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전화영어 효과 있어요?

계속 해봐요.

by 춘춘

학습보다는 검증과 연습의 효과

참 이것 저것 많이도 시도했다.

이리저리 기웃대던 나의 영어 공부 이력 중 빼놓으면 서운할 아이템이 전화영어다.

읽기, 듣기, 문법공부 등을 하는 동안 자신의 실력이 늘었는지 인지하는 것은 어렵다. 스스로 공부를 하면서 전화영어를 꾸준히 병행하면 실력이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나의 경우 짧은 시간 선생님과 대화를 하는 것 만으로는 실력이 늘어난 것 같지 않았으나, 다른 공부 통해 익힌 것을 끄집어 내고, 회화에 익숙해지고, 자신감을 얻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유지했다.

처음 전화영어는 영어 학원을 그만두면서 시작되었다.

여러가지 상황때문에 새벽반에 다니는 것이 불가능해 졌고, 영어 회화를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은 전화영어밖에 없었다.

지금은 스마트 어플이 많이 생겨서 영미권 국가의 선생님들과 수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다양하지만 몇년전 까지만 해도 영미권 국가와의 전화영어는 비용이 회화 학원을 넘어설 만큼 비쌌고, 시차 문제로 수업시간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었다.

어차피 나는 초보였으니 필리핀 선생님의 수업이나 미국 선생님의 수업이나 큰 차이가 없을것 같아 비교적 저렴하고 수업시간 맞추기가 편리한 필리핀 선생님의 새벽 수업을 선택했다.


전화로만 대화하는 것은 당연히 대면회화보다 더 어려웠다.

처음 인삿말을 할때부터 적절한 대답을 하기 힘들었다.

새벽 수업이었으니 시작 인사는 언제나 Good morning.

무슨 특별한 일이 없냐는 질문에는 언제나 Nothing special.

주말은 즐거웠냐고 물으면 언제나 Same as usual.

가장 곤란할 때는 선생님이 친근하게 개인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게 그 말에 적절한 감정표현을 하는것이 완전히 불가능 할때였다.

다쳤다는 말에 어쩌냐, 안타깝다, 빨리 낫기를 바란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Ah~ Uh~하다 말기가 일쑤고, 기쁜일이 있다는 말에 나도 기쁘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입이 안떨어져 하하.... 하고 좀 웃다 말아서 분위기가 어색해 지고.


이럴때는 선생님이 나를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이 됐지만 그것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은 영어로 하기가 더 어려워서 영원히 오해로 남아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아무튼, 그렇게 매일 같은 패턴을 반복하던 영어 수업은 몇달이 지나도 큰 발전이 없었다.

매일 6시 부터 6시 10분까지 10분간의 수업중에, 첫인사 끝인사로 반이 뚝 잘려 나가고, 문제 몇개를 풀면 훌쩍시간이 가버리니 그럴수 밖에. 선생님도 늘 10분이 너무 짧다며 아쉬운 인사를 했다. 더구나 수업이 끝나고 나면 그 짧은 시간동안 내가 벌인 실수들과 괜히 시도했다가 앞뒤가 안맞아 끙끙댄 삽질 문장들이 뇌리에 남아있어 유쾌하지 못할때가 많았다.

가끔 선생님들이 편찮으시거나 필리핀 휴일이라 수업을 건너뛰는 날은 땡땡이 치는 학생 기분이 되어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어떤날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돈만 낭비하는것 같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라리 그시간에 혼자 공부를 하자. 라는 결심으로 한두달 쉴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같은 시간에 오던 전화가 오지 않으니 늦잠 자는 일이 태반이고, 한두달 밖에 쉬지 않았는데도 레벨 테스트를 해보면 그나마 조금 유지하던 실력도 뚝 떨어져 더 말문이 막혀버리는 것이었다.

결국은, '그래, 모닝콜 비용이라고 생각하자. 일찍 일어나서10분간 수업하고 남은 시간은 또 공부하면서 의미있게 보낼 수 있으니 한두마디라도 입을 뻥긋대는 비용으로 생각하자.' 결심하고 수업을 지속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오래 재밌게

전화 영어 특성상 매달 선생님을 바꿀 수있는데 선생님 선택도 은근한 스트레스였다. 코드가 맞는 선생님을 만나면 그분의 성향을 파악하게 되어 눈빛을 안봐도 척하면 척인 사이가 된다. 그러면 대화는 즐거워지는데 영어가 늘지 않는다. 서로 사정을 잘 알게되니 이런 저런 수다를 떨지만 그런 수다는 단문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해서 머리를 쥐어짜며 다양한 말을 해보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경우 선생님을 바꿔야 하는데, 아무리 얼굴한번 안 본 사이지만 매일 아침 10분씩 통화를 하며 몇달을 보낸 사이를 하루아침에 끊는 것이 영 마음이 무겁고 미안스럽다.

그래서 괜히 시간 핑계를 대며 한 20분 정도씩 다른 시간대로 바꿔야 한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며 선생님에게 이별을 고하곤 했었다.

코드가 맞지 않는 선생님을 만나면 그것고 고역이다. 수업 스타일이 맞지 않거나 너무 도움이 되지 않으면 중간에 선생님을 바꿔달라고 업체에 요청할 수 있는데 그것 역시 미안하다. 그래서 꾸역꾸역 한달을 채우고 다음번 등록할 때 다른 선생님을 찾아 선생님 유목민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렇게 몇년을 이런 저런 선생님들을 만나며 일상생활처럼 전화영어를 하다가 나와 딱 맞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연세가 좀 있으신 분인데 발음이 아주 좋으셨다. 전화 영어를 비롯해서 현지에서 영어 수업을 많이 한 분이시라 한국 및 일본 학생을 가르친 경험도 많았고, 이런 저런 상식이 풍부한 분이셨다. 그래서 대화의 폭이 넓었고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심도깊게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거의 1년 정도 그 선생님과 수업을 하던 무렵, 선생님이 새벽에 수업을 할수 없는 사정이 생겨 주말 저녁에 50분간 몰아서 하는것으로 시간을 바꿨다. 모닝콜 기능이 없어진 것은 아쉬웠지만 다른 선생님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 나의 생활패턴에 변화를 주었다.

어차피 새벽 기상은 이제 익숙해져서 할만했고, 아이도 많이 커서 주말 저녁 한시간 엄마의 영어 수업을 당연한 일과로 받아들여주었다. 내가 방에 들어가서 영어수업을 하고있으면 아이가 거실에서 조용히 있는 배려도 발휘해 주어 나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이 선생님과 주말 수업이 3년쯤 지속되고 있다. 한시간 대화를 하고 나면 그냥 책을 덮어버리고 다음 주말, 수업시작 10분전에 들춰보는것이 전부이긴 하지만 그래도 처음 시작할때에 비해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든다.

매주 50분씩 얘기를 하다보니 일주일간 서로의 일상에 대한 대화도 하고, 한국과 필리핀에서 일어나는 정치 사회적 뉴스에 대한 대화도 나눈다.

모르는 단어가 많아 사전을 찾아가며 허둥거리기는 하지만, 정치적 이슈, 사건 사고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래도 내가 이런 화제에 대하여 내 의견을 영어로 전달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할 때도 많다.


전화로 주말마다 50분간 대화하는 이 작업이 나의 영어 회화 실력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가끔은 이 선생님과의 대화가 익숙해진 것을 실력이 향상된 것으로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할 때도 있다. 하지만 현상유지는 분명히 한다는 것, 대화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아주 주관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남편이 에서 내가 말하는 것 들어보면, 전보다 말이 빨라지고 문장이 길어졌다고 한다


완전히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는 검증이 있던 날

회사에서 미국에 있는 업체에 매년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업무가 있다. 보통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해서 신용카드를 결제하는 것이라 업체와의 직접적인 연락은 필요가 없다. 그런데 작년에 결제상의 문제로 업체의 결제 담당자와 전화통화를 해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에 전화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호텔 예약 정도의 쉬운 대화도 아니고, 결제와 같은 어려운 문제로 통화를 하려니 버튼을 누르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동료들에게 나의 영어실력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전화기가 있는 가장 구석진 방을 선택하여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시간에 통화를 시도했다. 연락전에 필요한 문장과 단어를 만들어 두었지만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담당자와 연결이 되고 우리의 문제와 해결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의외로 의사소통이 그럭저럭 되는 것이었다. 단문이긴 했지만 꽤 정확하게 의사가 전달 되었고, 상대방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특히 내가 발전했다고 생각한 점은 상대방의 말을 못알아들었을때 나의 언어로 다시 쉽게 설명하면서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얘기하니 상대방도 나의 수준을 이해하고 쉽게 천천히 설명해 주었고, 자신감이 붙어 통화 후반부에는 나도 꽤 능숙하게 얘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무사히 통화를 마치고 괜히 가슴이 벅찼다. 옆에서 누가 들었다면 더듬거리며 가까스로 이어간 대화가 뭐 저렇게 자랑스러울까 싶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매일 샤워하듯이 아무 생각말고 꾸준히

처음 전화영어를 시작할때 I'm a working mom. 한마디 한 후 아무말도 못했다. 것도 관사 'a'를 넣을지 뺄지 검색까지 하고 던진 말이었다.

아직도 시제 선택이 어렵고, 관사와 전치사 사용에는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은 할 수 있다.

"어제, 백신 주사를 맞아서 지금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 어제는 열도 나고 아팠는데, 남편이 약을 사다줬고, 그걸 먹어서 열이 좀내렸어요. 그것 때문에 늦잠을 자서 수업 벨소리를 늦게 들었어요. 미안합니다."

제 이정도는 말 할수 있다.


영어 학원도 그렇지만 전화 영어는 그야말로 수업에 임하는 자세와 예습복습이 한몫을 한다.

그날 선생님과 한 말들 중 중요한 표현은 선생님이 수업노트로 남겨주시니 그걸 잘 익히면 꼭 다음에 써먹을 일이 생긴다.

또, 내가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수업 시간 후에 인터넷으로 찾아서 적어두면 다음번에 비슷한 대화에서 제대로 쓸 수 있다. 그렇게 배우고 익힌 단어와 문장은 금세 외워지고, 대화를 나눴던 상황이 기억나므로 쉽게 잊혀지지도 않는다.


뭐든 꾸준히 하는것은 정말 쉽지 않다. 의지가 강한 편도 아니고 불같이 노력하는 편도 아니라서 나의 영어는 그 발전이 더욱 늦어지는 것이리라. 비록 작심삼일을 수년간 반복하는 성실하지 못한 학생일지라도 그 끈을 놓지는 않고 있으니 약하지만 꾸준한 나의 노력이 언젠가는 빛을 발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오늘도 일상속에 영어 공부를 집어넣어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8. 이제 와서 알아 가는 영문법의 참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