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귀남이 (2)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떠올려 본 내 엄마와 그때의 어머니들

by 춘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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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내가 친구들처럼 생일파티 해달라고 막 졸랐어. 그랬더니 엄마가 '그래, 해줄게. 친구들 데리고 와. 그러신 거야. 웬 일로. 근데 또 딱 두명만 데려오라는 거야. 두 명은 또 뭐야. 근데 두 명도 데려온 적 없었으니까 좋아가지고 학교에 가서 너랑 너만 와. 뭐 이렇게 친구 두 명을 찍었어. 근데 애들이 늦게 오기로 하고 나만 먼저 집에 왔어. 근데 집에 와봤더니...... "


사정은 이러했다.

신이 난 남편은 두 친구를 초대해 놓고 허겁지겁 집으로 먼저왔다. 당시 남편의 집은 마당이 있는 작은 한옥이었는데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마루가 보이는 구조였다고 한다.


숨차게 뛰어와 대문을 열어보니 나무로 만들어진 마루 위에 쟁반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그 쟁반에 과자 두 봉지 (두 봉지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양이었다고 한다.)가 마구 쏟아져 있었다.


"그게 끝?"

"어! 무슨 밥상도 없고, 그냥 쟁반에 과자가 끝이었어. 그래서 내가 막 울었어."

"으하하하. 근데 친구들이 뭐라고 했어?"

"아니, 왠지 모르겠는데 친구들이 안 왔던 거 같애. 다행이지."

"여보 우는 거 보고 친구들이 그냥 간 거 아냐?."

"어, 그럴지도 모르지, 그건 잘 생각이 안 나네."

"누나들은 없었어? 누나들이 좀 안 챙겨줬어?"
"아, 그 과자 누나들이 먹었어. 어머니가 나보고 먹으랬는데 내가 울면서 '안 먹어!' 막 이랬더니 누나들이 '안 먹으면 내가 먹는다~'. 이러면서 먹어버렸어. 어머니는 신경도 안 쓰셨어."

"흐흐흐흐. 너무했네~"


모두의 얼굴이 상상이 가서 한참을 웃었지만 한편으로 어린 남편이 조금 측은했다.




아들 출산이라는 어머니의 중대 미션을 달성해 준 남편이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줄 만한 물질적 여유는 없으셨다. 남편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 중 생일파티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것은 '땀복'사건이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남편은 아이들 사이에 대 유행이던 '땀복'이라 불리는 상하세트 트레이닝복이 입고 싶었다. 특히 '나이키 땀복'이 대 유행이었고, 자기도 그걸 한번 입어보고 싶어서 엄마에게 졸랐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반장 되면 사주께."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남편은 초등학교 기간 동안 반장을 몇 차례 해 보았기 때문에 자신 있었고, 이번에는 땀복을 받아내기 위해 선거에 출마해 당선이 되었다. 어머니는 약속된 옷을 사주기 위해 아들과 함께 상가로 향했다.


그러나 나이키 땀복은 너무 비쌌다.

"뭐시 요로고 비싸냐."

나이키는 도저히 사줄 수 없어 어머니가 아들에게 사주신 땀복은 '히포 (Hippo)'였다.



사실 '히포'는 80년대 10대들이 꽤 많이 입고 다니던 유명한 상표였다. 하도 인기가 많아 '짝퉁'도 엄청 많았고, 가격도 아주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나이키를 꿈꿨던 남편이지만 원하는 옷을 사주는 법이 없으셨던 어머니가 땀복을 사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며 히포 트레이닝복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번에도 만족감을 느낄 여유를 주지 않으셨다. 남편 말에 의하면 옷을 입었는데 팔을 쫙 펴도 손 끝으로 옷이 펄럭일만큼 큰 사이즈를 사주셨다고 한다. 키가 작아 반에서 5번을 벗어나지 못했던 아들이 내년에는 쑤~욱 클 것을 기대하며 엄청난 사이즈를 구입하신 것이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남편은 내년에도 그만큼 쑤~욱 자라지 못했다.


반장에 당선된 그해에도 그 옷을 커서 못 입고, 그다음 해에도 못 입고, 옷이 맞을 만큼 자랐을 때는 유행이 지나서 못 입고, 결국 한 번도 그 옷을 입고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당시 우리 집이나 남편의 집이나 가난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하는 서민층이었던 우리 둘의 부모님들은 근면하게 하루하루를 살며 자식들 교육 밑천을 장만하기 바쁘셨다. 자식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은 일 년에 한 번도 사주기 힘들었으니 우리는 예쁜 옷이나 유행하는 물건 같은 것은 꿈꿔보지도 못하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런데도 남편의 히포 땀복 얘기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머니와 남편 두 사람의 대화가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고, 지금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남편의 키에 대한 어머니의 아쉬움이 안쓰러우면서도 너무 웃기기 때문이다.




처음 들었을 때 박장대소했던 땀복 얘기는 이따금 떠올라 우리의 부모님들을 생각하게 한다.


나도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 입던 '티피코시'라던가 '카운트 다운' 같은 곳에서 파는 옷들을 입지 못했다. 엄마가 한 번씩 큰 맘을 먹고 나와 동생을 데리고 가서 옷을 사던 곳은 재래시장이었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입구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모든 연령대의 옷을 팔던 엄청난 규모의 옷가게가 있었는데 늘 그 가게에서 옷을 사곤 했다. 학생들이 입을만한 청바지나 티셔츠 등 다양한 종류의 옷으로 구색은 맞춰 놓았으나 친구들이 입고 다니는 세련되고 상큼한 옷은 없었다. 그래도 새 옷을 사주는 것이 좋아서 나와 동생은 이것저것 입어보며 옷을 골랐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이 기억난다.


매번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옷가게를 가긴 하지만, 맘에 드는 옷의 가격표를 보고 들었다 놓았다 하는 딸들을 보며 그래도 그중에서는 가격 생각하지 말고 비싸도 맘에 드는 걸 사라던 엄마의 모습이 아련하면서도 찡하다.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주었을 때 만족스러워하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하다. 다 사주지는 못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결핍을 잘 모른다는 말에 공감할 만큼 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이런저런 이유로 해주지 못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러니 그 시절의 엄마들은 오죽했을까.


어머니도 나이키 땀복을 사주고 싶었을 것이고, 우리 엄마도 티피코시 쇼윈도에 걸려있는 깜찍한 후드티를 사주고 싶었을 것이다.


무심한 어머니가 밥상이 아닌 쟁반에 과자를 부어놓는 것으로 생일 파티 준비를 마친 것은 조금 센스의 부족이라고 볼 수는 있다. 그런 섬세한 부분에 약하긴 하시니까 그 일이 마흔 넘어서까지 아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거라고 예측도 못하셨을 테고 뭘 애 생일에 그런 걸 챙기냐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어머니를 보면 그 일들이 어머니의 마음속에도 조금은 아프게 남았을 것 같다.


얼마 전에 어머니댁에 남성 화장품 세트가 사은품으로 들어왔다.

"어, 어머니, 이거 남자 거네요. 내가 써야겠네."

"나가 쓸거여. 몸에다 바를거인디?"

"참, 나. 흐흐. 그러세요."


이주 후에 갔더니 쇼핑백에 그 화장품 세트를 넣어서 남편에게 주셨다.

"이거 울 아덜 써."

"에? 어머니 써요. 그냥 해본말이야."

"아덜 써. 볼때마다 생각나드먼."


옆에서 보고 있자니 참 눈물겹게 우스웠다.

탐나는 물건도 아닌데 농담 삼아한 말에 내내 마음이 쓰여 싸주시는 걸 보면 생일파티나 히포 땀복이 어머니에게도 아주 아무렇지 않은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우리의 어머니들도 자식의 낙담에 마음이 쓰렸을 것이다.

먹고사는데 힘이 들어 신경 쓸 여력이 없었거나, 그때는 아이의 마음을 세심하게 들여다 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느끼지 못했거나, 한편으로는 자식 귀한 것이야 누구인들 다를까마는 그걸 드러내는 것도, 달래주는 것도 자식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참았거나.


사람마다 이유가 달랐겠지만, 지금 엄마가 되어 생각해보면 어떤 이유로든 애틋한 마음을 표현할 여유가 없었던 당시의 엄마들을 한 번씩 안아주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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