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Dear 워킹맘

맞벌이 육아에 필요한 건 예측가능한 일정이다.

바짝 일해서 끝내고 나면 또다시 바짝 일할 거리를 주는 것이 회사다.

by 춘춘

'주 69시간 가능' 근로시간제 개편안에 대해 여기저기서 떠들썩하다. 단발적이라도 주 69시간 업무는 근로자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의견이 있고, 평일이 모두 근무로 색칠되고 토요일 오전에는 병원일정이 잡혀있는 '기절시간표'도 등장했다.

웃으면서 봤지만 이게 실현되면 정말 이런 일주일이 있겠구나 생각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로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아이 맡기기 더 힘들어지겠구나,였다.


일을 하면서 육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적인 탁아, 예측가능한 일정이다.

어린이집이든, 육아도우미든, 도움을 주시는 가족이든, 그들에게 아이 보는 것은 업무이다. 정해진 시간에 아이를 찾아와야 그들도 퇴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야근이 잦은 직업을 가진 여성들의 경력은 출산 이후 쉽게 단절된다.


일 년 내내 동일한 시간에 출퇴근을 해야 사람을 고용해서 육아를 지속할 수 있다.


만일 공교롭게도 부부가 동시에 69시간 근무 주간이 겹쳤다고 가정해 보자. 그 주에 아이는 누가 찾아오고 누가 돌보는가.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제도를 정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늦게까지 돌보는 시설을 만들겠다거나 탁아 시설에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산술적인 방안을 내놓는다.

그럼 아이를 어린이집에 8시에 맡겨놓고 밤 12시에 찾아와 새벽 1시에 재워야한다.


아이는 동일한 시간에 먹고 자야 하고 일정시간 부모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루종일 부모를 만나지 못한 아이에게는 저녁에 짧지만 굵은 부모와의 농밀한 시간이 필요하다.

출산 정책, 육아 정책은 수치뿐 아니라 정서와 공감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는 맞벌이 육아휴직을 1년에서 1년 6개월로 늘리겠다는 방안도 추진한다고 한다.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기간만 무작정 늘린다고 출산률이 올라가고 육아가 쉬워지지 않는다. 육아 휴직 중 기업에서는 단기 인력을 고용할 수 없으니 그 공백은 남아있는 사람들이 채워야 한다. 육아 휴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동료의 장기간 공백을 진심으로 환영할 수만은 없다.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도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에 가시방석이다.

육아 휴직 기간을 늘리고 싶으면 일터에서의 공백을 채울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맞벌이를 오래 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안정적인 육아 대책이 필요하다. 맞벌이 육아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긴 휴식이 아니라 아이를 맡길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예측가능한 일정이다.






아래 박스의 글은 작년에 중동 건설현장 노동자였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브런치북으로 엮어 내면서 썼던 글 중 일부이다. 당시 52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례를 들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바짝 일해서 끝내고 마음껏 쉬라'는 정치인의 제안을 언급했었다. 지금 저 말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PC 오프 제도]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지키기 위해 회사에서 PC 오프 제도를 실행했다.
'옆 건물은 불이 밤늦게까지 켜져 있던데 우리는 금방 깜깜해져.'라는 회장님 말씀이 퍼져나간 후로 워라밸 캠페인은 빈말로 통하고 있었다.
주 40시간 근무를 지키라는 새로운 빈말이 생기는 걸까 싶었다.

그저 하는 소리쯤으로 들었던 근무시간제한이 PC오프라는 공식적인 제도로 자리 잡기 시작하자 사원들은 이제 정말 근로시간제한을 시행하는 것인가 보다 믿기 시작했다.

PC 오프 제도는 정말 철저히 지켜졌다. 근무 시작 15분 전부터 PC를 사용할 수 있었고, 퇴근시간 15분 후에는 마우스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새로 제도는 순식간에 자리 잡혔고, 육아와 자기 계발이 수월해졌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본부장과의 식사자리에서 주 52시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주 52시간이 아니야. 주 40시간이 원칙이야. 피치 못한 경우에만 근로시간을 52시간까지 연장하는 거지. 근무시간에 집중하면 되는 거야."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실제로 근무시간 내에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추가 근무 신청을 올린다. 조직장이 승인을 해주면 주 52시간까지 근무를 연장할 수 있다. 야근이 필요한 사람들은 종종 초과근무를 신청해서 업무를 마무리하곤 했다.

어느 날, 팀장이 조용히 직원들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일찍 출근하면 초과근무 좀 올려. 남을 일 있으면 초과근무 올리고 일하고. 본부장이 초과근무 내역 취합한대."
팀별로 시간 외 근무를 얼마나 하는지 알아야 인력이 더 필요한 부서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조사의 취지라고 했다.

그다음부터 최소 일주일에 서너 시간 이상은 초과근무를 하도록 하자는 비 공식적인 캠페인이 팀 내에 돌기 시작했다.

주 52시간을 꼭 채우라고 압박하는 회사가 있다는 뉴스 기사가 났다. 공공연하게 52시간을 채우길 강요하는 회사보다는 그나마 눈치만 안 보면 칼퇴근할 수 있는 우리 회사가 더 나은 게 아니냐는 직원들의 잡담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52시간을 근무해도 기존에 야근하던 시절보다 근무시간이 적은 편이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개발 부서가 새벽 3시에 퇴근하고 다음날 9시에 출근하는 것을 영웅담처럼 늘어놓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바짝 일해서 끝내고 마음껏 쉬면 되지 않겠냐'던 정치인의 의견은 불가능한 얘기다. 바짝 일해서 끝내고 나면 또다시 바짝 일할 거리를 주는 것이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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