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해리포터를 즐겨본다. 내가 좋아했던 영화를 아이가 같이 좋아하는 것이 무척 즐겁다.
구글 무비로 구매해 놓고 심심하면 한 번씩 전편을 몰아본다.
작년에 두 번째로 전편을 볼 때 내가 물었다.
"너는 호그와트에 가면 어떤 기숙사에 가라고 할 거 같아?"
"어...... 나는 후플푸프."
이게 무슨 소리야? 당연히 그리핀도르 아니야?
"왜? 그리핀도르 싫어?"
"아니, 좋긴 한데 나는 그렇게 용감하지는 않고 모험하는 거 좀 무서워. 그래서 그냥 후플푸프 될 거 같아."
아들은 이 얘기를 하면서 전혀 시무룩해하지 않았다. 담담히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 듯한 말투였다.
반면에 얘기를 듣는 나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리핀도르가 무엇인가.
용맹하고 정의로운 아이들의 기숙사, 우리를 설레게 하는 이 영화 주인공들의 집합지. 마법사 세계의 제1 인싸 해리포터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아니, 그걸 떠나서 보통 아이들이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정의로우면 자신이 동급이라고 생각하며 보지 않나? 후플푸프가 나쁜 건 아니지만 너무 주변 인물 스럽잖아?
한참 생각하다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들을 호그와트에 보낼것도 아닌데 낙담에 가까운 이 허전한 마음은 또 뭐란 말인가.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니 내가 이 아이보다 많이 속물스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후플푸프에 적합한 평범함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주문을 다 외울 만큼 영화를 좋아하고 해리포터 캐릭터를 열심히 모으는 아이가 신기했다.
한동안 안 보다가 어제 '마법사의 돌'을 아이와 다시 보았다.
아는 내용인지라 집중하지 않고 시시껄렁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보고 있었다.
신입생들이 처음 빗자루 타는 것을 배우는 장면을 볼 때였다.
네빌이 빗자루를 제어하지 못해서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팔을 다쳤다. 선생님이 네빌을 병원에 데리고 가면서 아이들에게 경고했다. 선생님 올 때까지 절대로 빗자루를 타지 말라고, 타면 퇴학이라고. 그러나 말포이는 네빌의 리멤브럴을 지붕 위에 숨겨 골탕을 먹이려고 빗자루를 타고 올라간다. 정의로운 해리가 말포이를 제지하기 위해서 빗자루를 타고 따라가는 장면이었다.
여기서 아들이 뜻밖의 말을 했다.
"너무 착해도 문제인 거 같아."
"응? 뭐가?"
"해리포터 말이야. 선생님이 빗자루 타면 퇴학당한댔는데 너무 착해서 저러잖아. 말포이처럼 나쁘면 안 되는데 너무 착해도 안돼."
적당히 해줄 말이 없어서 그냥 웃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가치관에 혼란이 왔다. 해리포터가 정의로운 건 확실하지. 하지만 선생님이 '나 올 때까지 빗자루 타지마라'라고 하는 말을 철저하게 잘 지키는 아이들이 착한 거 아닌가? 그럼 해리가 안 착한 건가?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저럴 때 선생님 말을 듣는 것이 착한 건가, 말포이를 제지하는 것이 착한 건가? 어차피 선생님 오시면 말포이는 혼날테니 쓸데없이 끼어들지 않는게 정답인거 같은데 이게 애한테 할 소리가 맞나?
문득 작년에 본인은 후플푸프에 갈 것 같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얘는 스스로가 영웅은 못 되는 성격인 것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그때와 비슷한 감정이 몰려왔다.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하여, 의외로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의문을 갖게 된다.
해리처럼 정의롭게, 나쁜 놈들을 응징할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서지 말고 이 사회에 적응하면서 모나지 않게 살기를 바라기도 한다.
아이에게 종종 '다 잘할 수는 없다. 지는 것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너의 어제와 오늘의 너를 비교해라. 스스로를 사랑해라.' 이런 소리를 수시로 잘도 했으면서 정작 아이가 뛰어나기를, 주인공이 되기를 바랐던 것은 것은 아닐까.
그런가 하면 명석한 사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저렇지 못한 것이 약오르는 나는, 이 아이보다 질투심이 많고 공명심이 강한 것은 아닐까. 이것은 어른과 아이의 차이가 아니라 나와 이 아이, 개인의 성향 차이가 아닐까.
공부를 막 잘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영화에서 멋진 영웅이 나오면 난 저런 거 안 할래 무서워.라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너무 적극성이 없는 거 아니야? 애가 좀 성취감이 부족한가? 패배가 습관이 되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곤 했다. 이것이 부모의 욕심인지, 나와 성향이 다른 아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