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집요강 일 순위: 신체 건강한 젊은이

by 춘춘



삶은 우리에게 자주 선택의 기회를 준다.
대부분의 선택은
싫지만 해야할 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다.



박기사님 이야기 1편

1979년, 한국 종로 5가 해외개발공사 앞


1.

건물 앞은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먼저 온 사람들을 비집고 건물 로비로 들어간 박기사는 게시판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모집공고 역시 박기사의 경력으로는 서류 내밀기도 힘들것 같다.

오늘도 별다른 수확없이 돌아갈 생각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차피 하루 일당은 공쳤으니, 여기저기 물어오는 소식을 들어볼 요량으로 박기사는 앞마당 쓰레기통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렸다.


“이건 뭐 경력있는 기술자들 아니고서야 어림도 없네.”

“저 미국 백텔이나 사우디 아람코 같은데는 A급 회사라고. 수주도 제대로 받고 지들 입맛에 맞는 것만 하고 나머지는 하청을 준다고. 그것도 뚫기가 힘들어.”

“급료가 여기 봉급 다섯배야. 그러니 제대로된 숙련공을 뽑으려고 하지. 오늘도 허탕이네.”

“영등포에 가면 좀 수월하다는데. 2급, 3급 하청이라 일이 좀 힘들기는 해도.”


현관 옆 큼지막한 시계바늘은 이제 막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영등포까지는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테니 가서 서류라도 내 볼 수 있겠다 싶어 박기사는 바삐 발길을 돌렸다.


2.

요사이 인부들은 모이기만 하면 해외공사현장 이야기를 꺼낸다. 출근 후 담배 한대씩을 피우며 이란이다, 월남이다 돈벌이가 되는 현장에 대한 소문을 나눠보지만, 막상 좋은 자리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로 수다가 마무리 되곤한다.

작년에 결혼한 박기사는 이제 갓 돌이 지난 딸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홀어머니와 아내, 아이까지 생겼으니 박기사도 언제까지 덤프차 운전으로 하루벌이 생계를 유지할 수 만은 없었다. 목돈을 만질 기회가 필요했다. 가끔 일거리가 줄어 쉬는 날이나, 점심시간에 동선이 맞는 날 모집 공고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 지도 몇 주가 지났지만 아직 서류도 제대로 내 보지 못한 신세다.


오늘 박기사는 게시판 앞에서 건진 소식을 믿어보기로 했다. 일이 힘들다고는 했지만 일단 나가보면 앞이 좀 트일 것 같았다. 다급한 마음을 다잡으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 영등포에 도착했다.


‘신원개발 해외인력부’


해외 개발공사의 번듯한 외관에 비해 허술해 보이는 간판이 오히려 반가웠다. 일이 좀 힘들면 어떤가, 젊은 나이에 한 두해 고생하면 기반을 잡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만해 보이는 간판 때문에 가벼웠던 마음은 서류창구 앞에 들어서자마자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종로 못지않게 이곳도 복도부터 북새통이다.


[이라크 움카슬 부두공사 인력 모집]

모집인력 : 콘크리트 잡부부터 기술직 크레인까지

모집요강 1순위 : 신체건강한 젊은 남성

레미콘 운전 : 월 340달러

콘크리트공 : 월 300달러


'신체건강한 젊은 남성'이라는 문구가 박기사의 눈에 쏙 들어왔다. 이제 이 서른을 갓 넘긴 젊고 건강한 몸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았다.

다짐하듯 주먹을 꽉 쥐고 급히 서류접수를 하던 박기사의 입에서 슬그머니 한숨이 나왔다. 공사현장 이력이 있느냐, 숙련된 기술이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적을만한 경력이 부족했다.


빈 종이를 한참 들여다 보는데 옆에서 누가 쿡 찌르며 말을 걸어왔다.

“일단 잘한다고 써요. 어차피 실습장이 없어서 실습시험은 못본대요. 우선 가고 봐야죠.”

작달만한 키에 눈이 동그란 사람은 자신을 윤oo라고 소개했다. 이름도 말해줬는데 잘 들리지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아서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

처음엔 싱거운 소리라고 웃고 말았는데, 일단 가고 봐야 한다는 윤씨의 말이 틀린소리 같지는 않았다. 서류라도 넣어보자는 심산으로 박기사는 빈 칸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해본 일과 구경만 한 일들을 적당히 버무려서 이력서를 완성했다.


3.

며칠 후, 다행히 이력서가 통과되어 면접을 보러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서류 심사에 합격한 기쁜 마음이 반 이라면 실력이 부족한 것이 탄로나면 어쩌나나 불안한 마음도 반 이었다. 그러나 콩닥거렸던 마음이 무색하게도 면접에 실습시험은 없었다. 기술공들의 실력을 파악할 만한 실습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필기 시험으로 기술을 측정했다. 박기사는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보고 배운 것들이 있어 그럭저럭 답지를 채워나갈 수 있었다.


며칠 후 박기사에게 합격 통보가 왔다. 출국일은 바로 다음 달이었다.

합격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제 됐다는 생각에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지만 박기사의 마음 한편은 점점 무거워졌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였다. 모집공고를 보러 다닐 때는 목돈을 벌어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막상 다음달에 가족을 두고 먼 나라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운함과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딸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은 매일 봐도 재미있었다. 출장을 다녀와서 며칠만 못 봐도 훌쩍 큰것 같은데 일년이 지나면 얼마나 커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애타게 중동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저렇게 빨리 큰다는 건 돈걱정이 날로 늘어날 거라는 얘기다.


출국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가져갈 수 있는 생필품들을 사고, 친지와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나니 훌쩍 떠날 날이 다가왔다. 밤마다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지만 오래 생각한다고 해결될 일들도 아니었다. 문득 서류접수를 할때 자신을 윤아무래라고 소개했던 눈이 동그랬던 사내도 합격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그 나라는 어떤 곳인지, 누구와 지내게 될지 궁금하다는 생각도 아주 잠깐 했다. 그런 호기심은 눈앞에 닥친 걱정들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었다.


1979년, 홀어머니와 아내, 돌 지난 딸을 두고 박기사는 중동행 비행기를 탔다.




박기사님 인터뷰

2022년 현재. 박기사님 자택


박차장 : 아니, 서류심사가 다야? 면접은 안 본 거야?

박기사 : 기능공은 실기를 봐야 하는데 실습할 시설이 없어서 시험을 못 봐. 그냥 서류심사로 대체하는 거야.

박차장 : 그럼 이력서에 써놓은 거 그대로 믿고 그냥 가는 거네?

박기사 : 그렇지. 정주영 씨가 500원짜리 보여주면서 차관 유치했던 그 짝이야. 실습이 아니라 시험지로 기술을 측정하는 거야.

박차장 : 오, 그래도 합격한 거 보면 경쟁력이 있었나 봐? 한국에서 그런 경력이 좀 있었던 거야?

박기사 : 아니지. 그냥 해봤다고 쓴 것도 있지.

박차장 : 뭐지? 그거 불법 취업 아닙니까?

박기사 : 그래도 나는 덤프트럭도 하고 고속도로 공사도 하고 그랬지. 가보니까 영어 강사 하던 사람, 버스기사 하던 사람, 이런 사람들이 기술공으로 알음알음으로 오고 그랬어.

박차장 : 그렇게 보내서 공사가 돼?

박기사 : 일단 가고 보는 거야. 기술도 없고, 숙련공은 부족하고, 회사는 부도나게 생겼으니 공사 진척시키려고 머릿수 채워서 보낼 수밖에. 그러니까 모집요강도 '신체 건강한 젊은 남성' 이게 일순위지. 얼치기 기술이어도 버틸 수 있는 사람들 보내는 거야.

박차장 : 거기 정보는 좀 있었어? 뭐 하는 건지는 알고 간 거야?

박기사 : 이라크 움카슬에서 부두 공사한다. 덥다. 딱 그것만 알았지 뭐.

박차장 : 와, 용감하다. 인터넷도 없고, 움카슬이 어디 붙었는지 지도만 봤을 텐데.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무섭지도 않았나 봐.

박기사 : 먹고살기 힘드니까 일단 가고 보는 거지. 너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 이라크 간 거지.

박 차장 : 절박하면 그럴 수 있겠지. 사실 지금도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들은 많으니까.




2022년을 살고 있는 박차장의 생각들

[밥벌이에 있어서 선택이란]

70년대와는 다른 환경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 주변에도 먹고살기 위해 하는 고된 일들은 여전합니다.

2011년 쓰나미 사고로 인한 방사능 물질 오염으로 뉴스가 떠들썩하던 때에, 후쿠시마 근처로 환경평가를 위해 누군가 출장을 가야 한다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원전사고 직후였고,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았던 터라 누구도 공포심에 선뜻 나설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는 일본 여행도 활성화되고 두려움도 무뎌졌지만 당시에는 제주도 여행조차 취소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곧 몇 사람에게 출장 갈 의사가 있는지 문의가 이어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단호히 거절했고, 어떤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출장길을 나섰습니다.

출장을 가는 직원은 전쟁터에 가듯 비장한 각오로 먹을 물을 잔뜩 싸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오는 길에는 그곳에서 입었던 옷과 신발을 모두 버리고 귀국했습니다.

일본으로 출장을 다녀온 사람은 회사로부터 박수를 받았고, 거절했던 사람들은 은근한 질타를 받았습니다. 양쪽 모두 힘들고 씁쓸한 날들이었습니다.

일터에서의 힘든 점을 보도하는 기사에는, 종종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않냐는 댓글이 달릴 때가 있죠.
선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사실은 내가 뽑을 수 있는 옵션 안에 들 수 없는 선택들도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도, 어떤 직종에서도 밥벌이의 무거움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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