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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진 수천 장, 단톡방 프사는 전부 꽃 아니면 하늘

[내가 사는 40대]

by 춘춘

대낮 온도가 15도를 넘어 서니 밖으로 나가지 않고는 배겨 날 수가 없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마자 훅 끼치는 봄 냄새.

2월 말부터 숨결에 느껴지는 이 봄 냄새는 땅이 녹고 움이 트고 풀이 자라날 준비를 하면서 생성되는 산물들의 냄새가 섞인 것이 분명하다.


봄의 저녁, 봄밤 냄새는 갑작스럽게 20대의 어느 날을 떠올리게 만든다.

초저녁이면 술 먹으러 가려고 사람들을 모집하던 설렘이라든가, 오후 늦게 약속을 잡아놓고 해질 무렵 집 밖을 나서던 느긋한 걸음이라든가.


저녁의 느긋함은 잊은 지 오래고 그나마 느긋할 수 있는 점심시간에 밖으로 뛰쳐나간다.

늘 산책하던 길가에 산수화가 가득 피었다.

골목 안 구석 흙바닥에 개나리도 몇 가지 피어 목을 내밀고 있다.


초당 2걸음을 걸어야 걷는 것으로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놈에 꽃 사진을 찍느라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맨날 찍는 사진을 또 찍어서 핸드폰 갤러리에 꽃사진이 그득하다.



단톡방에 친구들과 대화가 넘치기 시작한 것도 마흔이 넘어서면서부터다. 다들 살기 바쁠 때는 새해나 돼야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요즘은 점심 뭐 먹었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고백을 한다.


친구들의 얼굴 대신 대문을 장식하고 있는 프사는 대부분 꽃 아니면 하늘 사진이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던 소녀들이 이제 살면서 하늘을 자주 봐야 숨이 쉬어지는 중년이 되어가나 보다.


"꽃피기 시작하니까 퇴사 땡겨."

맥락 없이 툭 던진 말에 잘도 대답들을 해준다.

"꽃이랑 상관없다."

"ㅋㅋㅋㅋㅋㅋㅋ 예리하다."


기대치 않았던 친구의 촌철살인에 실없이 웃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이만하면 행복한 사십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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