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어디에나 즐거움은 있다.

리비아 대 수로공사 현장 내무반에서의 잔재미

by 춘춘

어릴 적 우리 집 어항에는 열대어 구피가 있었습니다.

실리콘으로 여덟 군데 모서리를 막아 만든 커다란 어항 안에 수십 마리의 구피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자면 힐링 동영상이 따로 없었어요.


구피는 물고기임에도 불구하고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데, 암컷이 한 두 마리만 끼어 있어도 번식력 좋아서 금세 수십 배로 불어납니다. 자기들의 후손이 태어난 순간 먹이로 착각해서 삼켜버리는 녀석들도 많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많은 새끼를 낳기 때문에 개체수가 급속히 증가하는거죠.

임산부 구피를 격리할 수 있는 플라스틱 통이 따로 있었는데요. 그 곳에서 엄마 구피가 새끼를 낳으면 새끼들이 어항속의 다른 구피들과 분리되서 생활하게됩니다.


새끼를 밴 암컷의 배가 부풀어 비늘이 징그럽게 일어서기 시작하면 수면에 동동 뜨는 플라스틱 통 안에 새끼를 넣어 놓습니다.

그 안에서 며칠 안에 암컷은 새끼를 낳고, 새끼들은 통 안에 분리된 공간으로 쏙 빠지게 됩니다. 그 안에는 물만 통과할 수 있고, 물고기 들은 통할 수 없는 구멍이 나 있는데요. 그 안에서 아기 구피들이 한동안 생활합니다.

어느정도 자라서 어른 구피들에게 먹히지 않을 크기가 되면 그때 통 밖으로 놓아주죠. 이런 작업들이 구피를 키우는 재미를 더 쏠쏠하게 만들었답니다.


암컷이 새끼 낳는 통에 분리되면 그날부터 새끼 나오는 순간을 보고 싶어서 틈날때마다 어항만 들여다보던 생각이 납니다. 학교갔다온 사이에 새끼가 나와 버리면 그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어요.


그 구피들은 아빠가 리비아에서 돌아올 때 자동차 배터리 박스에 넣어서 가져오신 것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비행기 검열이 심하지 않았나 봅니다. 리비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빠들은 그곳에서 기르던 구피를 조금씩 분양해 왔습니다.


휴식도 즐길거리도 척박한 중동 땅에서 낚시를 즐기다가 낭패를 본 발전공 아저씨의 딱한 사연을 지난 9편에서 소개했지만요.

누구나 그렇게 리스크 높은 즐거움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딜 가나 작은 즐거움은 있으니까요.



박기사님 이야기 11편

1988년, 리비아


사막의 저녁 날씨는 꽤 춥다.

땀 한 방울 까지도 말려버리던 한낮의 더위는 해가 지자마자 사그라들고 언제 그랬냐는 듯 밤공기는 싸늘함이 감돈다.

열대어 구피는 추워지면 위험하기 때문에 밤이 되면 어항에 전기를 켜 주어야 했다.


누군가 열대어를 몇 마리 구해왔다. 내무반에서 키워보자며 비닐봉지에 담아왔지만 사막 한가운데서 제대로 된 어항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여럿이 모이면 솜씨 좋은 사람이 한둘은 있기 마련이다. 아이디어도 좋고 손재주도 좋은 최기사가 배터리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박스 내용물을 비우고 양 옆면 유리에 물을 채웠더니 그럴듯한 어항이 되었다.

그 안에 구피를 넣고 키웠다.


처음에는 관심 없던 사람들도 힘차게 움직이는 아름다운 꼬리를 한참씩 들여다보기도 하고 새끼가 늘어가는 것을 기특해하며 물고기에 정을 들였다.

구피는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다. 꽤 많은 숫자의 새끼를 낳지만 지들 새끼인 줄 모르고 먹어버리는 수가 많기 때문에 용케 살아남은 녀석들만 숨어 다니며 잘 자라 종족 수를 늘린다. 수컷들은 화려한 색깔의 지느러미를 제각각 자랑한다. 신기할 만큼 각자 다른 색깔과 모양의 꼬리지느러미를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해 암컷들은 수수한 은색이다. 암컷이 새끼를 배면 배가 부르기 시작한다. 조금씩 부풀어 오르던 배에 비늘이 서기 시작하면 새끼 나올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매일 관찰하다 보면 이제 오늘 밤 즈음에 새끼가 나오겠다 싶은 감이 온다. 새끼 낳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밤 잠을 안 자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지루하고 낙이 없는 사막의 생활에서 열대어 구피는 그들에게 활기를 주었다.


그날 밤에도 어항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전구를 켜 두었다.

다음날 아침, 하필 일이 그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일을 하러 나가면서 누구 하나 전구 끄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당번을 정한 것이 아니라서 방을 나서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먼저 꺼주고 나가곤 했는데 그날따라 구피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나 보다.


일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간 시간은 저녁 8시쯤이었다.

방에 들어와 보니 어항 속에서 녀석들이 쏜살같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난리를 치는 모습에 근로자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뜨거운 사막의 낮 시간 동안 전구가 켜져 있었으니 물 온도가 올라가 구피들이 견디기 힘들어진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찬 물을 받아와 허겁지겁 어항 안에 부어 주었다. 온도가 조금씩 내려가면서 열대어들의 움직임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한 마리도 죽지 않고 안정을 찾아 여유롭게 헤엄치는 걸 보고 그제야 다들 한 숨을 내 쉬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다 끓여 죽일 뻔했네.”

물이 뜨겁다고 총알같이 헤엄을 치던 녀석들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근로자들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죽지 않고 살아주어서 기특하다는 안도의 웃음이기도 했다.



재밋거리가 없는 리비아에서 근로자들의 지루함을 달래주었던 것은 열대어뿐만이 아니었다.

박기사가 리비아에 도착한 이틀째 되는 날 저녁, 동료들이 한 방에 모였다. 리비아에 먼저 나와 몇 달을 지낸 동료들은 새로 입국한 동료들이 반갑기 그지없었다. 함박웃음을 웃으며 들어오는 그들이 들고 들어온 것은 술이었다.

“아니, 술이 있어?”

“술이 어딨어. 만들었지. 일주일이면 만들어. “

“허, 재주도 좋네.”


신나게 설명해 주는 동료의 레시피는 간단했다.

2리터 용량의 페트병에 건포도와 빵 만들 때 쓰는 이스트를 구해 넣고 물을 채워 넣는다. 마개를 잘 막아서 뜨거운 모래 속에 넣어놓고 일주일 후에 열어보면 술이 되어 있단다.

작업장이 사막 가운데인 데다가 아랍 국가라서 술을 구하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술을 보니 애주가인 박기사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없는 술을 만들어 낸 기술자들은 당연히 제조법을 발전시키기 위해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주변에 널린 게 뜨거운 모래 속 어디든 술병을 박아놓으면 술이 되긴 하지만 위치를 잡고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다. 누군가가 보온병을 구해다가 그 안에 재료를 넣고 온도를 유지시켜 술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거기서 더 발전해서, 고장 난 덤프트럭을 이용하기도 했다. 공사 현장 주변에 고장이 났어도 수리가 불가능해서 방치해 둔 덤프트럭이 몇 개 있었다. 그중하나에 모래를 가득 실어 놓으면 사막의 열기에 달궈져 그 속이 엄청나게 뜨거워진다. 그 안에 술통을 큼지막하게 넣어놓고 이십일쯤 묵혀두면 술 냄새가 퐁퐁 솟아오르는 그럴듯한 술이 만들어졌다.


회사에서는 관리 차원에서 가끔 관물대 검사를 하긴 했지만, 특별히 통제를 심하게 하지는 않았다. 문제가 될 만큼 과음을 하는 사람도 없었고, 심심한 사막 한가운데 현장에서 그 정도의 놀잇감은 눈감아 주자는 분위기였다.

그 술이 뭐 그렇게 맛있었겠냐마는 없는 술을 만들어먹는 재미와 삼삼오오 모여서 한잔씩 하는 맛은 힘들고 지루한 사막생활의 달콤한 기억 한 자락으로 자리 잡았다.


박기사님 인터뷰

2022년 서울, 박 기사님 자택에서


박차장 : 그렇게 만든 술은 무슨 맛입니까? 맛있어요?


박기사 : 음 막걸리보다 조금 독할까? 탁주 같은데 텁텁한 과일주, 술은 술인데 막걸리나 소주 같은 맛은 없지. 쓰지는 않은데 취해.


박차장 : 회사에서 뭐라고 안 하나? 걸리면 어떻게 돼?


박기사 : 가끔 관물 검사도 하고 그랬는데, 뭐 그래도 특별히 통제를 심하게 하지는 않았어.


박차장 : 사우디에서도 만들어 먹었어?


박기사 : 사우디에서도 먹는 사람은 먹었는데, 사우디는 국가 자체에서도 통제가 심했어. 더구나 나는 장비 때문에 리야드에서 젯다로, 젯다에서 타이푸로 늘 옮겨 다녔고, 중기 싣고 장거리 다니는 게 일이라 술을 거의 입에 대지 못했지.


박차장 : 한국 아저씨들 대단하십니다. 어디서든 잘 살아남아. 그래도 이라크나 사우디아라비아보다는 리비아가 나았어?


박기사 : 덥기는 리비아가 더 더워. 그렇지만 그때는 회사에 직원 소속으로 가서 상황이 훨씬 나았지. 동료들이랑 같이 가니까 외롭지도 않고. 근데 돈은 별로 안됐어. 이라크가 국내 봉급의 5배였다면 사우디아라비아는 3 배정도 됐고, 리비아는 2배 정도밖에 안 됐지. 그 후로는 한국인들이 그렇게 가지 않았어. 그때 벌써 태국 사람들이 많이 이었지. 그때쯤은 한국 트레일러 운전사들이 가면 공사 단가가 안 맞았지. 그 후로 태국인들이 그 일들을 주로 했어.


박차장 : 국내 인건비가 높아지니까 그쪽에서 주는 돈이 국내 대비 그렇게 높지 않았겠네.


박기사 : 그렇지. 근로자들 인건비도 높아지고, 국내 건설 현장이 점점 발전하면서 해외 수주를 기술력으로 맡기 시작했지.


박차장 : 아무튼 아빠가 구피 가져와서 우리 꽤 재밌게 키웠어. 근데 그거 나중에 다 죽은 거 기억나? 엄마가 안된다고 했는데, 아빠가 어디서 새로운 품종 사다가 같이 넣었더니 다 죽어버렸잖아. 종류 다른 것들 함부로 넣으면 안 맞아서 죽을 수 있다고 엄마가 반대했는데. 기억 안 나?


박기사 : 거 뭐... 기억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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