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귀남이 (1)

귀남이 생활도 애환이 있다.

by 춘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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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요리세계] 이후 ... 그 밖의 이야기




수차례 말해왔지만 내 남편은 귀남이다. 위로 나이 차이가 꽤 있는 누나 셋을 둔 막내이자 외아들이니 어머니의 남편 사랑이 어느 정도 일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짐작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남편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군대는 어떻게 갔어? 어머니 당신 군대 갈 때 엄청 우셨겠는데?"

"아~니. 나 군대 갈 때 어머니 우리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배웅하셨어."


어머니가 가끔 사람을 놀라게 할 때가 바로 이런 때이다.

애지중지하는 아들이 군대를 간다고 하니 훈련소까지 눈물바람으로 따라오셨다는 스토리를 기대했는데 의외였다.


"왜? 보통 엄마들 훈련소는 같이 가는데?"

"내가 거의 일주일 남겨놓고 말씀드렸어. 그리고 오시지 말라고 하니까 안 오시더라."

"어? 왜 영장 나오자마자 말씀 안 드리고?."

"뭐...... 미리 말하면 뭐해."


그렇지,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집 식구들은 질척한 애정표현 하지 않는 편이라는 것을. 오죽하면 온 가족이 모이는 것도 명절, 어머니 생신, 아버님 제사 말고는 거의 없는 편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심지어 셋이나 있는 누나들조차 막내 동생 군대 가는 날 얼굴을 보러 오지도 않았다고 하니 알만하다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무것도 안 하신 건 아니야. 엄청난 면회를 오셨어."




여기서 잠깐 어머니의 성향을 파악해 보자면, 우리 시어머니는 정치를 하셨다면 권모술수에 능하셨을 것이고, 사업을 하셨다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승부사가 되셨을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완전히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시지는 않지만 뭔가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부담이 되지 않을 만한 가벼운 뇌물을 준다던가, 상대가 기분 좋을 정도의 무심하게 던지는 코멘트에 능한 편이시다.


내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을 금치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득이 없는 경우에는 그런 서비스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에게 그 어떤 선물도 하지 않으신다던가, 남의 결혼식장에서 신부 이모에게 할머니냐고 물어보신다던가 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런 어머니가 군대에 간 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실행에 옮기신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거의 30년 전이니 그때는 군대에서 전화도 자유롭게 할 수 없었고, 휴가를 언제 나오는지도 임박해야 알 수 있었다. 또, 훈련소에 들어가 백일 휴가를 나오기 전까지는 휴가란 없었고, 어떤 경우는 자대 배치를 어딜 받았는지 집으로 바로 연락이 오지 않아 한참 기다려야 알 수 있기도 했다.


그런 시절에 아들이 자대 배치를 받자마자 어머니께서 강행하신 것은 아는 사람을 총동원하여 아들이 있는 부대의 높은 사람과 줄을 대는 것이었다. 얼마나 높은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군용 차량을 타고 들어가는 정도의 직위에 있었던 사람인 것 같다.


어느 날 남편은 면회자가 있다는 말에 밖으로 나갔는데 높으신 분의 차량이 연병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와 누나였다. 눈이 휘둥그레 해질 일이었다.

군인과 아무런 관련 없는 일반 시민 어머니가 왜 저차에서 내려?

잠깐 멍하게 보고 있자니 그쪽에서 남편을 불렀고, 남편은 위병소에서 어머니와 면회를 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귤을 한 박스를 들고 오셔서 남편의 내무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고, 면회는 평범하게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 특별히 휴가를 내보내 준 것도 아니고? "

"어~ 그냥 오셔서 면회하고 가셨어."

"근데 그분은 누구야? 친척이야?"

"아~니야. 그냥 모르는 사람이야."


알고 보니 지인을 통하고 통해서 부대에 아는 사람과 연결이 되었고, 어머니는 누구에게 인지 모르지만 거금 20만 원을 주고 아들을 만나러 가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군용 차량을 타고 면회를 오신 것이다. 그 돈을 그 군인이 받았는지 지인 중 한 명이 중간에 가져갔는지도 잘 모르시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대단한 혜택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냥 군용 차량을 타고 들어와서 일반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위병소에서 비슷한 시간만큼 면회를 하고 가셨다고 하니 왜 그런 일을 벌이신 것인지 남편도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최근 조카들이 군대에 갈 때가 되어 이 얘기가 나왔는데 어머니의 사연은 이러했다.

"우리 아들 잘 봐주소~"라는 뜻으로 돈도 좀 찔러주셨고, 어머니가 그렇게 등장하면 다른 군인들이 아들을 호락호락하게 보지는 못할 것이라는 심산으로 계획하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후 아들은 한동안 더 고역스러운 날들을 보냈다고 한다.

"엄마! 나 그것 땜에 엄청 욕먹었어요. 너 뭐냐고, 너 무슨 누구 아들이라도 되냐고, 니네 엄마 왜 저차 타고 왔냐고 다구리 엄청 당했어요. 내가 그때는 말을 안했지."

그 얘기에 식구들이 모두 박장대소를 했고, 어머니의 표정은 슬펐다.

"그러냐~ . 난 울아덜 얕보지 말라고 그랬제."

"근데 그러고 나서 면회 한 번도 안 오셨잖아요."

"잉~ 휴가 자주자주 나오더먼."


어머니의 아들사랑 표현법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듣고 보면 남편은 귀남이 신분에도 불구하고 금이야 옥이야 자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살림이 어려워 악착같이 돈을 모으셨다는 어머니는 늘 고기를 못 먹여서 아들이 키가 작다고 한탄을 하신다. 처음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키야 타고나는 것인데 그것 때문이겠나 싶었는데 어머니 반찬 하시는 것을 보면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형님들은 그다지 작지 않으신 걸 봐서는 그 이유가 아닌 것 같기는 하다.)


내가 아기를 낳아서 어머니댁에 데리고 가 처음 이유식을 먹이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적잖게 놀라셨다.

"그라고 좋게 해서 멕이냐~. 아이고, 요거조거 다 들어갔네. 나는 울 애덜 밥 국물만 떠서 멕였는디~."

어찌나 표정이 애처로운지 나까지 안쓰러울 뻔했었다.


한 가지 더 애처로운 에피소드는 남편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난 지금까지 한 번도 생일파티한 적 없어."

"뭐, 나도 딱 한 번밖에 안 해봤어. 원래 우리 때는 지금 애들처럼 많이 안 했잖아."

"어, 그렇긴 하지. 나도 딱 한번 어머니가 해주신다고 했는데 그때도 못했어."

"왜?"

"하~. 왜냐면......"

이렇게 시작한 남편의 얘기는 웃기고도 슬펐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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