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엄마, 바람나면 안 돼!

뜻밖의 이슈

by 춘춘

어렸을 적에는 저녁이면 모두 TV 앞에 모여서 드라마를 봤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볼만한 내용이 아니었음에도 줄곧 TV는 틀어져 있어서, 나와 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다양한 수위의 불륜 드라마들을 빠짐없이 볼 수 있었어요.


어느 날, 엄마가 바람이 나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드라마를 보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우리 엄마도 드라마 속의 아줌마처럼 바람이 날까 봐 매우 불안해졌어요.


“엄마, 바람나면 안 돼”

“야! 바람이 날라면 니 아빠 사우디 갔을 때 진작 났다.”

퉁명스러운 엄마의 중얼거림에 묘하게 마음이 놓였어요.


부부가 오래 떨어져 있는 동안 마음이 변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있는 일입니다. 그 당시 유난히 이 일이 사회적 이슈가 됐던 이유는 적지 않은 액수를 송금하는 중동 근로자의 수가 많았고, 이를 노리는 제비족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박기사님 이야기 7편

1981년, 사우디 아라비아 젯다

한창 시덥지 않은 농담이 오고 갈 시간이었지만 숙소 안은 다른날과 달리 조용했다. 소일거리로 장기를 두는 사람들은 돌조차 숨 죽여 놓았다. 모두들 벽을 보고누워있는 최씨의 등판을 흘끗대고 있었지만 말을 걸어볼 생각은 하지않고 서로 간간히 눈짓만 주고 받을 뿐이었다.


수다스럽던 최씨가 입을 닫고 벽을 보고 누워있기 시작한 것은 어제 한국으로 한통의 전화를 걸고나서 부터였다. 아내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어렵게 주인집에 전화를 걸어 본 최씨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저기 지금 새댁이 없는데.”

“예? 지금 몇신데 집에 없어요?”
“글쎄, 있는줄 알았는데 방에 없네.어제도 안들어온거 같은데, 내가 어제 집을 비웠거든”


처가집도 일가 친척들도 전화 연결이 어려워 바로 연락할 길이 없었다. 골똘히 생각에 빠질수록 어스름했던 최씨의 걱정은 더욱 짙어졌다.


중동 건설현장에 파견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신혼의 젊은이들이었다.

평균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 속에서는 땀도 배어나오자 마자 말라버린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가족들 얼굴은 어른거렸지만 그럴수록 목돈을 모으러 나오길 잘했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나마 받은 돈을 모조리 한국으로 송금하는 뿌듯함으로 한달간의 수고를 달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은 바로 한국에 있는 부인들의 춤바람 소식이었다.

현장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아내들의 외도와 제비족에 대한 얘기는 간신히 버티던 근로자들의 무릎이 휘청하게 만드는 빌어먹을 뉴스였다. 내 아내의 얘기가 아니어도 속이 상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이 더해졌다. 더구나 가깝게 지내던 동료에게 그런일이 일어나면 같이 방을 쓰는 식구들 모두 한동안 눈치를 보고 같이 기운이 빠지게 마련이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고 애간장이 타 들어가는 남편은 바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계약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항공료를 물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6개월 이내에 돌아가면 왕복 항공료, 6개월 이후에는 편도 항공료를 물어야 한다. 그 돈이면 이곳까지 와서 버틴 시간이 말짱 헛것이 되고 만다. 속이 문드러져도 악착같이 참고 계약기간을 버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뿐인데 최씨가 자리를 펴고 드러누운 것은 간간히 들었던 이런 소문들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아내는 바람 난 것이 틀림 없었다. 최씨는 손 하나 까딱 할 기운도 나지 않았다.


다음날 점심때가 되기도 전에 최씨 부인에 대한 소문은 암암리에 현장에 퍼졌다. 관리본부에서도 그 소식을 들었고, 아프다는 핑계로 출근하지 않은 최씨의 일탈을 그대로 눈감아주었다.

남편과 오래 떨어져 있는데다가 목돈까지 손에 들고 있는 중동 근로자 가족들은 제비족들의 표적이었다. 그들의 사기 행각은 당시 사회적 이슈였기 때문에 심심치 않게 신문에도 소식이 올라오곤했다. 가정 문제로 근로자들이 마음을 못잡는 것은 현장에서도 큰 문제였기 때문에 한국의 본사에서도 제비족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을 세우고, 바람난 부인들을 따로 만나 설득도 하는 등 웃지못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씨가 벌떡 일어나 일터로 나온 것은 사흘이 지난 후였다. 다행히 자리를 털고 일하러 나왔구나 싶어 최씨의 얼굴을 바라보니 벙글거리기까지 하는게 아닌가.

예의 그 수다스러운 말투를 다시찾은 최씨가 사연을 들려줬다.

“장모님이 신우염으로 입원을 했다네. 어머니하고 통화를 했는데 장모님이 입원하셔서 문병을 갔다왔대. 집사람일랑 장모님이 깻잎김치를 담그고 있었는데 갑자기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헐레벌떡 가느라 와이프가 안집에 얘기도 못했다느먼.”

“장모가 입원했다는데 뭐가 좋아서 벙글거려.”


통 기운을 못 차리는 최씨 때문에 주변 동료들까지 사기가 떨어지자 현장 사무실에서 최씨의 가족들에게 전화 연결을 해 준 모양이었다.

기운을 찾은 최씨의 얘기를 들으며 동료들은 같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나아지셨대. 손톱끝까지 시커멓게 변했었다니까 큰일날뻔 했나보더라고. 나아지셨다니 다행이지 허허.”

장모가 아프다는 말에 안도의 웃음을 웃는 최씨를 동료들은 백번 이해했다. 마치 자기들 신변에 아무일도 생기지 않은것을 확인한 듯 근로자들도 평온을 되찼았다.



박기사님 인터뷰

2022년 서울, 박 차장 집에서

박기사 : 너 강남 1970이라는 영화 봤냐?

박차장 : 아니,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재밌어요?

박기사 : 그거 한번 봐봐. 거기 보면 남편들 중동 갔을 때 와이프들이 바람났던 그 얘기가 나오더라.

박차장 : 아, 하하 그래? 그때 춤바람 얘기는 알지. 옛날 기사에서 봤는데 그게 사회적으로 문제도 되고, 현지에 근로자들이 마음을 못 잡으니까 본사에서 관리하는 전담 조직도 있었다면서. 심지어 회사에서 아내들을 찾아가서 설득도 하고 그랬대.

박기사 : 거기 간 사람들이 대부분 신혼 젊은이들이야. 평균 40도가 오르내리는 날씨에 일은 힘들고, 고국에 가족들 얼굴이 아른아른하면서 애간장이 타들어 가는 심정으로 버티는데, 마누라 춤바람 난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거야. 계약기간 1년을 못 채우고 귀국하면 항공료를 물고 돌아가야 하거든. 6개월 이내에 돌아가면 왕복 항공료. 6개월 이후에는 편도를 물고 가야 하니까 한국에서 마누라가 춤바람이 났대도 악착같이 참고 계약기간을 버텨야 되는 거야. 아무튼 외롭고 힘도 들고, 향수병 걸리면서 귀국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다가 와이프 춤바람 난 얘기 들으면 제정신이 아니었지. 그럴 땐 회사에서도 일 할 때 배려를 좀 해주고 그랬어.

박차장 : 완전 군대네 군대. 근데 거기도 사람 사는 덴데 남편들은 바람 안 났어?

박기사 : 거긴 워낙 사회적으로 통제가 심하기도 하고, 여성들은 더 통제하고 그러니까 그럴 일은 있기 힘들지.

박차장 : 그럼, 윤락가 같은 건 없었어?

박기사 : 있긴 있었어. 우리가 시멘트 실으러 움카슬에서 팔루자 가는 길에 보면 하이따룽이라는 집창촌이 있긴 했거든. 거기에 가면 한 일고여덟 살 먹은 애들이 춤을 춰. 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북을 쳐주고. 그 애들 엄마들은 매춘부야.

박차장 : 남편이 없는 사람들이었나?

박기사 : 남편도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남편과 자는 곳에서는 그 일을 하지 않는대. 거기가 술집도 있고 그래서 휴일에는 근로자들도 가끔 가서 술이나 먹고 그랬지. 처음에는 뭐 천막 같은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이었는데 이게 막 금방금방 변하는 거야. 장사가 잘 되나 봐. 얼마나 장사가 잘되면 우리가 짐 싣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보면 천막촌이 벽돌집이 되고 막 그러면서 지역이 넓어지고 발전하는 걸 봤어. 그 근방에서 그 지역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르더라고. 그 일대 외국인 근로자며, 사판에서 넘어온 쿠웨이트인들이 있고 하니까 아마도 고 때쯤 발전한 거 같애.

박차장 : 이슬람 국가인데도 그런 게 있었나 보네?

박기사 : 그게 그 당시에 이라크에는 있더라고. 다른 중동 국가에서는 못 봤어.


아빠의 이야기에서 ‘최씨’는 허구의 인물입니다. 하지말 실제 있었던 사례들을 토대로 만들어 낸 것이니,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는 아닙니다.

부부나 연인의 마음이 변하게 되어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때 그럴 확률이 더 높아지기는 하고요. .언제 어느 시기에나 있을수 있는 이 일들이 특히나 사회적 이슈까지 되었던 이유는 돈과 직결되는 사기 행각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고, 중동 근로자들의 수도 많았기 때문이겠지요.

지금 검색해 봐도 당시의 뉴스들이 나올 만큼 떠들썩한 일이었나 봅니다. 강남 1970이라는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선정적이지만 사실에 가깝게 묘사하기도 했어요. 국가적으로 외화벌이에 한 몫했던 사업분야였던 만큼 개인들의 경제 상황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텐데요. 그런 상황을 교묘하게 노린 집단의 이야기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흥미로우면서도 슬프게 느껴집니다.

문득 남자들은 어땠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통상적으로 여성보다 외도의 비율이 높은 남자들의 일탈은 없었는지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슬람 국가라서 외도의 사례가 발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매춘업이 있기는 했어도 한국인이 익숙하게 이용하지는 못했던 것 같고요.
어찌 보면 이런 현지 상황 때문에 한국에서의 제비족 이야기가 더 자극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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