 씽크빅 다녀라. 방학 내내 싱크빅 다녀라. 씽크빅 다녀라. 귀가 썩을 거 같아."

(아니, 못하는 친구들한테만 물어봤으니까 그렇지 노력 요함 한 개도 안 나온 애도 수두룩 하구만.)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꿀꺽 삼키고. 


"할머니들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스트레스받긴 할 거야. 그런데 할머니들은 너희 돌보시면서 걱정이 많으셔. 할머니가 돌봐주시는데 너희가 공부 못하고 제대로 안 자랄까 봐 걱정하시는 거야. 그래서 너희 아프면 엄마 아빠보다 걱정 더 많이 하시잖아. 그래서 엄마도 그걸 말리지는 못해. 할머니가 너희 봐주셔서 엄마랑 이모는 너무 마음 놓고 회사에 갈 수 있거든. 그러니까 할머니가 걱정하시지 않게 네가 혼자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돼. 알았지?"


뭐, 내 말이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으나, 책의 내용에는 공감하는 것 같고., 할머니들과의 갈등은 자기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책을 읽고 나서 어느 정도 평화가 찾아왔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해 주고 싶었는데 사실 나도 그 당위성에 명확한 납득이 가지 않던 터에 나 스스로 확신을 얻었다.


공부는 아이의 두뇌 성장과 그 나이에 맞는 자극을 주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 이 사회에 속해 살면서 사회에 필요한 삶의 태도를 배우기 위해 꼭 해야 한다는 것, 참고 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성취감을 얻고 자기 신뢰를 쌓는 과정이라는 것. 그러므로 잘 하지 못해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해 줄 수 있다. 


나이에 맞는 책을 읽지 않고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 나이에 축적되고 학습되어야 하는 지식의 양이 떨어져 결국에는 지능지수가 떨어진다. 아이의 추론 능력을 발달시켜주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많이 주고, 잔소리를 되도록 안 하는 것이다. 아이가 충분한 시간을 주었음에도 생각을 발전시키지 못할 때는 생각의 단서를 던져주어야 한다.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_ 오은영 저 _ 346 페이지


멀쩡한 부모 밑에서 멀쩡하게 잘 자라던 아이가 공부를 안 하거나 못하는 이유는 더 일찍, 더 많이, 더 제대로 가르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어떻게 하면 잘 키울지 치열하게 고민한 부모일수록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부모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하려는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를 잘못 다루고, 부모와 아이의 사이가 나빠진다.
(중략)
때로는 숙제나 일기처럼 간단한 것을 시키기도 어려워진다.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_ 오은영 저 _ 339 페이지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는 방법 또한 아이에게는 공부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방법이 뭐든 부모 위주로 잔소리하고, 윽박지르고, 화내고, 협박하는 것이라면 아이는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다워지라고 가르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_ 오은영 저 _ 346 페이지


아이가 공부를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은 자율성, 독립성, 문제해결력 등이다. 또한 이것을 갖춰야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키워주어야 할 것도 자율성, 독립성, 문제해결력 등이다.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_ 오은영 저 _ 34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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