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짝 일해서 끝내고 나면 또다시 바짝 일할 거리를 주는 것이 회사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PC 오프 제도]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지키기 위해 회사에서 PC 오프 제도를 실행했다.
'옆 건물은 불이 밤늦게까지 켜져 있던데 우리는 금방 깜깜해져.'라는 회장님 말씀이 퍼져나간 후로 워라밸 캠페인은 빈말로 통하고 있었다.
주 40시간 근무를 지키라는 새로운 빈말이 생기는 걸까 싶었다.
그저 하는 소리쯤으로 들었던 근무시간제한이 PC오프라는 공식적인 제도로 자리 잡기 시작하자 사원들은 이제 정말 근로시간제한을 시행하는 것인가 보다 믿기 시작했다.
PC 오프 제도는 정말 철저히 지켜졌다. 근무 시작 15분 전부터 PC를 사용할 수 있었고, 퇴근시간 15분 후에는 마우스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새로 제도는 순식간에 자리 잡혔고, 육아와 자기 계발이 수월해졌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본부장과의 식사자리에서 주 52시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주 52시간이 아니야. 주 40시간이 원칙이야. 피치 못한 경우에만 근로시간을 52시간까지 연장하는 거지. 근무시간에 집중하면 되는 거야."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실제로 근무시간 내에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추가 근무 신청을 올린다. 조직장이 승인을 해주면 주 52시간까지 근무를 연장할 수 있다. 야근이 필요한 사람들은 종종 초과근무를 신청해서 업무를 마무리하곤 했다.
어느 날, 팀장이 조용히 직원들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일찍 출근하면 초과근무 좀 올려. 남을 일 있으면 초과근무 올리고 일하고. 본부장이 초과근무 내역 취합한대."
팀별로 시간 외 근무를 얼마나 하는지 알아야 인력이 더 필요한 부서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조사의 취지라고 했다.
그다음부터 최소 일주일에 서너 시간 이상은 초과근무를 하도록 하자는 비 공식적인 캠페인이 팀 내에 돌기 시작했다.
주 52시간을 꼭 채우라고 압박하는 회사가 있다는 뉴스 기사가 났다. 공공연하게 52시간을 채우길 강요하는 회사보다는 그나마 눈치만 안 보면 칼퇴근할 수 있는 우리 회사가 더 나은 게 아니냐는 직원들의 잡담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52시간을 근무해도 기존에 야근하던 시절보다 근무시간이 적은 편이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개발 부서가 새벽 3시에 퇴근하고 다음날 9시에 출근하는 것을 영웅담처럼 늘어놓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바짝 일해서 끝내고 마음껏 쉬면 되지 않겠냐'던 정치인의 의견은 불가능한 얘기다. 바짝 일해서 끝내고 나면 또다시 바짝 일할 거리를 주는 것이 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