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중동 파견, 엄마 화이팅!
1981년, 서울
2022년 서울, 박 차장 집에서 차 한잔 하며
[우리보다 강했던 30대 여성, 엄마세대]
나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회사에 다녀야 했으니 엄마가 애를 봐주셨어요. 평일에는 거의 엄마한테 맡기고 주말에만 데리고 있는데도 목욕시키고 먹이는 것이 힘에 부쳤습니다.
"아이고, 애 하나 데리고 뭘 그렇게 징징대냐."
직장에 다니는 것은 그것대로 안쓰러워하는 엄마였지만 내가 하나뿐인 애를 어쩌지 못해 쩔쩔매는 것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툴툴대면서도 엄마네 젊었을 때는 지금보다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어린 나와 동생을 데리고 공중목욕탕을 다녔었네요. 혼자서 두 애들 떼를 다 밀어주고, 자기도 목욕을 했습니다.
우리 빌라 이층에 사는 아줌마는 딸이 셋이었습니다. 그 아줌마는 세 딸을 데리고 목욕탕을 다녔죠. 그 집 막내는 더 어려서 아장아장 걸어 다녔으니 열 살도 안된 애들 셋을 혼자서 목욕시켰을 겁니다.
엄마의 삼십 대 초반은 고단했습니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은 홀어머니와 갓 낳은 애를 맡겨두고 이라크로 떠나버렸죠. 나에게는 다정한 할머니였지만 결코 쉽지 않았던 시어머니를 모시고, 갓난아기 독박 육아를 일 년간 한거에요.
이라크에서 돌아온 남편은 둘째 아기를 임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습니다.
택시기사보다 벌이가 나을걸 알고 있으니 말릴 수가 있나요, 원망을 할 수가 있나요.
철마다 고추장, 된장, 간장, 김치 다 담가먹고, 아기 기저귀 손빨래하고, 삼시세끼 장 봐다가 식구들 밥 해 먹였던 그 때의 엄마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