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어쩌면 측은한 마음은 무례한 동정일지도

아빠도 직장인이었는걸 뭐. 서글퍼하는 건 실례야.

by 춘춘


회사에서 종종 퀵서비스를 부릅니다.

서류나 가벼운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오토바이 퀵을 부를 때도 있고, 제품을 이동해야 하는 경우는 트럭을 부르기도 하고요.


가끔 퀵서비스 아저씨들을 함부로 대하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지금 몇 시예요? 언제 불렀는데 이제와요? 퀵이 무슨 뜻이에요? 빨라서 퀵 아니에요? 이게 무슨 퀵이에요?"


신입 시절에는 퀵서비스나 장비 다루는 아저씨들을 함부로 대하는 동료들을 볼 때 늘 아빠가 생각나서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어딘가에서 관리자들이 우리 아빠를 저렇게 함부로 다룰 것 같고, 그런 자리에 있는 아빠가 상상되어 괴로웠어요.


회사생활을 좀 하다 보니 나도 종종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치사한 꼴을 봐 넘겨야 할 때도 있었고, 딱 때려치우고 나가고 싶은 더러운 상황에 처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냥 참고 넘기게 되죠.

밥벌이인걸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퇴근 후 동료들과 술 한잔 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잊어버리는 게 상책입니다.

그렇게 지나갈 일들이지 그것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거나 내 신세를 처량해하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했다면 그게 더 기운 빠지는 일일 것 같아요.


힘겹게 청소하시는 여사님들, 물건을 정리해 주시는 아저씨, 부서별로 명함을 돌리면서 굽신거리는 연세 드신 하청업체 분들을 볼 때 한편으로 측은해했던 내 마음이 어쩌면 무례한 동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도 들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이제 많이 무뎌져서 공연한 안쓰러움 같은 것을 남발하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을 보면 저 새끼 나쁜 새끼하고 낮게 읊조리고는 생각 저편으로 치워버립니다.

아빠도 저런 놈 만난 날은 돌아서면서 욕하고 털어버렸겠죠 뭐. 우리는 다른 시간을 살았던 같은 근로자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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