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발전공은 왜 바다로 나갔나

휴식을 보장하는 복지, 그 이상에 대하여.

by 춘춘

꼭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사정을 들어보면 사연 없는 무덤이 없고, 안 하면 될 일을 왜 해서 사달을 만드는가 싶지만 오죽하면 그랬겠나 하는 측은지심도 들죠.


인간적 연민과 규정 사이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무료하고 배고팠던 근로자도, 복지라는 것을 챙길 여유가 없었던 현장의 상황도 그때는 그럴만했다고 생각되니 딱 잘라 누구편을 들기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박기사님 이야기 9편

1981년 사우디아라비아


깜깜한 밤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쥬베일 바닷가 수십미터 밖까지 불빛이 환하게 밝혀졌다. 하늘위로 떠있는 헬기도 주변을 탐색하며 사방을 바삐 오갔다. 사이렌과 차량 소리까지 해안가 작업 현장에 긴박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시끄러운 바깥 소리에 잠이 들 수 없었던 근로자들은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발전공은 왜 바다로 가야만 했나?’


아침 일찍 현장에 도착한 근로자들은 게시판에 붙어있는 문구를 보며 쓴웃음을 짓거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못 찾았대요?”

박기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설비부서 직원들에게 물었다.

“밤새 헤매도 못찾았대요. 게시판에 뉴스 붙은거 보니까 가망이 없나보네. 그사람 자꾸 나가더라니만. 하긴 일도 고달프고 고기 생각도 나고 그러니까 그랬겠지만 에이…… 참……”


사라진 발전공은 원래 낚시 광이었다. 한국에서도 틈만나면 낚시를 하던 사람인데 마침 해안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으니, 바로 옆에 붙은 바닷가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기도 심심치 않게 잡히는 중동의 바다는 그에게 야무진 놀잇감이었다.

마당발 최씨는 사라진 발전공과도 친분이 있었다. 그와 자주 노닥거리던 그는 한 두번 밤 낚시에 따라간 적도 있다고 했다.


“그게, 그사람이 기술이 좋아요. 드럼통을 어디서 구해다가 뗏목을 만들었어요. 저기 부두 바깥쪽 기둥에다가 한 20미터 넘는 긴 밧줄을 고정시키고 그 줄 끝을 뗏목에 묶은 거예요. 그리고 뗏목을 바다에 띄워서 빠지 낚시를 하는 겁니다. 어제는 바람이 좀 불었는데 달빛이 좋다면서 바다보러 간다고 하더라고요. 언제 또 같이 가자고 했는데……”

발전공과의 낚시 추억을 털어 놓던 최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날 저녁, 우울한 마음으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간 근로자들에게 관리 사무실 직원은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쥬베일 항만 현장 방파제에서 발전공을 구조했다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다. 실종된지 하루가 꼬박 지난 시간이었다. 기적같은 소식에 모두들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어젯밤 쉴 새 없이 울려퍼진 사이렌 소리로 잠을 설쳤던 근로자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 현장에 출근한 직원들은 구조된 발전공을 만날수 있었다. 모두들 걱정했다며 한마디씩 인사를 건넸고 어찌 된 일이냐고 영문을 묻기도 했다. 염치없는 웃음을 웃으며 머리를 긁던 발전공은 못이기는 척 지난 밤의 모험담을 들려주었다.


그날 밤, 어스름한 달빛을 조명삼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발전공은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눈을 감았다가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그사이 바람의 강도가 점점 세 졌고, 드럼통 뗏목과 부두 기둥을 연결한 줄이 끊어져 버렸다. 뗏목은 해안가에서 넓은 바다쪽으로 흘러갔고 그가 잠에서 깼을때는 이미 해안에서 너무 멀리 쓸려나간 상태였다. 그나마 뗏목에 묶여있던 끊어진 밧줄의 일부가 붙어있어 그 줄을 허리에 묶고 뗏목과 한 몸이 되어 바람과 파도를 견뎠다고 했다. 다행히 방파제에 뗏목이 걸리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더이상 흘러가지는 않았다. 몇 시간인지도 모르는 시간을 누군가 구해주기를 기다리며 파도와 사투를 벌였고, 수색작업을 하던 구조대에게 기적처럼 발견되어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이다.

모두들 영웅담 같은 신기한 이야기에 무릎을 치며 죽음 문앞에서 구조된 동료를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살아 돌아온 기쁨도 잠시, 하루가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는 그에게 강제 귀국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이유는 계약조건 위반이었다. 과실로 인한 사고를 벌였으니 돌아가야했고, 구조로 인한 피해까지 발생하여 한국으로 돌아갈 항공비와 위약금까지 물으며 귀국을 해야 한다고 했다.

비행기 값에 위약금까지 합하면 그가 사우디에 와서 번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돈을 벌기는 커녕 빚까지 지고 가야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사람 결국 가는건가?”

“예, 울며불며 통 사정을 했는데도 워낙 큰 사건이고 사우디 정부에도 사고 신고가 들어간 건이라 회사에서도 사정을 봐줄래야 봐 줄수가 없다고 하네요. 에고……”

그의 귀국소식을 전해주며 한숨을 쉬던 최씨의 얼굴은 그의 실종 소식을 알릴때만큼이나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박기사님 인터뷰

2022년 서울, 박 차장 집에서


박차장 : 그런데 낚시한 게 불법은 아니잖아?

박기사 : 뭐, 물의를 일으켰으니까. 사우디 정부에도 비상이 걸리고 현장이 발칵 뒤집혔으니까. 봐줄 수가 없었지.

박차장 : 생각해보면 그 상황에서 혼자 배 만들어서 낚시한 게 정말 창의적이긴 한데.

박기사 : 일은 고달프고, 술도 맘대로 못먹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생각해 내는 거지. 배고 고팠지. 이라크에서는 야생동물들 잡아먹는 일도 많았어. 거기서 영국인 감독관이 한국인들 몬도가네라고 했다고. 도마뱀은 위장병에 좋다고 삶아먹고, 고슴도치도 신경통에 좋다고 고아먹고, 또 들개떼들이 많아 그건 또 목수들이 공방에서 잡아먹고 그랬지. 고런 거 또 잘하는 사람들이 있어.

박차장 : 워.... 고슴도치 고기 먹어봤어?

박기사 : 그냥, 맛은 조금씩 봤지.

박차장 : 하긴 아빠 특이한 음식 좀 못 먹긴 하지.

박기사 : 심심하기도 하고 고기가 아쉽고. 맨날 향료 냄새나는 국물이랑 뭐 그렇게 먹으니까.

박차장 : 젊은 근로자들인데 술도 맘대로 못 먹고 힘들었겠지. 그래도 사건이 크니까 회사에서 커버 못해줬을거 같기도 하고, 목숨은 구했어도 돈도 못 벌고 귀국한 그 사람도 불쌍해.



40년 전에 비한다면야 근로자 복지는 말할 수 없이 발전했고, 복지의 효율성을 이해하는 회사도 많습니다.

그러나 근로 환경과 복지에 대한 개념은 경제의 발전 정도에 비해 저만치 뒤처져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경제가 기울고, 회사 경영이 어려워질수록 가장 먼저 삭감되는 예산은 복리후생비, 판공비, 인건비입니다.

더구나 근로자의 피로 해소, 친목 도모, 팀워크 강화와 같이 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부분은 경영진들의 투자리스트 제일 끝을 차지할 수밖에 없죠.

우리 회사는 팀워크와 활발한 사내 분위기 유지를 중요시하는 곳이었습니다. 다양한 교육이 많았고, 시무식, 종무식, 창립 기념식 등 행사가 있으면 전 직원이 잔치 분위기가 되는 곳이었어요.

회사 경영진이 바뀌면서 이런 분위기는 차디차게 식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사내에서 진행되는 인문학 교육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다양한 외부 인사들의 강연을 들으며 역량 개발을 꾀했던 활동이었는데 온라인 교육을 통해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는 명목으로 사라졌습니다.

다음 타깃은 동호회였습니다.
다른 팀과의 교류를 통해 업무를 효율화하고, 직원들의 사기를 증진시키는 목적으로 장려되었던 활동이었는데요. 회사에서는 표면적으로는 동호회 활동을 지속하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활동 내역 증빙을 보다 철저히 감시하면서 동호회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동호회 숫자를 줄여갔습니다.

때마침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우리 회사에서 동호회라는 제도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직원 휴게실 폐지, 수유 중인 직원들을 위한 수유실 축소, 탕비 물품을 구입 예산 삭감 등이 보일 듯 말 듯 단계별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월급이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줄이기는 했지만 아직 인원 감축을 하지 않았고, 일하는 것에서도 큰 변화는 없었어요.

그러나 한 달에 몇만 원 되지 않지만 소소하게 받던 지원과 친목 활동이 사라지면서 회사가 주는 복지의 색깔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고 월급 받으면 되는 것이지 그런 것들이 뭐가 필요하냐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나날이 개인주의적으로 변하는 사회에서 동호회라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말도 하고요. 높으신 분들은 휴게실을 내어주면 근무시간을 축낸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강당 한쪽에 세워져 있던 농구골대가 사라지고, 몸이 좋지 않은 직원들이 잠시 쉴 수 있었던 남녀가 분리된 휴게실이 회의실로 탈바꿈하면서 직원들은 묘하게 회사라는 테두리가 얇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즘 세상에 '애사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할 만큼 회사와의 유대감이 흐려지긴 했는데요.
딱 배분된 일을 끝내고 나서 공동의 업무를 진행하는 것, 자신의 재량으로 업무의 범위를 늘리는 것은 월급이 아니라 회사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업무 분장을 합리적으로 해도 회사와 동료에 대한 애정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경계의 일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거든요.

"김대리, 재무팀 오과장 알아"
"어, 우리 야구 동호회야."

이렇게 시작되던 침목 관계가 사라져 버린 것이,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기회가 없어지는 아쉬움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동호회가 없어진지 몇 년이 지나서야 어렴풋이 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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