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1박 2일 서바이벌 워크숍

시어머니의 요리세계 # 추석특집

by 춘춘

어머니댁으로 워크숍 출발!


명절은 1박 2일 워크숍 같은 거잖아? 일 년에 두 번 일하러 가는 거잖아? 즐거운 일들도 중간중간 있잖아?

긍정의 마인드 컨트롤로 무장하고 멜론 한 박스를 기분 좋게 사들고 어머니댁으로 출발했다.


"어머니, 저희 아침 먹고 갈 건데 뭐 사갈 거 없어요?"

"다 사놨시야, 술이랑 햅쌀만 사면돼. 앙껏도 안 해!"

"아, 그럼 혼자 가지 마시고 저희 가면 같이 시장 가세요."

"잉, 알았써!"

어떤 해에는 기운이 좀 떨어지시면 별로 음식장만을 하지 않으시고, 당일에 가족들이 모여 먹을 해물탕과 고깃거리만 준비하실 때가 있다. 올해가 그 해인가 보다. 반가운 소식이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똑똑!

벨이 고장 났지만 절대로 고치지 않는 어머니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왔냐~"

달그락 닥닥 찰캉.

문을 열기 전부터 왔냐고 물으시는 철문 뒤편의 어머니 목소리.

뭔가 부산스럽다. 잠금쇠 두 개를 여는 소리에 부산스러움이 묻어있다.

뭔가 불안하다.

역시.

어머니는 전을 부치고 계셨다.


전 부치는 것이 싫은 게 아니다.


지난 "시어머니의 요리세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전 부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친정도 차례음식을 꽤 하는 편이라 이건 그냥 하는 거려니 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단지...... #어머니와준비하는차례음식 에 두려움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양이 많아서도 아니요. 비난을 받아서도 아니다.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할 때 느끼는 당황스러움과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응하는 피로감과 비슷하다고 할까.


오늘의 주인공은 부침개와 소고기 탕


"나가 요것 사돈한테 배웠씨야, 국이 할머니가 요로콤 부추 넣고 바지락 넣고 부침개 한다느먼."

형님네 시어머니가 하신다는 부침개 레시피를 구두로 들으셨나 보다. 뭔가 그럴듯한 반죽을 이용한 부침개가 반 이상 부쳐지고 있었다.


"아, 이건 제가 부칠게요."

어머니가 부치시던 부침개를 마무리할 요량으로 뒤집개를 넘겨받아 부치기 시작했다. 한쪽 면이 익기를 기다렸다가 뒤집어 익히려고 뒤집개를 부침개 아래에 밀어 넣고 들어 올렸더니 뒤집개 모양 그대로 부침개가 뚝 떨어져 나온다. 두부를 갈아서 부치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조심해서 뒤집어도 자꾸 부침개다 다시 반죽모양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음..... 어머니 여기 계란 넣으셨어요?"

"그재. 계란 넣어야 부드럽드먼, 부침가리만 넣응께 뻣뻣해."

어쩐지 반죽이 상당히 노랬다.

어머니는 계란을 정말 많이 넣으셨던 것이다. 밀가루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반죽에 부추와 양파 등 갖가지 채소와 바지락을 잘 섞어 넣고 부치면 끈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결국 슬슬슬 프라이팬을 흔들어 부침개를 홀딱 던져 뒤집는 식으로 기름을 사방팔방으로 튀겨가며 간신히 모두 부쳐냈다. 여러 장의 부침개는 접시 위에 켜켜이 쌓여 다시 한 덩어리가 된 듯 부드러운 케이크의 형태가 되었다.


부침개 던져 받기 묘기를 마치고 점심식사 준비가 시작됐다.

"울 손자 멕일라믄 괴기좀 구워야 헌디? 나 국 안낄이묵응께 요것쪼까 구워멕여라."

어머니는 국거리를 잔뜩 녹여 들고 나오셨다. 아, 저 국거리를 구워서 질긴 고기 먹는걸 올해는 하고 싶지 않아 적극적으로 말렸다.

"어머니, 그거 구우면 너무 질겨서 맛이 없어요."

"그람 으쩌까? 국 좀 끼릴까?"


뚝배기에 국거리 소고기가 거의 가득 뭉텅 들어갔다.

그 옆에 자리 잡고 있던 애호박이 썰려 들어갔다. 아마도 그 자리에 다른 채소가 있었다면 그 채소가 잡혀 들어갔을 것이다. 물은 재료가 잠길 만큼 자작한 상태.

칙칙폭폭 고기가 끓기 시작한다.

저것의 명칭은 불고기가 적절할까? 저것을 고깃국이라 불러야 하나?

낯선 레시피로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음식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불현듯 나는 무기력해진다. 이것은 화가 났다거나 짜증 난 것과는 다르다. 그냥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가 된다.


내가 그렇게 패잔병 같은 모습으로 멍하니 서있을 때 어머니는 불꽃같은 속도로 요리를 완성하셨다. 보기에는 불고기쪽에 가깝다.


식사가 차려지고 어머니와 나, 남편과 아들이 밥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대망의 소고깃국이라고 불리는 불고기 모양의 탕이 나왔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대부분 어머니의 요리들이 그럭저럭 먹을만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엉망진창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명절이라 큰맘 먹고 사놓으신 한우 고기는 맛 좋은 국물을 우려내줬고, 모든 음식에 간장대신 들어가는 멸치액젓이 애호박과 어우러져 감칠맛이 났다.

심지어 맛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며 온 식구가 맛있게 먹었다. 나도 국물까지 싹싹 퍼먹으며 왠지 모르게 약이 올랐다.


이 소고깃국을 대하는 나의 기분은, 영화를 보는 내내 악당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인물인데 알고 보니 선량한 사람이라 더는 미워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막 좋아하기도 짜증 나는 그런 걸쩍지근한 기분과 유사했다.


어떤 비난도 받지 않았지만 뭔가 강력한 공격을 콤보로 받아내고 퀘스트를 단계별로 해결한듯 한 하루를 마치고 나는 녹초가 됐다. 아, 우리 집으로 복귀하니 좋다.

이번 명절 워크숍 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