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맥주 한 캔과 야리끼리

바짝 일해서 끝내고 나면 또다시 바짝 일할 거리를 주는 것이 회사다.

by 춘춘

2015년, 대통령은 청년실업 대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중동으로 가라'는 말을 거듭했습니다. 70년대 국내의 모든 경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했던 한국 건설업의 중동 진출 향수를 잊지 못하는 것이겠죠.


당시는 업체가 해외공사 수행 시 예기치 않은 문제에 닥치면 국가에서 외교적 경로를 통해 다각적이고 신속한 지원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중동도, 한국도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었습니다.


80년대의 긍정 에너지를 언급하며 '개발도상국에서 한 달만 지내보면 국민적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는 또 다른 정치인의 얘기 또한 허상을 좇는 공감 없는 조언이 아니었을까요?


벌써 7년이 지난 과거의 발언들이지만 아직도 근로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합니다.


7,80년대 중동 진출이 경제발전의 한 축을 이뤘고, 그 성과가 근로자의 피땀으로 일궈진 것이라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합니다.

워라밸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사십 년 전, 박기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하루는 어땠을까요? 한번 들여다볼까요?



박기사님 이야기 5편

1979년, 이라크 움카슬


끝없이 펼쳐진 1차선 도로를 달리다가 그 날도 날이 저물어 길 한쪽에 차를 대고 트레일러 지붕으로 올라가 몸을 뉘었다.

“박형, 레미콘이 오티를 더 많이 주잖아요. 그런데 왜 이쪽으로 왔어요? 나야 마침 딱 이자리가 나와서 얼씨구나 오긴했지만 박형은 거기 있었어도 됐잖아요?”

“레미콘이 더 짭짤하긴 하지. 그런데 이쪽은 중간 오티를 맞춰주니까 안정적이야, 힘도 덜 들고. 그쪽은 야리끼리를 주거든.”

“아, 그렇지. 밤 일들을 그렇게 하니까.”


쏟아질듯 총총 박힌 별들을 보며 박기사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도 지루한 1차선 도로를 며칠씩 달리고, 시멘트 공장아래서 기약없이 뙤얕볕을 쬐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야리끼리를 받아 시간을 채우던 때의 고단함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기사는 이라크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레미콘 팀으로 보직을 이동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에서 트레일러 운전을 해본 경력을 인정받아 뽑혀갈 수 있었던 것이다.

레미콘 팀에 합류하기로 한 날 저녁, 숙소에서 자주 어울렸던 콘크리트공 친구가 자신의 월급 명세서를 보여주었다.


"1000달러? 이게 한 달 월급이라고?"

"그래, 이번 달에 천 달러 탄 거야. 박형도 요 정도 받게 된다고."

"천 달러 오티 받으려면...... 한 달에 27일을 밤새워 일했단 말이야? 어떻게 한 달 내내 밤을 새웠어?"

"야리끼리를 주니까 그렇지.”


야리끼리.

공사현장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일본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그날 정해진 작업량을 마치면 하루 일과가 끝나는 것을 말한다.

이라크 현장에서는 낮 시간에 캔 맥주와 물, 소금 등을 지급해 주면서 8시간 일할 거리를 5시간 안에 끝내도록 도급을 줬다. 일정량을 빨리 끝내고 숙소에 들어가 쉬게 한 후 야간에 다음날 일할 몫을 또 야리끼리 준다. 대부분 자정 넘어서까지 일을 했고, 이렇게 일을하면 월 300달러짜리 인부가 1000달러까지 급료를 받아가는 기록이 달성되는 것이다.

증동 근로자 모집 필수 조건 1순위가 '신체 건강한 남성'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최대한 인력을 가동하여 공사기간을 단축해야 회사가 버티고 수주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가족이 생계를 유지하고 안정된 생활을 위한 목돈을 마련할 생각에 번 돈을 송금하느라 힘들다는 생각을할 겨를도 없었다.

레미콘 운전을 하면서 박기사는 근무시간 내내 차에서 내리는 일이 없었다. 더운 열기로 몸 속 수분이 소변으로 나오기 전에 땀으로 모두 빠져나오는 덕에 화장실을 갈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 운전을 하고 차에서 내리면 바지가랑이가 풀을 먹인 것처럼 뻣뻣했다.

땀이 흘렀다 마르기를 반복한 통에 웃도리 등판에 소금기가 하얗게 배어 버석거리는 인부들의 뒷모습을 보며 감독관이 혀를 내둘렀다.


현장 감독관은 영국인이었다. 깐깐한 금발머리 감독관은 부실공사를 막기위한 감시를 철저히했다. 콘크리트 굳기를 확인하기 위해 무작위로 여기저기 해머로 내리치는 것이 그이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해머로 내리친 콘크리트가 부서져 기준에 미달되면 작업이 다시 반복해야했다.

가느다란 눈을 더 얇게 뜨고 인부들을 감시하는 영국 감독관도 한국인들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릴 때가 많았다. 간식으로 맥주 한 캔을 받고, 쉬는 시간도 없이 두 시간 일할 거리를 한 시간에 마치면서도 새벽까지 불을 밝히고 일을 하는 한국인들에게 그는 종종 언빌리버블을 외쳤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태권도를 할 줄 아는 것도 그의 눈에는 신기했다. 더구나 길가의 맹수와도 같은 들개들과 각종 야생동물을 수시로 잡아서 끓여 먹는 모습은 그의 작은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이벤트기도 했다.


박기사님 인터뷰

2022년 서울, 박기사님 자택


박기사 : 사고가 있었어. 국내에서 버스기사 하던 사람이 트레일러 운전 연습을 하고 나서 레미콘 일을 했는데, 졸음운전을 한 거야. 좁은 언덕길을 내려오다가 뒤에 실려있는 시멘트 몸체가 헤드를 이기지 못해서 사막 바닥으로 굴렀지.

박차장 : 어머, 사람은 안 다쳤고?

박기사 : 사람 다치는 사고는 아니었어. 근데 그 사람이 그 일을 계속하지는 못했고, 다른 기사가 필요해서 내가 그쪽으로 가게 된 거지.

박차장 : 밤낮으로 일하니까 졸음운전을 할 수밖에 없지. 중동 파견 성공이 근로자의 피땀으로 일군 거라는 게 빈말이 아니었어.

박기사 : 회사는 회사대로 손해 감수하는 부분도 있어가면서 수주를 시작했고, 일꾼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악착같이 일했으니까.

박차장 : 자료를 좀 봤어. 70년대 중동 진출 긍정적 의미에 대해서. 당시에 실업문제에, 외화부족, 개발자금 조달, 에너지 위기 이런 것들이 중동 진출로 한 번에 해결됐다고. 노동자들도 거기까지 갔으니까 죽어라 일했을 거고. 당시에 중동에서 2년 일하고 나면 내 집 마련할 정도였다면서.

박기사 : 그렇지. 우리도 뭐 그렇게 해서 집도 사고 그런 거지. 그때 영국인 감독관이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면서 그랬어, 한국인들은 잠도 안 자고 대단하다.

박차장 : 우리나라 사람들 지금도 일 많이 하는 건 세계적으로 상위권이잖아. 일인당 주어지는 업무가 많고 대체인력은 없으니까 근무시간제한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밖에 없어. 주어진 일을 제시간에 못 채우니 근무 제한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말인데 그걸 뭉뚱그려서 근로 제한 시간제를 근로자도 반대한다라고 해석하는 것도 우습지.



[주 52시간 근무제와 PC 오프 제도]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지키기 위해 회사에서 PC 오프 제도를 시행한다고 했습니다.

'옆 건물은 불이 밤늦게까지 켜져 있던데 우리는 금방 깜깜해져.'라는 회장님 말씀이 퍼져나간 후로 워라밸 캠페인은 빈말로 통하고 있던 시기였어요. 주 40시간 근무를 지키라는 새로운 빈말이 생기는 걸까 싶었습니다.

그저 하는 소리쯤으로 들었던 근무시간제한이 PC오프라는 공식적인 제도로 자리 잡기 시작하자 사원들은 이제 정말 근로시간제한을 시행하는 것인가 보다 믿기 시작했습니다.

PC 오프 제도는 정말 철저히 지켜졌습니다. 근무 시작 15분 전부터 PC를 사용할 수 있었고, 퇴근시간 15분 후에는 마우스 사용이 불가능해졌어요.
새로는 제도는 순식간에 자리 잡혔고, 육아와 자기 계발이 수월해졌다는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본부장과의 식사자리에서 주 52시간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주 52시간이 아니야. 주 40시간이 원칙이야. 피치 못한 경우에만 근로시간을 52시간까지 연장하는 거지. 근무시간에 집중하면 되는 거야."
본부장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실제로 근무시간 내에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추가 근무 신청을 올립니다. 조직장이 승인을 해주면 주 52시간까지 근무를 연장할 수 있어요.
야근이 필요한 사람들은 종종 초과근무를 신청해서 업무를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팀장이 조용히 직원들을 불러 부탁 아닌 부탁을 했습니다.
"일찍 출근하면 초과근무 좀 올려. 남을 일 있으면 초과근무 올리고 일하고. 본부장이 초과근무 내역 취합한대."
팀별로 시간 외 근무를 얼마나 하는지 알아야 인력이 더 필요한 부서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조사의 취지라고 했습니다.
그다음부터 최소 일주일에 서너 시간 이상은 초과근무를 하도록 하자는 비 공식적인 캠페인이 팀 내에 돌기 시작했습니다.

주 52시간을 꼭 채우라고 압박하는 회사가 있다는 뉴스 기사가 났습니다.
공공연하게 52시간을 채우길 강요하는 회사보다는 그나마 눈치만 안 보면 칼퇴근할 수 있는 우리 회사가 더 나은 게 아니냐는 직원들의 잡담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죠. 52시간을 근무해도 기존에 야근하던 시절보다 근무시간이 적은 편이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개발 부서가 새벽 3시에 퇴근하고 다음날 9시에 출근하는 것을 영웅담처럼 늘어놓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입니다. 그때에 비하면 인식도 제도도 정말 많이 발전했는데요. 그래도 아직까지 경영진은 야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바짝 일해서 끝내고 마음껏 쉬면 되지 않겠냐'던 정치인의 의견은 비 현실적인 얘기입니다. 바짝 일해서 끝내고 나면 또다시 바짝 일할 거리를 주는 것이 회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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