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사와 교내의 다른 선생님들이 교실 뒤에 서서 수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우리 담임 선생님은 처음 부임해서 담임을 맡은 신참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선생님이 긴장하신 모습이 어린 내 눈에도 보였습니다.
그날 수업의 주제는 부모님께 편지 쓰기였습니다.
나는 아빠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곧 발표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발표할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셨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어요. 돌이켜보면 그 정도는 미리 각본을 짜 놓으셔도 됐을 텐데 경험이 없으셔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아 당황하신 선생님이 안쓰러웠는지 교실 뒤에 서서 참관하시던 다른 선생님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셨습니다.
"선생님 당황하시잖아. 얼른 손들고 발표해."
돌아보니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시키셔서 엉겁결에 손을 들었습니다. 발표할 학생이 없어 난처해하시던 담임선생님은 반짝 기뻐하며 저를 지목하셨습니다.
"아빠가 가신지 한 달이 넘었어요."
이런, 인사말을 꺼냈는데 눈물이 왈칵 나왔습니다.
아빠가 리비아로 떠난 지 한 달이 다돼 갔지만 전화도 편지도 받지 못해 애를 태우던 마음을 편지로 적었는데 한 줄을 읽고 울어버렸던 거예요.
목이 메어서 다음 줄을 읽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려 울어버렸습니다.
어쩔 줄 몰라하던 담임 선생님이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구나'라는 위로의 말을 건넨 것까지만 그날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중동행은 리비아 뿐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가 리비아에 가서 1년이나 있다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서운했습니다. 아빠와 헤어짐의 인사를 했던 기억은 나지 않네요.
다만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전화연결이 되었을 때,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는 ‘아빠’ 한마디만 하고 우느라 아무 말도 못 했던 기억만 또렷합니다.
박기사님 이야기 10편
1988년, 사하라 사막, 리비아 대 수로공사 현장 내무반
오밤중에 두 사람의 티격대는 소리에 같은방 동료들이 하나 둘 깨기 시작했다.
“아이고, 또 시작이야.”
“그만하고 자! 남들까지 깨우지 말고.”
아마도 김기사가 또 코를 골았다 보다.
잠귀가 밝은 정기사는 김기사의 코골이가 시작되면 마치 알람 종 소리를 들은 듯 벌떡 일어나 앉아 투덜대기 시작한다.
정기사의 타박에 김기사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몸은 고단하고, 스무살 넘어서부터 골아댔던 코를 어떻게 하루아침에 안 골 수 있겠느냐며 버럭거린다.
웬만한 천둥소리에도 꿈쩍 않는 박기사도 오늘은 두사람의 다투는 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워 잠이 깨고 말았다.
“저렇게 잠귀가 밝아서야…. 내일 또 피곤하겠구먼.”
베개를 고쳐베고 돌아 누우며 박기사는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남들까지 다 깨우는 김기사의 큰 소리가 짜증스럽기는 했지만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다.
선잠이 들었다가 누군가 코 고는 소리에 홀딱 깨 버리면 그때부터 두고 온 가족들 생각이며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 다시 잠들기가 힘들다. 하루종일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밤잠을 못 자면 졸린 일을 하는 그 긴 낮시간을 배겨날 수가 없다. 그러니 코 고는 사람과 잠귀 밝은 사람들 사이에 심심치 않게 밤 싸움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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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아라비아에 다녀온 뒤 박기사는 트레일러 운전 특기를 살려 대한통운에 취직을 했고, 얼마 후 작은 연립주택도 장만했다. 방이 두개라 박기사 부부가 방 한개, 어머니와 두 딸이 방 한개를 쓰고, 거실겸 부엌에는 아이들 책상과 밥상도 놓을 수 있었다. 넓지 않은 집이었지만 내 집이 생겼고, 더이상 일 이년에 한번씩 이사 다닐 필요가 없어진 것 만으로도 생활은 평온해졌다.
박기사가 마흔이 되던 해, 회사에서는 리비아 대 수로공사에 파견나갈 인원을 모집했다. 한 일년 고생하면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모집공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에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딸이 11살, 작은 딸이 8살 되던 해에 박기사는 또 다시 중동으로 향했다.
리비아 대 수로공사는 사막을 가로질러 물길을 틔우는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었다. 수십년 전부터 리비아 정부는 남부 사하라 사막 지하에 대량의 지하수가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북부 지중해 해안의 발달된 도시에는 물이 부족했으므로, 정부에서는 남부 사막 아래 지하수를 길어올려 북부로 공급할 꿈을 꾸기 시작했다. 리비아 최고 실권자 카다피 대령은 이 꿈을 달성하기 위해 사하라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송수관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고, ‘세계 8번째 불가사의‘가 될 것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발표했다. 약 25년에 걸쳐 총 길이 4,000킬로미터의 송수관을 사막 지하에 매설하는 계획이었다.
공사를 따내기 위해 세계 유수의 건설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수십개 건설사들 중 한국의 동아그룹이 최종 발탁되었다. 동아 그룹의 각 계열사들에게 역할이 주어졌다. 동아 콘크리트에서는 수로 생산을, 대한 통운은 송수관 운반을, 동아 건설은 송수관 매설 작업을 맡는 것으로 계약이 맺어졌다.
사막에서의 대규모 공사는 결코 쉽지 않았다. 강한 바람은 모래를 실어날라 하루에도 몇 번씩 지형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건설 장비 구석구석 모래바람이 들어가 자주 마모되었고, 1미터 이내의 시야확보도 힘들때가 많았다.
‘사하라’라는 말은 아랍어로 불모지를 뜻한다. 세계에서 가장 광활하고 건조한 이곳은 생명체가 존재하기 힘든 곳이다.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혹서속에서 땀은 나오자 마자 말라버렸다. 옷이 빨아들인 땀은 닿자마자 수분을 잃어 운전하고 나오는 근로자들의 셔츠와 바지는 허연 소금기로 서걱거렸다.
박기사와 동료들은 대한통운 소속으로, 대형 관을 실어 옮기는 트레일러 운전기사들이었다.
지름 4m, 길이 7.5m의 송수관을 연결하여 4천 킬로미터의 수로를 만드는 것이다. 트레일러 한 대에 실리는 수관 한개의 무게는 80톤 정도였다. 80톤 무게를 실은 차가 아스팔트 위를 달리면 도로가 망가지기 때문에 리비아 당국에서는 트레일러들이 도로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차가 관을 싣고 갈 때는 비포장 도로로 가고, 빈 차일때만 아스팔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근로자들은 비 포장 도로를 ‘빨래판 도로’라고 불렀다. 굴곡진 길이 빨래판처럼 울퉁불퉁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이 길을 빨리 달리면 트레일러 위에 실은 수관이 망가진다. 현장에서는 비싼 수관을 보호하기 위해 비포장 도로위에서 관을 싣고 빨리 달리는 것은 금지했다.
약 20대 이상의 트레일러가 줄을 이어 달렸고, 속도는 30시속 30킬로미터 이하로 통제된다. 20대의 트레일러 무리 맨 앞에는 지프차가 에스코트를 하고, 뒤에는 정비차량이 붙는다. 에어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찜통 차 속에서 시속 30킬로미터로 몇 시간 운전을 하면서 졸립지 않은 기사가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면 식당에서는 기사들에게 커다란 병 가득 커피를 담아 나눠 주었다. 자판기 커피가루를 끓여놓은 것 같은 시커먼 색이었다. 기사들은 졸음을 견디기 위해 한 사발 이상 되는 커피를 하루종일 수시로 들이키며 잠을 쫓았다.
이런 운전은 졸음과의 싸움이었다. 속도를 유지하며 앞 차를 따라가야 하는 운전속에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순간을 기사들은 죽을 맛이라고 표현했다. 푹푹 찌는 더위속에서 버텨내려면 밤 잠이라도 잘 자야했다. 그러니 누군가 코를 골고 이를 갈면 다 같이 쓰는 숙소에서 잠귀 밝은 사람은 깨기 마련이고, 싸움이 안 날 수가 없었다.
박기사님 인터뷰
2022년 서울, 박 기사님 자택에서
박차장 : 리비아는 이라크나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더웠지?
박기사 :그렇지. 거긴 사하라 사막이니까 진짜 사막이었지. 땀이 흐르지 않고 나오자마자 그냥 말라. 차에서 내리면 바지가 소금기에 절어 서걱거리지. 그래도 리비아 대 수로공사 때는 88년이었으니까 차에 에어컨이 있었어. 근데 그것도 툭하면 고장 나는 거야. 차가 비포장 도로에서 80톤씩 싣고 덜컹대면서 뛰니까 에어컨이 못 배겨 나는 거지
박차장 : 사막에서 에어컨 없이 어떻게 운전을 하나.
박기사 : 에어컨이 있을 때 하고 없을 때가 천지차이야.
우선 에어컨이 있으면 문을 닫을 수 있는데, 없으면 열고 가야 되거든. 너무 뜨거워서 문 닫고는 운전을 못해. 그럼 차 안으로 모래바람이 불어닥치는 거야. 운전을 하는데 한 치 앞이 안 보여. 차 문을 열고 내려다보면 차 타이어가 안 보여. 트레일러에 달린 클락션도 새 차일 때는 요란한데 나중에는 모래가 클락션에 들어가서 소리가 빅빅빅 이렇게밖에는 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