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49년생 박기사님, 아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by 춘춘

한 번도 정식으로 사용되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장롱 깊은 곳에는 언제나 검은색 가방이 있었습니다. 여행 가방이라기엔 작고 서류 가방이라기엔 두툼한 아빠의 가방. 1979년 중동에서 온 가방입니다

엄마가 한번씩 장롱을 뒤집을 때만 밖으로 나오던 가방에는 다이얼과 잠금 장치가 달려있어 신기했습니다. 나와 동생은 가방이 보일 때마다 재미삼아 한 번씩 열어봤습니다. 투박해 보이지만 꽤 정교하게 만들어져 한번에 쉽게 열리지 않아 더 재미있었습니다.

비밀번호 세 개를 조합해서 다이얼을 맞춥니다. 번호가 맞아야 다이얼판 옆에 있는 손톱만한 여닫이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이어서 가방 양 옆의 기다란 버튼을 양손으로 잡고 힘을 주어 시계방향으로 90도 돌리면 드디어 가방문이 딸깍, 열립니다.

“이건 고장도 안 나네.”

"아직도 짱짱해. 다이얼도 잘 돌아가고 아귀도 딱 맞아"


얼마 전, 부모님 장롱에서 물건을 찾다가 오랜 만에 가방을 열어 봤습니다. 당연히 삐걱거릴 거라고 생각하는 나를 핀잔주듯, 4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다이얼은 도로록 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돌아갔습니다.


나만큼 우리 집에서 오래 지내온 가방은, 일흔 다섯 살 우리 아빠의 서른 한 살 청년 시절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때의 아빠보다 훨씬 나이가 든 나는, 어느 날 아빠의 이야기가 새로웠습니다.


아빠가 살아온 날들에 내가 어느 순간부터 겹쳐져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때마다의 내가 떠오릅니다. 아기인 나, 사춘기의 나, 대학생인 나, 취업이 안돼 고민하던 나,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되던 나, 모든 순간의 내가 귀합니다. 부모라는 존재가 성실히 지켜낸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싶어 집니다.


내 역사의 시작, 7,80년대 중동 건설 현장을 세차례 다녀왔던 전직 트레일러 운전기사, 평생 운전 노동자로 길 위를 달렸던 49년생 박기사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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