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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Oct 04. 2021

아이와 함께 보는 책 <식객 2>

명작 만화의 경이로움 & 세대 간 이질감을 아이에게 설명하는 숙제

만화 <식객>은 2001년부터 연재된 1부 27권과 2013년부터 시작되어 2014년에 발행된 3권짜리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언젠가는 식객을 꼭 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전집을 싸게 내놓아서 충동구매했다.


내가 읽고 싶기도 했지만 주구장창 만화책을 보는 아들이 그나마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봤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식객 1부는 풍부한 내용과 감동이 있는 반면 꽤 선정적인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 10대 후반 정도는 되었을 때 권해주기로 하고 나 혼자 꺼내 볼 심산으로 깊은 책장에 넣어 두었다.

식객 2부는 초등학생과 함께 볼만하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은 허영만 화백의 음식 그림에 감탄했다.


특히 만화 스토리 중 음식 그림과 각 챕터별 취재 일기에 담겨있는 사진이 너무 똑같아서 비교해보는 재미가 톡톡하다.

대구알 젓의 그림과 실제 사진


스토리도 재미있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와, 음식을 다루는 사람들의 철학이 읽어볼 만하다. 아들이 보기엔 좀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그림 보는 재미로 책장을 술술 넘겼다.

이런 책을 함께 읽으면 얘깃거리가 생긴다.

"엄마, 식객 한권을 내가 봤는데, 그 끝에 이해가 좀 안 가는 게 있어. 거기 친구가 죽었다는 건가?"

"아, 엄마 아직 다 안 봤어. 보고 얘기해줄게."

내용을 보니 주인공의 친구가 몸이 안 좋아 산에 들어간 내용이 나온다.

결말에 대한 대화를 하며 어느 부분이 헷갈렸는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고 대답하는 동안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다. 뭔가를 가르쳐 주려고 하면 집중 시간이 5분도 못 가는데 같은 책을 읽고 나면 꽤 오랫동안 공감하며 대화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좋다.

 



한편으로는 식객을 읽으면서 한 가지 마음의 숙제가 생겼다.

허영만 작가는 식객을 처음 연재할 때 나이가 50대였고, 2부까지 다 마치고 나서는 70대 초반이었다. 지금은 2부가 완성되고 나서 또 7년이 흘렀으니 80이 다 돼가는 분이시다. 이 책도 7년 전 책이라 여러 가지 면에서 지금과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오래전에 쓰인 책이나 연세가 지긋하신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세대 차이를 느낀다. 연로한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나이를 고려해서 이해하고 넘어간다.

물론, 그조차도 최근에는 이슈가 되는 경우가 많아 착잡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예전에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에 대한 네티즌의 비난 섞인 평을 본 적이 있다. 작품 중 초등학교 남매의 대화가 나오는데, 대화체가 영락없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어린 시절 말투 그대로였고 이것이 거슬린다는 의견이었다. 작가가 연세가 있다 보니 나올 수밖에 없는 오류 아닌 오류였다.


이런 이유로 <식객 2>를 읽으면서 세대차이로 인해 느껴지는 이질감을 아이에게 설명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시민의 삶이 스토리의 기반이 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부부, 연인, 직장동료, 친구 간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대부분 따뜻한 이야기이지만 요즘 올라오는 댓글을 감안해 보자면 비판의 타깃이 될 만한 내용이 가끔 보인다.

예를 들면 사무실의 중간관리자급 싱글 여직원에게 후배 남자 직원이 "빨리 시집을 보내든가 해야지 저러다 처녀귀신 되겠다."라는 농담을 한다던가, 연인 사이에 이해가 필요한 부분에서 남녀의 차이를 두는 발언 등이 그러하다. 또는 사랑하는 사람 간의 대화가 마치 80년대 로맨스 영화의 대사처럼 어색하다. (이런 부분이 많지는 않다. 작가가 우리 부모님과 동년배인 것을 감안하면 연세에 비해 생각이 젊다는 느낌도 든다.)


우리는 제인 오스틴이나 톨스토이, 한국의 근대 소설 등을 아직도 즐겨 읽는다. 지금과 많이 다르지만 그 당시 인물들의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읽는다. 현대의 작가들이 쓰는 소설에서도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동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세대가 동일한 생각을 품고 살 수는 없다. 개인차이를 떠나서 내가 속한 세월에서 얻은  사고방식을 벗어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현재의 시점에서 책을 쓰고 있으니 지금의 세태를 반영해야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소설은 1인이 만들어내는 예술이므로 작가의 세계 속에서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조금 놀라운 것은 최근 나온 어린이 소설에서도 이러한 가치관이 포함된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내 나이 또래의 작가들이 많고, 나 또한 결코 젊지 않은 나이이니 그들도 무의식 중에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작품에 반영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이유로 아이가 읽으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받을 만한 내용이 들어있는 책은 읽자고 하기가 조금 망설여질 때가 있다.

이 고민을 꽤 오래 했는데, 그래도 권해주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아이가 보는 모든 책과 대중매체에는 만든 이들의 생각이 담겨있다. 그 모든 것들을 내가 사전 검열하고 차단할 수는 없다. 차라리 스스로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생각하고 비판하는 연습을 함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독서와 독서교육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쉽지는 않겠지만 같이 얘기하면서 생각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걸러주어야 할 것들도 물론 있다. 선정성이나 폭력성이 너무 높은 성인물이라던가, 설정이 조잡하여 오히려 문해력을 기르는데 저해가 되는 작품들은 최대한 늦게 접도록 노력한다. 무신경하게 표현된 성희롱에 해당할 정도의 농담이라던가, 성 역할 개념에 문제가 될 만한 것들, 지극히 폭력적인 것들은 보여주지 말도록 하고,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다면 왜 그 부분이 문제가 되는지 허심탄회하게 말해 주는 것도 이해할 나이가 되었다.

욕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을 접하면 그게 욕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 남이 그런 말을 들으면 욕이라는 것을 인지 하고, 본인이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해 준다.

사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아이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누가 봐도 악당인 경우는 말해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아이가 안다. 문제는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 않는 미묘한 것들을 생각 없이 넘어가지 않도록 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인정하되, 서로에게 피해가 되는 것은 알려주고 이해하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멀리 가지 않아도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만 해도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한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업무를 대하는 방식에서도 세대차이는 느껴지고, 대화법이나 일상적인 사고방식도 모두 다르다. 개인의 차이를 차치한다 하더라도 세대 간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어느 시대나 세대 간 격차는 있으므로, 모든 집단이 어우러져 살기 위해 생각을 표현하고 인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지켜내기 쉽지 않다. 나부터도 내 생각과 많이 다른 사람의 주장에 발끈하며 대항할 때가 많다.

한자리에 앉아 대화하면서 불편한 주제를 불러오는 사람이 있다면 "불편합니다."라고 정중히 말하고, 지적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무신경했음을 인정하고 "미안합니다. 몰랐습니다."라고 사심 없이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최소한 나와 내 아이는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싶다.




다시 <식객>으로 돌아가 마무리를 해야겠다.

식객은 허영만이라는 사람의 직업의식과 오랜 노력, 만화가 그 정도의 가치 있는 예술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와 함께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음식을 만들고 다루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들만의 확고한 철학을 가진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많다. 수익이 나지 않는 일, 노동의 숭고함 등을 알 수 있는 기회도 되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림과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작가의 성실한 그림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 안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면 아이에게 감추려고 하지 말고 이렇게 얘기해 보는 것이 좋다.

"엄마가 보기엔 이 부분은 작가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른 것 같아. 작가마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읽는 사람이 판단하고 받아들일만한 것만 받아들이는 법을 훈련해야 해.

책을 읽을 때뿐 아니라 세상을 사는 것도 비슷해.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그리고 네가 모두 한 가족으로 이해하며 살아가듯이 세상도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살아야 돼. 서로 피해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가면서 살자. '그럴 수 있지.'라는 자세도 필요해. 내 생각과 다른 것을 인정은 해주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화내지 않고 표현하고, 내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반성하는 법도 연습하자.'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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