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밥상 : 여자밥상 = 4:1

가깝고도 먼 남자밥상과 여자밥상 그리고, 추석 반란

by 춘춘
남자 밥상과 여자 밥상은 늘 딱 붙어있지만
퍼스트 클래스와 이코노미 좌석처럼
보이지 않는 경계로 구분된다.
남자 밥상에 자리한 인원들은 자기들이 먹는 음식이 어떻게 밥상까지 도달하는지 모른다. 우리가 식당에서 주문을하면 주방과 홀의 직원들이 어떤 경로로 음식을 내 오는지 궁금하지 않듯이.




추석날 점심

큰 형님이 좀 늦으실 것 같으니 다른 식구들 먼저 먹으라는 연락을 주셨다.


"어서어서 준비해라. 어서 먼저 먹어라. 배고파서 못 기다린다. 밥그릇 가져와라 내가 밥푸께."

어머니는 허겁지겁 다른 형제들 먼저 먹으라고 서두르셨다.

올해는 허리가 안 좋으셔서 직접 왔다 갔다 하기 힘드시니 다급한 마음에 말씀이 두 배 많으시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큰형님네 식구들 빼고 모두 아홉 명, 어머니가 밥을 다섯 개만 푸시길래 나머지 밥그릇을 더 가져다 드렸다.


"우리도 먼저 먹을라고?"

나를 보며 묻는 어머니 얼굴을 스캔한 결과 두 개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1. 남자들 먼저 먹고 여자들은 큰애네 오면 먹어야지 먼저 먹어부러야?

2. 너 먼저 먹고 친정에 갈라고 그라냐? 다 같이 먹고 과일도 같이 먹고 늦게 가야제?


어머니 마음의 소리 센싱결과 은근히 약이 올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저 지금 먹을 건데요?"

"그래라 그르믄."


마음을 들킨 어머니는 허겁지겁 나머지 밥 네 개를 마저 푸셨다.


곧이어 해물탕과 갈비를 상으로 가져다 나르는 순서가 되었다.

해물탕은 똑같은 사이즈의 전골냄비 두 개였는데, 1번 냄비가 남자들 상으로 먼저 옮겨졌다.

나머지 2번 냄비에 큰 형님네 네 식구 먹을 것을 남겨두고 여자들 상에 놓을 것을 덜으려는 찰나, 어머니가 다급하게 말씀하셨다.


"우덜은 갈비 먹으면 되쟈?"

말을 해석하면, 해물탕 한 개는 큰 사위랑 손주 오면 줘야 하니 손대지 말고 여자들은 해물탕 먹지 말고 양 많은 갈비만 먹어라.라는 뜻이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반항심이 치솟아 손이 더 빨라졌다. 요번엔 어머니 뜻대로 안 될 것이다. 얼른 국자를 들어 낙지가 소복이 올라앉은 완벽한 모양의 2번 해물탕을 무너뜨렸다. 낙지와 게와 전복을 찌개 대접에 담뿍 담아 여자들 상에 가져다 놓았다.


2번 전골냄비에는 큰 형님 가족 4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만큼의 해물탕이 남아있었지만 어머니의 시선은 무너진 2번 냄비를 떠나지 않았고 나는 통쾌한 마음에 입술 양끝이 올라가려는 걸 꾹 참으며 무표정을 지켜냈다.


어머니의 남녀 차별은 아들, 딸, 사위, 며느리를 가리지 않고 공정하다. 그래서 서러운 마음은 없으나 울화는 터진다.

형님들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차별에 익숙하셔서 그러려니 하고 넘기시나 보지만 나는 아직도 그려려니가 안되어 틈만 나면 소심한 반항을 한다.


그래도 남자상과 여자상에 올라갈 해물탕의 사이즈가 동일해졌고, 갈비양이 많아 것은 작년 추석 조카가 저지른 충격적 항변 사건 덕분이다.




2022년 9월 11일 추석날 점심 오후 1시경


조카가 밥을 먹다 말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썬아, 밥 다 먹은 거야?" 아빠의 물음에 조카 써니가 앙칼지게 대답했다.

"안 먹어! 반찬 없어!"


곧이어 발을 쿵쿵 구르며 밖으로 나온 조카는 외할머니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니, 다 같이 먹을 수 있게 반찬을 나눠서 놔야지. 저쪽 상에만 다 주면 어떡해요? 고생한 사람들은 이쪽인데 고기랑 찌개를 그쪽에만 놓으면 어떡하냐고!"


큰형님네 조카 써니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여성이다. 원래도 똑똑하고 재치 있는 꼬마였는데 자라면서 더 영민해졌다.

아들 선호사상으로 온몸을 휘감고 계시는 우리 어머니도 손자들이 득실득실한 중에 딱 하나 있는 손녀딸이라고 조카를 아주 예뻐하신다. 그런 손녀딸이 처음으로 외할머니의 차별에 반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늘 상을 차릴 때 남자상과 여자상에 올릴 메인 반찬을 구분하신다. 넓적하고 커다란 전골냄비는 남자상에, 작고 둥그런 뚝배기는 여자상에 놓인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는 해물의 비율은 지독하게 불균형하다.


만약, 게를 다섯 마리 샀다면 남자상용 전골냄비에는 네 마리, 여자상용 뚝배기에는 한 마리가 들어간다. 여자상용 뚝배기는 작아서 한 마리 이상 넣으래야 넣을 수도 없다.


전골냄비가 한 개 더 있지만 한 번에 두 개의 전골냄비를 쓰는 일은 드물다. 두 냄비 가득 해물을 넣으면 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해물은 물론 무와 야채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어야 속이 후련하신 어머니는 아까운 국물이 수챗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늘 찌개를 모자라게 끓이신다.


그럼 두 상 모두 양을 적게 놓으면 될 일이지만 아들과 사위들이 있는 상에 부족함이 느껴져서는 안 된다.

그런 이유로 전골냄비 그득하게 게와 해물이 들어찬 해물탕은 최대한 먹음직스럽게 꾸려져 남자상으로, 게 한 마리로 꽉 차버린 뚝배기는 여자상으로 가게 된다. 혹시라도 남자 밥상에서 찌개가 남게 되면 여자 밥상으로 옮겨져 먹어치워져야 어머니 마음에 흡족한 식사로 마무리될 수 있다.


특히 그 해 추석에는 갈비찜 솥이 작아서 두 번에 나누어 쪄내졌다. 먼저 나온 찜이 두 개의 그릇에 담겨 나갔다. 이번에도 역시 1번 그릇은 갈비를 소복이 담아 남자상으로 나갔고, 2번 그릇은 남은 고기와 국물이 가득 담겨 여자상으로 나갔다. 2번 그릇은 국물이 잘름 잘름 차서 안에 들어있는 고기가 전혀 보이지 않아 갈비라고 이름표를 붙이지 않으면 무슨 음식인지 알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내가 시집오기 훨씬 전부터 행해졌을 행태인데 그 해에 특히 조카의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은 그날 조카가 여자 상에서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조카는 딸이지만 어려서 그전까지 주로 아빠나 오빠 옆자리, 남자상에서 밥을 먹곤 했었다. 그날은 어떤 이유로 조카가 여자상의 중앙 부분에 앉게 되었다. 그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종종거리며 상을 차린 엄마와 이모, 외숙모가 앉은 상에는 찌개도 갈비찜도 국물만 풍덩하고, 아빠와 이모부, 삼촌이 있는 남자들 상에는 고기와 게딱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던 것이다.


수십 년간 그러려니 하고 살아온 식구들은 20대 젋은이가 몰고 온 새 바람에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조카도 그렇게 질러 놓고는 계면쩍은 듯 웃으며 다시 앉아 밥을 먹었다. 당황하신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두 번째 판에 압력솥에서 나온 갈비를 듬뿍 퍼서 조카 앞에 놓아주셨다. 조카는 민망해하며 고기를 집어 자기 엄마 밥 위에 올려주었다.

허겁지겁 고기를 골라 손녀딸 앞에 놓는 어머니 모습에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그 얘기를 하며 웃었지만...

남편도 어머니의 남녀차별을 답답해하는 사람이라 조카의 돌발행위에 속이 후련했다고 했다.


그런데 뒤이어 이런 말을 했다.

"전에는 국이랑 혁이가 있어서 남자들이 많았잖아. 이번에는 국이네가 못 와서 남자들이 없는데도 그러니까 써니가 화가 났지."

나는 조금 놀랐다.


"무슨 소리야? 오늘 우리 준이 빼고 남자 다섯에 여자 다섯이었어. 그리고 국이랑 혁이 있을 때는 양을 많이 했지만 여자상은 항상 똑같았어. 여보, 오늘 게 몇 마리였는 줄 알아? 남자상에 게 네 마리 있었지? 여자상에 한 마리였어. 그거 늘 그랬어. 몰랐어?"

남편은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어...... 몰랐어."

"와, 그걸 몰랐구나. 하긴 자기 자리에 앉아서 밥만 먹으면 모르지. 써니가 화가 날 만도 하지. 걔는 완전 젊은이인데, 나가서 차별당할 일 있어도 황당할 텐데 집에서 그걸 느꼈으니 터진 거지."


"근데, 큰 이모님도 그러시잖아, 큰 이모님도 남자상에 음식 계속 놓으셔."

남녀 차별이 은근히 심한 우리 이모 얘기다.


"그래, 이모도 그렇긴 하지. 나도 그게 성질나. 그래도 이모는 음식을 많이 해서 여자들도 모자람 없이 먹게 해 준다고. 아니, 근데 그건 보였나 보네. 이모가 그러는 건 보였는데 어머니가 그러는 건 안보였어?"

"어... 허허. 안 보였어. 아, 난 몰랐네."


남자 밥상과 여자 밥상은 딱 붙어있지만, 퍼스트 클래스와 이코노미 좌석처럼 보이지 않는 경계로 구분된다. 그리고 남자 밥상에 자리한 인원들은 자기들이 먹는 음식이 어떻게 밥상까지 도달하는지 모른다. 우리가 식당에서 주문을하면 주방과 홀의 직원들이 어떤 경로로 음식을 내 오는지 궁금하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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