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이라크 전쟁은 두 나라를 파멸에 가깝게 파괴시켰다. 마르잔의 아버지는 이 전쟁을 거대한 음모라고 칭했다.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이란군과 이스라엘의 실질적 위험이었던 이라크 군은 서로를 공격하며 약화되었고, 서구는 무기 장사로 큰 이득을 얻었다. 전쟁은 늘 그렇다. <페르세폴리스 P.262에 대하여>
중동의 여인들은 모두가 히잡을 쓰도록 되어있고, 그것은 이곳의 전통이라 태초부터 변함없이 그런 줄로만 알았었다. 만화의 첫 페이지를 보자마자 1980년 이전에는 이란의 여인들이 검은 천을 꼭 싸매고 다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문화 혁명이라 불렀던 이란의 혁명 전후 시기에 이 책의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는 10대 소녀였다.
정부 탄압과 인권 추락, 내전에 가까운 혼란 아래서 딸을 이란에 두지 않기로 한 마르잔의 부모는 마르잔을 유럽으로 보내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게 한다.
오스트리아로 간 마르잔은 보수적인 이란의 문화와 너무나 다른 서구 문화를 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게 된다. 이란 사람이라고 하면 테러리스트라도 되는 것 같은 취급 때문에 출신을 숨기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대마초를 피우며 그들의 문화를 따라 하기도 한다. 원래 펑크족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기괴한 모습으로 자신을 꾸미고 프랑스 사람인척하기도 하지만 결국 본 모습을 감추는 것이 비겁하다 느껴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란 출신의 십 대 소녀가 유럽인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애인에게 배신당하고, 유럽 사람들에게 차별받으며 방황하던 그는 다시 가족이 있는 이란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이란은 더 피폐해져 있었고, 여성의 인권은 더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르잔은 이란에서 미대를 다니며 다양한 활동을 시도해 보지만 그곳은 자기 모습으로 살수 없는 곳임을 깨닫고 부모님의 응원을 받으며 다시 프랑스로 떠나는 것으로 만화는 끝을 맺는다.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는 1969년 생으로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작가이자 만화가, 영화감독이다. 자신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페르세폴리스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었으며 그 후에도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며 활동하고 있다.
페르세폴리스는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다. 수천 년 전 고대 문명 발상지의 일부였던 그곳은 종교와 정치, 복잡한 외교적 문제 때문에 혼란의 도시가 되었다. 자신의 국가와 문화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살아갈 수 없었던 십 대 소녀의 눈으로 이란의 변화, 유럽에서의 생활을 묘사한 만화를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정치와 국가가 개인의 삶과 밀접하다는 개념은 지금의 우리에게 관념적으로 다가올 뿐이다. 전쟁이 날 만큼 충격적 변화가 아니라면 우리가 관심 갖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에 직접적 영향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국가의 결정은 나의 오늘에 어떻게든 영향을 준다. 나는 그 큰 물줄기가 바뀌는 것도 모른 채 내 의지대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우리의 현대사도 큰 판이 여러 번 바뀌었다. 집을 뺏기거나 총칼로 위협을 당하지 않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교육, 직업, 경제, 내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의 경향, 내 생각의 방향성, TV를 켜고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의 기획까지 국가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다.
어쩌면 너무 작은 개인은 자신이 어떤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지 모른 채로 큰 판의 움직임은 느끼지 못하며 열심히 자기 밭만 일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구가 도는 것을 느끼지 못하듯이 말이다.
이 책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났다.
2년쯤 전에, 중동 건설 현장에서 일하셨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참고 서적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 갔었다. 수십 년 전 중동에 대한 책은 많지 않았다. 몇 권 되지 않는 중동 관련 서적 중 만화책이 있었다.
만화책으로 분류되어 있어 설마 했는데 정말 만화였다. 학교 서적이라 대출이 안되어 열람실 한구석에 앉아 1권을 모두 읽었다. 흥미로워서 술술 읽혔다. 2권도 읽고 싶었으나 누군가 대출을 해 가서 다음을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작년 말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나 구입을 하기로 했다. 내가 도서관에서 봤던 1,2권으로 나뉘었던 책이 한 권으로 묶여 출간되어 있었다. 책값이 꽤 비싼 책은 그만큼이나 두툼했다. 종이 한 장이 다른 책의 두 겹은 될 만큼 두꺼웠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나중에 준이가 자라서 이 책을 여러 번 읽기를 바란다. 그래도 헤지지 않을 만큼 책장이 탄탄해서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