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공부법을 꾸준히 이어가면 좋으련만 목표기간을 두지 않고 가늘게 공부하는 직장인들은 자꾸 옆으로 눈을 돌린다. 좀 더 새로운 공부법을 찾아볼까? 더 특별하고 재밌는 건 없을까?
즐겨보던 블로거 중에 헤드헌터가 있었다. 독학 국내파인데도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면서 자유롭게 영어를 쓸 만큼 발전한 케이스였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영어학원을 다니라는 조언의 글을 올렸다. 자신도 대학 졸업할 때까지 영어를 잘 못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꾸준히 영어학원을 다녀 결국 외국계 회사로 이직할 만큼 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2년간 다닐 것을 추천했다.
"2년이면 길 것 같죠? 안 그래요. 지금부터 2년 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때부터 아무것도 안 했죠? 그럼 지금부터 어차피 보낼 2년, 그냥 학원을 한번 다녀보세요.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이 말이 왜 그렇게 끌리던지. 나는 꾸준하지는 못해도 한번 느낌이 오면 바로 실행하는 장점이자 단점을 가지고 있다. 글을 읽자마자 집 주변에 영어학원을 물색해서 등록을 했다.
출산 후 아이를 맡기려고 엄마네 옆집으로 이사를 온 덕에 자는 아이를 집에 두고 새벽에 두 시간 일찍 나와 학원에 가는 것이 가능했다. 당시에 아이가 어렸기 때문에 출근 전에 학원을 다니는 것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하고 싶어 아이를 봐주시는 엄마에게 부탁을 했다. 새벽에 학원에 가고 싶으니 두 시간 일찍 나가겠다고.
남편도 나에게 설득당해 같이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남편은 나 때문에 참 이것저것 같이 한 것이 많다. 내키지 않는 것도 많았을 텐데 참 고맙다.)
영어학원을 다니는 것은 하나도 특별한 방법이 아니지만 나에게는 굉장한 도전이었다.
뭐든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고, 내성적인 데다가 일종의 무대공포증까지 있는 사람이라 잘 못하는 영어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은 생각도 안 해본 일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방구석에 앉아서 혼자 말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 보았다.
그래도 그동안 공부한 것이 영 소용없는 것은 아니었는지 레벨 테스트 후 외국인 선생님 반에 배정받게 되었다. (사실 반이 별로 없는 학원이라 몇 마디 할 수만 있으면 외국인 선생님 반으로 배정되었던 것 같다. 남편은 그동안 영어와 담쌓고 있던 터라 한국인 선생님 반으로 배정되어, 매일 영어공부와 씨름하던 내가 아주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은 아니라고 확신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Jarvis 선생님은 캐나다 분이었다. 4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체격이 큰 백인 남자로,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다정한 아버지였고, 역시 캐나다 사람인 아내는 우리나라에서 영어 교재 제작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선생님의 반 학생은 다섯 명 정도였다. 나 말고도 처음 온 학생이 있었는지 간단히 이름 정도를 말하는 자기소개를 돌아가며 하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말은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고급반은 아니어서 선생님의 말이 빠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의 아버지가 목사님이셨다는데 그래서 그런 건지 뭔가 성직자의 설교처럼 수업이 늘 조용하고 평온했다.
"Be here now"
첫 수업에서 선생님이 주신 조언이었다.
새벽 수업이 끝나고 나면 다들 일터로 돌아갈 사람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이 자리에 집중하고 여기에 있으라.
영어 회화학원에서 처음 받은 가르침이라기엔 너무 아름다운 것 아닌가.
저녁 늦게 퇴근하여 12시까지 안 자려는 아이를 억지로 재우고 늦게 잠자리에 들고, 새벽같이 자는 애를 늙으신 엄마에게 맡기고 나와 앉아 있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무슨 공부를 얼마나 한다고 이러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복잡한 마음이 정리되었다.
어쨌든 하기로 결심했으니 지금 이 순간은 여기에만 있기로.
애도, 엄마도, 일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딱 공부하려고 왔으니 한 시간 동안 공부만 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에게는 특별하게 시작된 영어 회화 학원을 한 2, 3년은 다녔던 것 같다.
안타깝지만 영어학원을 추천해 준 블로거의 말대로 2년이 지났다고 해서 영어회화 실력이 부쩍 늘었던 것은 아니다.
(알고 보니 그 블로그는 영어 학원을 다니는 동안 외국인 친구들을 자주 만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본인이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겠지만 활달한 성격과 외국인 친구가 엄청난 도움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과 대면하면 아는 말도 못 하던 나에게는 생각하는 바를 어설프게라도 말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다.
첫째, 그 시간을 백 프로 활용하기 위한 예습과 복습을 하지 않았다는 점.
영어 회화 학원은 연습을 하러 가는 곳이지 공부를 하러 가는 곳은 아니다. 어차피 교재를 가지고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습이 가능하다. 교재에 나온 단어. 예상되는 대화 등을 미리 생각만 해가도 그날은 수업 참여도가 높고 한 단어라도 더 익혀 올 수 있다. 그걸 알지만 매일 시간에 쫓겨 출석만 간신히 했던 것들이 조금 아쉬웠다.
다음을 아쉬웠던 것은 내 성격이다.
전에 방송인 '박경림'의 영어공부에 관한 책을 본 적이 있다. 그의 미국 연수 경험담인데 짧은 기간에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이 꽤 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책을 읽어보면 미국에 가서 여기저기 활발하게 돌아 다녔을 것 같은 그의 성격과는 달리 어학원을 성실히 다니며 공부에만 전념했던 이야기들이 나온다. 역시 영어도 공부인지라 개인이 시간을 들여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성격이 아닌가 싶다. 본인의 노력과 함께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말하기를 시도해 보는 것. 아마도 박경림씨의 성공에는 성실함과 동시에 적극적인 대화 시도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는 주저하는 성격 때문에 수업을 듣는 그 어떤 사람보다 말을 적게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기에서 꽤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도 단문을 많이 얘기할 뿐이지 구성이 복잡한 문장을 쓰거나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문장 하나를 얘기할 때도 머릿속으로 문법을 맞춰보고 그마저도 자신 없어 말하기를 두려워했던 나로서는 그들이 참 대단하게 보였던 것 같다.
어차피 다들 영어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고 다시 볼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망설이고 부끄러워했는지 그 부분이 학원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첫 번째 영어학원은 아늑한 새벽 기운과 자상하신 아버지 스타일의 선생님에 대한 좋은 기억, 어느 정도는 영어로 말을 할 수 있다는 약간의 자신감을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몇 년 후 회사에서 10년 근속에 대한 선물로 주는 한 달간의 휴가를 얻게 되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제도이지만) 나는 그 기간 동안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영어학원에 등록을 했다.
외국인 선생님으로만 구성되어있고 비즈니스 영어를 위주로 하는 1:1 수업의 비싼 영어학원이었다.
조금 욕심을 내어 약간 어려운 교재를 선택했다. 황금 같은 휴가에 여행도 가지 않고 학원에 등록했기 때문에 이 시간을 어떻게든 유익하게 보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도 서려있었다.
교재가 어려워서 예습을 하지 않으면 수업 진행이 어려워 늘 예습을 확실하게 해 갔다.
끝나고 나면 선생님이 주시는 수업내용 프린트물로 간단히 복습도 했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한 달간 1:1 어학원을 다니면서 말하기도 많이 늘고, 여러 외국인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대화 스타일도 경험해 볼 수 있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곳 선생님들의 실력이 월등했다기보다는 수업에 임하는 나의 자세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영어학원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다른 공부법과 마찬가지로 영어학원도 자기 하기 나름이다.
영어 학원은 연습을 하는 곳이라는 것.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나서 다녀야 도움이 된다는 것.
예습을 하고, 수업시간 내내 초 집중하여 듣기와 말하기를 해보려고 노력할 때 얻는 것이 있다는 것.
교과서 위주로 공부한 합격담처럼 당연한 얘기지만 처음 다닐 때는 잘 몰랐던 것들이다.
오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