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잠깐만요'가 정말 잠깐의 시간이 필요한 긴박한 순간에 나올 때는 별로 없다. 대부분 즉시 멈춰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만화책을 보고 있을 때라든지, 장난감을 가지고 혼자서 놀고 있을 때라든지, 심지어 침대에 걸터앉아 멍을 때리고 있는 허접한 순간조차도 뭘 하라고 하면 '잠깐만요'를 외치고 한참 있다가 지시에 따른다.
그때 내장 깊숙한 곳부터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참는 것이 요즘 내가 가장 에너지를 쏟는 일이다.
어차피 30초 이내로 움직여 주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도 그 '잠깐만요'가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한 번에 들어주면 얼마나 좋겠냔 말이다. 가끔 30초를 한참 넘어 세 번 네 번을 불러야 말을 들을 때는 꼭 한대 쥐어박으면 속이 후련할 것 같다.
그런데 그때 참지 않고 확 소리를 지르면 입이 댓 발은 나와서 삐치기 모드에 돌입해 버린다. 그럼 더 피곤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심호흡과 순간 명상을 하며 그 30초를 버텨낸다.
습관이 될까 봐 걱정스럽기도 하고 내가 너무 만만해 보이나 은근히 자존심도 상해서 고쳐보려고 해도 서로 기분만 상하기 때문에 잠깐 기다려 주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늘 식당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얘가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뭔가 천성적으로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 느리거나 딴생각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은 모처럼 세 식구가 외출을 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우연히 간 식당이 만두전골을 맛있게 하는 집이라 만족스럽게 식사를 끝냈다.
"빨리 가자!"
밥 먹고 난 후에 문구류 매장을 구경하러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숟가락을 놓자마자 아들이 외쳤다.
"그래. 가자"
주섬주섬 핸드폰을 챙기고 가방을 들었다. 좌식 테이블이라 바닥에 떨어진 것은 없는지 자리를 한번 살피고 나와 남편은 일어나 식당 문 앞으로 나왔다. 그런데 뒤따라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들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천정을 45도 정도 올려다보며 멍하니 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쟤 왜 안 나와?"
성미가 급한 남편은 아이를 불러오려고 바로 돌아섰다.
"잠깐만 기다려봐."
나도 어이가 없었지만 어떻게 하는지 좀 보고 싶어서 잠시 두고 보았다.
등이 구부정한 채로 아빠 다리를 하고 상에 앉아있던 아들은 약 10초간 더 멍을 때리더니 부스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멍을 때리고 나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를 따라 식당을 나왔다. 아주 자연스러운 표정이라 왜 그렇게 오래 앉아있었느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내 자식이긴 하지만 다 이해할 수가 없으니, 저 사람은 저 정도가 정속도 인가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어쩌면 시간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모두 다를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면 우리 엄마도 늘 밥 차려놨는데 발딱 일어나서 나오지 않는다고 소리를 질러댔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엔 분명히 나는 '밥 먹어라' 하면 하던 것을 멈추고 바로 나왔던 것 같은데 그 속도가 엄마의 성에는 차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이 정도면 됐지 무슨 5분 대기조도 아니고 어떻게 말 끝나자마자 바로 나와?'
나도 늘 그것이 불만이었지만 엄마가 무서워서 대꾸는 못하고 속으로만 입을 삐죽거리곤 했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우리 엄마보다 만만한 편이기는 하다. 아들이 삐치기라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애가 없을 때는 '난 자식 낳으면 절대 소리 안 질러야지'다짐했는데 요즘 엄마가 이해는 간다.)
아마 아들도 그럴 것이다.
"잠깐만요"라고 말하는 것은 "나 지금 가려고 발동 걸고 있어요."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에 동의를 했고, 따를 생각이 충분히 있는데 지금 그걸 실행하려고 준비 중일 때는 기다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 그래도 한다고는 하잖아? 싫다고는 안 하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그런데 더 문제가 될 때는 정말 빨리하면 좋겠는 일을 지금 하지 않겠다고 버틸 때이다.
예를 들면, 외출하고 늦게 돌아온 날, 샤워를 하고 책가방을 정리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해서 한시가 급한데, 갑자기 조금 있다가 샤워를 하겠다고 버틴다. 역시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 자신은 나갔다 오느라 힘들었으니 조금 있다가 샤워를 하고 싶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설득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빨리해야 하는 이유를 본인이 완벽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도 시간이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샤워와 잘 준비를 신속히 끝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하기 싫은 것이다.
이제 이럴 때는 그냥 조금 있다 하자고 말한다. '어, 지금 좀 힘들어? 그럼 조금 있다 하자.'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잠깐 쉴 시간을 주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다. 이것도 참 치사한 것이 화난 표정을 짓거나 그럼 네 맘대로 하라는 듯한 퉁명스러운 자세를 취하면 역효과가 난다. 아주 명랑하고 발랄한 표정으로 '그래? 그럼 조금 있다 하자.'라고 속이 터져도 말해준다. 그러면 자기 의견이 통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고집을 좀 꺾는 기미가 보인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줄 수 있겠는가, 얼른 준비하고 자야 내일 아침에 또 깨우기 전쟁을 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아이의 시간과 어른의 시간이 다른 것은 이런 경우에도 통하는 법칙인 것 같다.
아들이 생각하는 '조금 있다가'의 '조금'은 내 생각보다 대부분 짧다.
완전히 안 하겠다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필요성을 알고 있는 일이라면 당장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아주 잠깐 시간을 주면 휴식의 효과가 난다.
약 5분에서 10분만 흘러도 다시 제안했을 때 성공률이 높다.
물론 그럴 때도 아주 흔쾌히 하겠다고 하지는 않는다. '흔쾌한'것을 기대하면 늘 부모 쪽에서 울화가 치미는 결과를 얻게 된다. 그냥 무뚝뚝하게 알았다고 하고 하면 성공한 것이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니까 참고하려는데 기분 좋은 얼굴까지 강요한다면 더 하기 싫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입장을 바꿔서 회사에서 시키는 죽도록 하기 싫은 일을 죽지 못해 하려는데 상사가 '웃는 얼굴로 해, 웃는 얼굴로. 기분 좋게!'라고 하면 한대 후려치고 싶지 않겠는가?
물론 내 기준으로는 지 몸 닦는 샤워가 그렇게 '죽도록 하기 싫은 일'일 필요는 없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 주기로 한다.
오늘도 이렇게 저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잘 살아 보기 위해 아들의 행동을 깊이깊이 분석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