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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계속 쓰게 해 주는 공간 브런치

뉴스 앱 '헤드라잇'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by 춘춘

프로젝트에 당선된 것도 아니고, 구독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봐주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브런치가 심드렁해지는 시기가 있다.


나 브런치 왜 하지? 여기에 왜 시간을 들여 글을 쓰고 있지?

잠깐 멈추고 각성해 보면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었던 그날이 떠오른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회사에서 메일을 받아보고 뛸 듯이 기뻤지만 티를 낼 수 없어 화장실로 달려갔다. 빈칸으로 들어가 합격 문구를 수십 번 읽으며 두 손을 맞잡고 기쁨을 만끽했던 그때를 잊고 있었다.


처음에는 브런치를 통해서 뭔가를 해보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자격 없이 쓸 수 없는 공간이라는 곳에 들어갈 수 있어 좋았을 뿐이었다.


자꾸 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고, 출판이 된 작가들을 보면서 욕심은 불어난다. 자리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황홀했던 이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시시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한다.

단상을 끄적이는 인스타그램도, 그날의 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는 블로그도 손이 가는 대로 이런저런 글을 올려놓는데 브런치는 그렇게 다루기엔 뭔가 어렵다.


주제가 뚜렷하든지, 메시지가 있든지, 아무튼 머리와 꼬리를 가진 글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오히려 소홀히 대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갖고 싶던 것을 손에 넣고 나면 빛이 사라지듯이 소중함을 모르고 살다가 가끔 '브런치 작가가 되는 법' 같은 유튜브 영상과 마주치면 흠칫 놀란다.

아, 내가 그렇게 바라던 건데 기뻤던 순간을 잊고 있었구나.


그래도 새하얗고 정돈된 글쓰기 창을 마주하는 것은 아직 설렌다.

누군가 내 글에 라이킷을 눌렀을 때 스마트폰 꼭대기에 표시되는 필기체 b의 세련된 자태가 반갑다.


아주 정막하기만 했던 시간들은 아니었다.

조금씩 쓰다 보면 가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도움이 됐다는 댓글에 기쁘기도 했고, 회사 홈페이지에 글을 실어도 좋겠냐는 문의를 받기도 했다. 브런치에 같은 테마로 글을 쓰는 것을 자연스럽게 훈련하면서 업무와 관련된 포털에 유료 연재를 도전할 용기도 냈다.


얼마 전에는 '뉴스앱 헤드라잇'에서 연재 제의를 받았다.

오랜 시간 워킹맘으로 일하면서 경험한 에피소드와 생각들, 회사에서 동료들과 나누었던 공감의 내용을 'Dear 워킹맘'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다.

이 역시 누군가 읽기는 하는 걸까 조바심이 나곤 한다.


그래도 계속 쓴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직장생활이 끝나고 나면 남은 노후가 생각보다 길다고 한다. 그때 뭘 할지 미리 생각해야 한다는데 글을 쓰겠다는 계획이 세워져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희열도 주고 실망도 주었던 브런치지만 40대의 삶에 꽤 큰 변화를 준 존재임을 인정한다. 글을 공개할 계정을 받았을 때의 기쁨, 첫 구독자가 생겼을 때의 감사, 가끔씩 다음 포털에 내 글이 올라올 때의 신기함을 잊어버리지 않기로 했다.


꾸준히 하다 보면 범위는 확장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몇 년 전의 내 글과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면 발전이 있다.


주말 아침에 스탠드 불을 켜고 내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쓸 수 있고, 읽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고, 쓰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울렁이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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