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25년도 회고

by 흑백필름

50대에 들어서면서 달라진 게 하나 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걸 인식한다는 점이다. 멋 모르고 창업했던 30대나 의욕 넘쳤던 40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나에겐 시간이 많으니까 될 때까지 덤벼서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무모한 자신감이 그 시절엔 있었다.


50대에 들어서니 신중해졌다. 짧으면 10년, 길어봐야 20년가량 실무형 대표로 필드에서 뛸 수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도 그렇고 조직체계상으로도 그게 맞다. 물론 30년이나 40년 동안 현업에서 뛸 수도 있다. 워런 버핏이나 찰링 멍거처럼.


그래도 손가락 사이로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시간의 소중함은 50대에 접어드니 확실히 더 와닿는다. 지금은 제목을 잊어버린 오래전 시집에서 읽었던 '시간은 예금 통장과 같아서 나이가 들 수록 가난해진다'는 구절이 떠오른다. 넘치면 그 가치를 잊고 지내는 건 돈이든 사람이든 시간이든 마찬가지다. 부족해질 때가 되니 더 절실하게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낸 1년이다.


2025년도 한해를 사업과 개인으로 나눠서 회고해 본다.



[사업]


1. 사옥 이전

4월 25일 강남사옥으로 이전했다. 23년 5월 토지 계약 후 2년 만에, 24년 1월 착공 후 1년 반만이다. 건축 관련 이야기는 https://www.facebook.com/share/p/17cP3jENJM/ 에 정리해 두었다. 이전 후 1달 가까이 인터넷이 안 되고, 건축물대장 등기가 늦어져 마음고생을 했다. 수목을 심고 건물 하자 유지보수를 한다고 3~4달이 금방 지나갔다. 지금은 만족하며 잘 지낸다.


1층에 1만 원 균일가 무인샵 '오에딧'을 기대반 걱정반으로 오픈했는데, 다행히 가을부터 손님이 늘고 있다. 지하에 세팅한 무인 호리존 스튜디오(https://naver.me/GziHBAa9)인 '오리진'도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스튜디오를 이용하는 단골이 생겼다.


사무 공간이 오즈키즈 사업부인 2층과 신사업부인 3층으로 분리되면서 소통 단절 우려가 생겼다. 멤버 간 원팀 마인드와 지속적인 교류를 장려하고자 동아리 제도와 랜덤 점심 프로그램을 도입했는데 둘 다 반응이 좋다.


지대가 높아서 출퇴근할 때 조금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이곳에서 3~4년 지낸 후 회사를 더 키워서 지하철 가까운 곳으로 사옥을 이전하고 싶다는 욕망이 싹트고 있는 중이다. 사옥이 있으니 한 해 동안 지인들과 손님들 방문 횟수가 늘었다. 내가 가입한 소모임들의 행사 공간으로도 쓰고 있다.


시간이 지나자 의사결정의 안개가 걷히고 결과가 또렷해진다. 2년 반 전에 토지 가계약을 한 의사결정은 결과적으로는 올바른 판단이었다.



2. 상장 일정 연기

상장 일정을 연기했다. 한국거래소에 신임 이사장이 부임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코스닥 상장 기준은 높아지고 퇴출 기준은 낮아졌다. 정량적 수치인 영업이익과 매출 볼륨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갔다. 높아진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일정을 연기했다. 목표는 1년 연기로 잡았지만 거래소 분위기에 따라 2년 더 늦어질 수도 있다. 우리 조직의 기초 체력을 더욱 탄탄히 하는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상장을 목표로 하면 좋은 점이 많다. 그중 하나가 1년 후라는 단기 목표가 아니라 상장 후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기업을 성장시키고 시가 총액을 키울 수 있을지 장기적인 관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미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조직의 역량을 키우고 신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마치 대학 진학이 전부인 것처럼 공부하던 고등학생이 대학 졸업 이후에 삶을 고민하면서 관점의 변화를 가진 것과 같다.



3. 중국 워크숍

올 초에 40여 명의 임직원들이 중국으로 3박 4일간 워크숍을 다녀왔다. 항주에 들려서 알리바바 본사를 투어 한 후 이우로 가서 시장조사를 했다. 상하이에 단독 펜션을 빌려서 발표도 하고 게임도 하면서 팀워크를 다졌다. 주가각과 디즈니랜드 투어도 했다.


해외 워크숍은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면 대략 2년에 한 번씩 가기로 한 약속을 잘 지켰다. 10년간 다녀온 5군데 국가는 아래와 같다.


2015년 괌

2017년 필리핀

2019년 일본

2022년 싱가포르

2025년 중국


2027년에는 어디로 다 함께 떠날까? 그건 2년 후 회사의 실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해외 워크숍 외에 분기별 문화행사를 통해 우리 멤버들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봄에는 회사에서 처음으로 10km 단축 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벚꽃 만발한 봄날에 한강을 다 함께 뛰었다. 이 행사 후 달리기를 시작한 직원이 몇 명 있어 회사가 구성원의 삶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재확인했다.


가을에는 실내체육관을 빌려서 체육대회를 했다. 다양한 경기를 하면서 팀빌딩을 가졌다. 의자에 앉아서 뇌를 쓰면서 하는 행사도 좋지만, 운동장에서 함께 몸을 움직이면서 웃고 떠드는 게 팀 단합에는 더 유용한 거 같다.


얼마 전에는 포방터에서 연탄봉사 활동을 했다. 중국지사에서도 2명이 와서 함께 했는데, 생애 첫 봉사활동을 한국에서 할 줄 몰랐다는 피드백을 듣고 다들 빵 터졌다. 이날 한파가 찾아와 추운 날씨에 연탄 나르는 곳까지 오르막이 심해서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그만큼 봉사를 마친 후 보람도 컸다.


2026년에도 계절마다 한 번씩 문화 행사를 가질 계획이다. 우선은 1월에 1박 2일로 비전 워크숍을 계획 중이다. 2018년 8월에 '가인지 캠퍼스'를 통해 비전워크숍을 진행한 지 7년 만이다. 당시 우리가 꿈꿨던 이상적인 미래를 얼마나 현실로 만들었는가. 되돌아보면 턱없이 부족하다. 당시에는 6년 후에는 매출 1천억 원하는 큰 회사가 되어 있길 바랐다. 2018년이면 매출 60억 원 내외였는데 6년만 1천억 원이라, 쉽지 않은 미션이긴 했다.


올해 우리 회사 매출은 200억 원에 조금 못 미칠 거 같다. 목표한 금액과 괴리가 크다. 이번 비전 워크숍에서는 앞으로 5년 후인 2030년 우리 회사의 미래에 대해 진실되게 얘기를 나눠 볼 계획이다.



4. 메인 브랜드

우리 회사의 중추 역할을 하는 유아 패션 브랜드는 10%대 성장을 했다. 20%를 목표로 했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자사몰은 매출 볼륨은 소폭 성장했지만 광고 소재가 좋아진 덕분에 ROAS가 개선되었다. 쿠팡은 벤더플렉스를 도입해서 대대적인 투자를 했지만 투자에 비해 성장이 부진하다. 네이버 쇼핑은 라이브방송 덕분에 20% 가까이 성장해서 선방했다. 입점몰과 공구마켓도 꾸준하다.


매장은 한 해 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 16개점에서 4개점이 늘어나 총 20개점으로 마무리를 했다. 부진 매장을 철수해서 질적으로도 많이 개선되었다. 내년에는 10개를 더 늘려서 30개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5. 신사업 도전과 패배

한쪽에서는 새로운 씨를 뿌리고 한쪽에서는 죽은 작물을 정리한 해였다. 신사업 중 가장 인상적인 건 푸드 카테고리 진출. 올 가을부터 준비해서 얼마 전 식품 카테고리 제품을 처음으로 론칭했다. 다음 달에 두 번째 식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식품 쪽은 경험이 없어 어떻게 마케팅을 풀어야 할지 배워야 할 게 많다. 다만 이커머스라는 본질은 카테고리와 무관하게 유사하다는 가설 아래 차근차근 플랜대로 문제를 풀어나갈 생각이다.


2년 전에 론칭했던 여행 카테고리 제품과 유아 화장품은 유명을 달리했다. 여행 관련 제품은 아이템을 확장하며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유아 화장품은 돌파구를 찾지 못해 정리되었다. 캠핑 카테고리 역시 뼈아픈 실패를 인정하고 정리 중이다.


성인 패션 카테고리에서 소싱 제품 유통 파트는 완전히 정리했다. 우리 회사는 제조부터 시작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 아래 전 제품을 직접 우리 콘셉트에 맞게 만드는 걸 원칙으로 잡았다. 성인 브랜드는 지난해와 매출 볼륨은 비슷하지만 질적으로 성장했다. 2026년도가 더욱 기대된다.


주니어 브랜드에서 가능성을 발견해서 새해에는 아이템을 확장할 계획이다. 여름 출시를 목표로 베이비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 베이비 브랜드 론칭까지 성공하면 베이비 - 주니어 - 키즈 - 성인으로 이어지는 라이프 스타일 패션 브랜드 프로세스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신규 카테고리 진출 시 한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 그래서 뷰티와 푸드에서 기회를 계속 타진해 볼 생각이다. 한국 1등이 세계 1등인 카테고리가 해외 시장 진출에는 확실히 유리하다. 초기 진입이 어려운 만큼 끈기를 가지고 계속 도전해 볼 계획이다.



6. 지원 조직 불안정

회사의 경영을 지원하는 경영지원팀 조직이 1년 내내 불안정하게 돌아갔다. 지난해 합류한 리더와 일하는 방식이 맞지 않아 상반기 내내 트러블이 생겼다. 결별한 이후에 새롭게 합류한 리더 역시 나와 맞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서류를 검토하고 면접을 진행하고 레퍼런스 체크를 해도 결국 우리 회사에 적합한 인재는 '운'이라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걸 부정하기 힘들다.


적합한 인재를 찾아서 출근했는데 생각보다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떠난 일도 있었고, 3주를 기다려서 출근을 앞두고 있는데 이전 직장에서 너무 강하게 잡아서 다시 2달을 더 기다려 달라고 해서 포기한 인재도 있었다. 한 후보는 4주 후 출근 가능하기로 했는데, 기다리는 동안 내 판단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위로금을 주고 채용 결과를 번복한 일도 있었다.


팀에는 유능한 팀원들이 있더라도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있어야 문제 해결을 빨리 할 수 있다. 팀원들은 현상 유지는 잘 하지만 대형 프로젝트를 맡기기에는 불안하다. 장기 근속했던 경영지원팀 리더가 건강상의 이유로 떠난 이후 1년 반 넘게 팀이 불안정하다. 부디 2026년도에는 우리가 찾는 이상적인 리더가 합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7. 거래처 확장

생산 거래처가 늘어났다. 중국 출장과 캔톤페어를 통해서 더 뛰어난 기술에 경쟁력을 가진 공장을 확보했다. 우리 아이템 중에서 취약했던 생산처는 새로운 공장으로 변경해서 경쟁력을 갖추었다. 기존 공장을 통한 안정적인 생산도 필요하지만, 더 나은 생산공장을 발굴하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중국에서는 의류 공장뿐만 아니라 여행용품 공장도 늘렸다.


식품은 카테고리 특성과 해외 수출을 목표로 하는 만큼 국내 공장을 많이 알아봤다. 경기도와 충청도까지 공장을 찾으러 직접 다녔다. 최근에는 부산에 괜찮은 공장 한 군데를 찾아서 아이템을 생산 중이다. 아무리 뛰어난 콘셉트와 제품 아이디어, 기발한 마케팅을 하더라도 결국 생산 공장의 기술력과 품질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경쟁력을 갖춘 협력 공장과 끈끈한 파트너십을 가져야만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8. AI

회사에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이제부터 진짜 AI의 시대다. 23년도에 챗지피티가 보급화 된 후 AI를 콘셉트, 마케팅, 스토리 등 업무에 활용했었다. 24년도에는 미드저니와 지피티를 통해 이미지 생성을 했다. 25년도인 올해에는 Veo를 통해 숏폼 영상 제작에 AI를 전사적으로 도입했다.


새해에는 업무 자동화에 AI툴을 본격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AI 에이전트 시대가 열리고 있다. 안티그래비티를 통해 보이스코딩으로 업무 관련 프로그램을 만드는 걸 주안점으로 두고 있다. n8n이나 make, opal을 통한 업무 자동화, 코멧이나 아틀라스 등 AI 브라우저 활용 등 하고 싶은 게 많다. AI를 통해 일하는 방식이 많이 변했는데, 진짜 큰 변화는 새해부터 시작될 걸로 예상한다. 이 빠른 변화에 맞춰 나 역시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AI 관련 트렌드와 지식은 계속 배울 생각이다.



9. 합류한 사람과 떠난 사람

경영지원팀의 인원 변동이 컸다. 총 6명의 인원이 합류했다가 떠났다. 함께 하고 싶었는데, 떠난 이도 있고 핏이 맞지 않아 어렵게 권고사직 시킨 이도 있었다. 인재 채용에 내 에너지를 가장 많이 썼다.


경영지원팀 외에 떠난 이는 3명. 감각 좋은 디자이너 한 명이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해외 이민을 가게 되었다. 장기 근무했던 MD 한 명이 사옥 이전으로 인해 거리가 너무 멀어져서 그만두었다. 물류팀에서 장기간 일했던 직원 한 명이 집안에서 일어난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불가피하게 떠났다.


회사를 키우기 위해 젊고 열정적인 인재가 각 팀별로 합류했다. 성인 패션 디자이너, 주니어 패션 디자이너, 신사업 MD, 포토그래퍼, 토요배송 물류 담당 등이 올해 합류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한해를 되돌아보면 경영지원팀 외에는 모든 팀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10. 아쉬움이 남는 것들

올해 가장 아쉬운 일 중에 하나가 미국 아마존 채널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경영지원팀 조직이 계속 불안정하게 돌아가고 채용 우선순위에서 아마존 담당은 늘 후순위로 밀렸다.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원칙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 부분을 소홀히 했다. 1년 후인 내년 이 맘 때는 아마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고 회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일일 손익계산서를 씨그로(엔대시)로 고도화시키려고 했는데, 이 역시 경영지원팀이 불안정하게 운영되면서 진도가 못 나갔다. 지금도 쓸만한 수준이긴 하지만 내년에는 훨씬 더 정밀하고 최적화시켜보려고 한다.


과거의 데이터를 참고로 해서 미래의 판매를 추정하는 '예측 발주 시스템' 개발 역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AI의 도움을 받아서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바쁜 현업에 밀려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내년에는 반드시 제대로 된 예측 프로세스를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있다.



25년의 성과를 기반으로 삼아 26년도에는 더 열심히 일 할 생각이다. 중요한 시점인만큼 더욱더 몰입해서 영향력이 크고 중요한 일에 내 시간을 더 쓸 것이다. 25년의 나 자신과 비교해서 더 열정적으로 일했다고 자평할 수 있도록 후회 없이 일할 생각이다. 특히 뜻한 바는 반드시 달성하는 '집념의 해'를 새해 목표로 삼아 투지를 불태울 것이다.




[개인]


1. 달리기

올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올봄에 드문 드문 달리다가 12월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렸으니, 나름 잘 달리고 있다고 자부할만하다. 12월엔 234km, 1년 동안 총 1,332km를 달렸다.


계기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이었다. 연초에 뒷산 오르듯 무모하게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올랐는데, 평소 러닝으로 단련된 아내가 수려한 설산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지옥을 맛봤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거의 네 팔로 기다시피 해서 겨우 정상에 오르면서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살아서 하산한다면 반드시 운동을 시작하리라'


어떤 운동을 시작할까 고민하던 중에 회사 2/4 분기 행사를 10km 단축마라톤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명색이 대표인데 순위권에 들어서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욕심에 양재천을 2km씩, 3km씩 달리면서 조금씩 거리를 늘려 나갔다.


사내 마라톤 대회를 3위로 입상해 체면을 세운 뒤 흥미를 잃어가던 중 오랜만에 들린 미용실 원장님이 다시 동기부여를 해줬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2년이 되었는데 체력과 정신력 모두 강해졌다며 네이버 러닝 카페 한 곳을 추천해 주었다. 일주인에 한 번씩 러닝 크루들과 함께 뛰면서 달리기 기초를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정신 무장이 되었다. 2010년 이 책을 읽은 아내가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15년 후에 다시 내가 이 책을 읽고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혼자 의지력으로 달리는 게 얼마나 지속하기 힘든 지 다들 잘 알 것이다. 무릎이 아파서, 바쁜 일이 있어서, 어제 과음해서, 몸이 좀 으슬거려서 등 다양한 핑곗거리가 생기면서 달리기를 소홀히 할 무렵, 방콕에서 다시 달리기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생겼다.


방콕으로 떠난 비즈니스 인사이트 트립 멤버 중 나와 비슷한 수준의 초보 러너 5명이 모여서 방콕 시내를 3일간 달렸다. 돌아오고 난 후에도 이 다짐을 이어가자며 빛 러너스(Business Insight Trip Runner. BIT) 단톡방을 만들었다. 여기서 한 달 동안 달릴 목표를 적고 매일 달린 거리를 공유했다. 50km에서 시작해서 70km, 100km 120km, 150km 이런 식으로 계속 거리를 늘리다가 10월부터는 200km를 매달 달리고 있다. 처음 5명으로 시작된 멤버들도 각자 지인들을 추천해서 멤버가 18명까지 늘었다.


10월에는 강남국제평화마라톤 대회 10km 부문에 참가해서 51분 37초로 들어왔다. 11월에는 한강에서 10km 코스를 짜서 자체적으로 '제1회 이장님배 빛러너스 대회'를 열었다. 내년에는 광교에서 제2회 벚꽃 빛러너스 대회를 열 계획이다.


달리기를 하고 몸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뱃살이 들어가고 체중이 줄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가볍고 잔병치레도 하지 않는다. 허리나 어깨, 다리 등 뻐근 거리는 것도 사라졌다. 술도 더 잘 들어간다. 체력이 좋아진 게 확실히 느껴진다.


무엇보다 나의 자의식이 달라졌다는 점이 크다. 그전까지는 나 스스로 '지식 노동을 하는 허약한 체질의 소유자'라고 규정했다면 달린 이후부터는 '건강한 아마추어 러너'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었다. 나를 체력 관리 잘하는 정신력 강한 사람으로 재정의했다.


음악이나 유튜브를 들으며 달릴 때도 있지만 대체로 전자기기는 집에 두고 애플 워치 하나만 차고 달릴 때가 많다. 처음에 숨을 헉헉거리며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리가 맑아지고 생각이 명징해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갖고 있던 고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며 내가 뛰고 있는 큰 판을 내려다보게 된다. 뒤섞여 있던 문제들이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들로 구분이 되고 내 삶에 있어 중요한 것에 생각을 집중한다. 그렇게 달리면서 삶과 일의 우선순위 설정을 한다.


심장이 터질 듯 헉헉거리며 목표한 거리를 완주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할 때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어제보다 더 강해진 기분이 들고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오늘 하루도 승리했다는 자족감이 든다.


더 먼 거리나 더 빠른 기록보다는 꾸준함에 초점을 두고 있다. 내년 이 맘 때까지 계속 달리려면 무리한 목표보다는 일상의 루틴이 될 수 있도록 '빈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빠르게 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빠르게 뛰고, 더 먼 거리를 뛰고 싶을 땐 더 멀리 뛴다. 하지만 무의식 중에 씻고 밥을 먹듯이 무의식 중에 5km쯤 뛰고 오는 일상을 만드는데 더 집중하고자 한다.


얼마 전 2026년 11월에 열리는 Jtbc 마라톤 풀코스를 신청했다. 아직 11개월이나 남았으니, 이렇게 달리기를 일상에서 즐기다 보면 내년 11월에는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 완주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2. 책 출간

생애 처음으로 책을 썼다. 공식적으로 작가라는 호칭을 들었다. 친구들에게 농담으로 '최작가, 최작가' 듣는 게 아니라 출판사로부터, 관계자로부터, 독자로부터 공식적으로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들었다. 들어보니 기분이 괜찮았다.


책을 쓴 직접적인 계기는 아는 출판사 대표님의 권유였다. https://www.facebook.com/share/p/185wNqvsAa/ 지인 주도의 북토크 자리도 가졌다. https://www.facebook.com/share/v/1G3mRGXtpR/


책을 쓰고 난 후 재미있는 일이 많이 일어났다. 대형 플랫폼 대표님이 우연히 내 책을 읽고 작가와 식사 자리를 갖고 싶다고 그래서 함께 와인잔을 기울였다. 따릉이를 타고 가다가 아는 독자를 만나기도 했고, 우연히 모임 옆자리에서 앉은 이가 독자라며 따로 찾아오기도 했다. 낯선 이들이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작가와의 미팅을 요청해서 응하기도 했다.


책은 생각의 기록이다.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고 왜곡된다. 그동안 사업을 키우면서 매 시기마다 집중했던 문제들이 있다. 그 날 것의 감정들을 글로 기록해 두는 게 누군가에게는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직접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나 자신도 성찰할 수 있다.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음 책은 2027년 가을쯤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에도 한 달에 한 꼭지씩 꼬박꼬박 글을 쓰고 있다. 귀찮아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다 쓰고 난 뒤 성취감을 떠올리며 매달 내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실시간으로 글을 쓰고 있다. 다음 책이 나오면 첫 책처럼 이 글을 읽는 지인들이 한 권씩 사주시길 부탁드린다.



3. 여행

겨울은 히말라야 설산에서, 여름은 발리의 바닷가에서 보냈다. 장성한 아들 2명이 군대에 있어 처음으로 아내와 긴 여행을 다녀왔다. 방콕과 제주도에서 옅은 관계였던 사람들과 친밀해졌다. 회사 직원들과 함께 중국을 다녀왔다.


낯선 곳을 여행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더 커졌다. 함께 떠난 이들과 더 가까워졌다. 여행기는 아래 링크에 남겨 두었다.


1월 홍콩 유아박람회 참가

1월 중국 상하이-항주-이우 회사 워크숍 5번째 해외 워크숍을 다녀왔어요

1월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초보를 위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비용, 준비물

3월 아내와 실미도 여행

6월 태국 방콕 비즈니스 인사이트 트립 https://www.facebook.com/share/v/17iea4tmva/

7월 제주도 가인지 포럼

8월 발리 서핑 여행 발리 짱구, 우붓, 길리 비치클럽 서핑 스파 요가 여행

9월 제주도 비즈니스 인사이트 트립 https://www.facebook.com/share/p/17134vrrQt/

11월 광저우 캔톤페어


새해는 '추억 여행'으로 한 해를 시작하려고 한다. 아내와 대학시절에 만나 연예를 하며 처음으로 함께 떠났던 여행지인 추암으로 2박 3일 동안 추억 여행을 다녀온다. 30여 년 전 추억을 더듬어보려고 한다. 여름에는 아내와 함께 산티아고를 걸어볼 생각이다. 바닷가 쪽 코스를 알아보고 있다. 며칠이나 걸을지는 구상 중이다. 1월 중에 항공권을 예약하고 숙소를 알아볼 계획이다. 1년 동안 열심히 달린 덕분에 산티아고에서는 건강하게 잘 걷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4. 독서

올해 30권의 책을 읽었다. 독서만큼 나를 자극하고 성장시켜 주는 루틴은 없다. 한 해 동안 내가 지치거나 실의에 빠질 때 용기를 북돋아준 건 책이었다. 한 달에 3권씩 읽는 게 목표이나 올해에는 30권에 그쳤다. 폰을 차에 두고 퇴근하는 날과 독서량은 비례한다. 새해에는 좀 더 독서량을 늘려보기로 마음먹는다.


올해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은 *를 했다. 그리고 내가 뽑은 '올해의 책'에는 볼드 처리를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내가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 책이다. 나의 수명을 연장시켜 준 공로다. 읽은 순으로 책 리스트를 정렬했다.


1. 불변의 법칙

2. 불량한 부부의 히말라야 여행

3. 가자 안나푸르나

4. 플랫폼을 지배하는 조회수의 법칙

5. 언제부터 사람이 미워졌습니까

6. 퇴사준비생의 도쿄 2

7. *거인의 리더십

8. 커리지

9. 작별하지 않는다

10. *일론 머스크

11. *류재언 변호사의 협상바이블

1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13. 더 빠르게 실패하기

14. 단번에 이해시키는 설명의 기술

15.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6. 허송세월

17. 제가 좀 팝니다

18. 스틱

19. 될 일은 된다

20. 오우아

21.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22. *수학을 읽는 힘

23. 컨셉수업

24. *가난한 찰리의 연감

25. 어떤 어른

26. AI 반도체 전쟁

27. 에디토리얼 씽킹

28.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

29. *실패를 통과하는 일

30. 신뢰 이동



5. 가족

아내와 강아지와 함께 평화롭고 오붓한 생활을 즐겼다.


아내는 올해 그림을 시작했다. 스케치북에 드로잉 하기도 하고, 한 땀 한 땀 페인딩(https://iammini.co.kr/ 위메이크페이딩 추천)을 하기도 하면서 그림 솜씨를 길렀다. 지금의 노력이 쌓여 몇 년 후 아내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으면 좋겠다.


아내는 15년째 주 5회 정도 달리는데 올해도 그 루틴을 잘 이어가고 있다. 인터벌로 하는 거 같은데, 월 200km는 늘 달린다고 그랬다.


회사 1층에 무인 매장을 오픈했는데, 아내가 인테리어와 VMD 역할을 잘해서 매출이 올랐다. 제품 진열과 정리 등 자잘하게 손 가는 일이 많은데, 꼼꼼하게 잘 챙겨줘서 든든하다.


휴일에는 애견 동반이 되는 지하철역 근처 가마치 통닭집에서 종종 아내와 맥주를 마셨다. 가끔 개포시장에 어묵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초장집에서 해물라면이나 막회를 먹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파전에 막거리를 마시러 개포시장 전집을 몇 번 다녔다.


큰 아들은 내년 봄 제대를 앞두고 있다. 대학원 진학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가고 싶은 대학원에 입학 서류를 넣고 있는 중이다. 이제 성인이 된 만큼 자기의 길을 잘 찾아서 헤쳐나갈 걸로 믿는다.


둘째 아들은 먼저 제대해서 가을에 복학했다. 둘째 역시 석사 진학을 고려하고 있어서 학업에 매진 중이다. 환율이 올라 부족해진 생활비는 군생활 때 모든 월급과 유튜버 수익 등으로 채우면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부모 마음이 다 비슷하겠지만, 자녀에 대해서는 잘 먹고 운동 잘해서 건강한 게 최고의 바람이다. 밝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면 더 바랄 게 없다. 그 이상은 모두 사치다.


우리 집 귀염둥이 강아지 '쿠키'는 벌써 14살이 되었다. 턱 부분과 정수리 부분이 노인처럼 하얀 털로 변했다. 흥분하면 자주 컥컥거린다. 하지만 여전히 아기처럼 호기심 많고 발랄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다니며 주중에는 아내가 해주는 백숙 간식을, 주말에는 CU편의점에서 애견간식으로 미식회를 즐기고 있다. 간혹 이웃사촌의 '연수'와 '나은'이라는 천사를 만나서 신나게 논다.(혹은 놀아준다)


시골에 홀로 지내시던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 11월에 병원에서 암진단을 받았다. 육종암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5차례에 걸쳐 검사를 받은 후, 지금 진주 경상대학교 병원에서 방사능 치료 중이다. 심경의 별다른 변화 없이 담담하고 강인한 모습이다. 이웃들과 여전히 농담을 즐기며 잘 지내고 계신다.



6. 습관

올해 가장 열심히 노력한 건 일찍 일어나서 달리는 거였다. 잘 일어났고 잘 달렸다. 12월에는 꽤 추운 날이 많았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달리기를 했다. 주 5회 정도 달리는 루틴은 새해에도 계속 이어갈 것이다.


새벽 달리기를 하려면 일찍 자야 했다. 예전에는 11시나 12시에 잠들었는데 1시간 정도 일찍 침대에 누웠다. 책장을 몇 장 넘기다 보면 금방 졸렸다. 간혹 커피를 2잔 마신 날은 눈이 말똥말똥할 때가 있어서 2번째 커피는 반드시 디카페인으로 마시고 있다.


폰을 차에 두고 내리는 습관은 1층 무인점 때문에 많이 못 지켰다. 원격으로 문을 잠가야 했고, 지하 스튜디오 관련해서 CCTV로 확인해줘야 할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 사옥 운영이 어느 정도 안정화된 만큼 새해에는 폰을 두고 오는 습관을 더 잘 유지해보려고 한다.


일기는 올해에도 꾸준하게 잘 썼다. 하루를 상징하는 사진 한 장과 함께 일기를 쓴다. 일기 덕분에 하루에 한 장씩 사진을 찍는 새로운 습관도 생겼다. 일기는 '데이원'이라는 앱을 유료로 쓰고 있다. 하루를 성찰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내일을 계획하기에 일기만 한 게 없다.


듀오링고와 워들에 이어 아내를 따라 스픽이라는 앱도 하루에 한 번씩 연습하고 있다. 출퇴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데 실력이 느는지는 모르겠지만 루틴 관리에는 도움이 된다.


꾸준함의 힘을 믿는다. 예전 고등학교 입구에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집념'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맞는 말이다. 그 정도 꾸준함과 집념이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게 없다. 축적의 힘을 믿고 일상의 습관을 쌓아가고 있다. (새해에는 습관 유지에 도움 주는 제품을 만들어 팔아볼 생각이다.)



7. 커뮤니티

한해를 되돌아보면 감사할 일이 많다. 아니 감사할 일이 아니라 감사할 사람이 많다. 내가 성취한 대부분은 모두 누군가의 도움과 배려 덕분에 이룬 것들이다. 그래서 주변에 좋은 커뮤니티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좋은 멤버들과 함께 한 해 동안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간혹 나와 핏이 많지 않은 이들이 있어 속앓이를 할 때도 있었지만 2025년 12월 31일 현재, 우리 회사의 구성원 모두 최고다. 이들과 함께 한 덕분에 성과를 낼 수 있었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다.


모임을 많이 하진 않지만 강한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곳이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만든 글로벌퓨처스 2기다. 여기 멤버들과는 8년째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면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 새해에는 내가 이 모임의 회장을 맡게 되어서 더욱 열심히 모임을 운영해 볼 생각이다.


북클럽도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커뮤니티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책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더 겸손하고 더 관대해질 수 있었다. 달리기 모임도 정말 좋다. '빛러너스' 덕분에 한 해 동안 열심히 달릴 수 있었다.


며칠 전 아내와 '던바의 수'를 적어본 적이 있다. 던바 교수는 나와 진짜 가까운 사람은 5명, 가까운 사람은 15명, 아는 사람은 150 정도라는 이론을 편 분이다. 진짜 가까운 사람은 가족이니까 적기 쉬웠다.(아내에게 내 순서가 강아지 다음으로 적혀서 좀 충격을 받긴 했다.) 나머지 10명은 누구일까?


아내와 함께 상의해 가며 노트에 이름을 적어보았다. 가깝게 지낸다는 것의 정의에 따라 사람이 달라졌다. 자주 만나는 게 가까운 건지, 나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이가 가까운 건지, 서로의 깊은 고민을 알고 지내는 게 가까운 건지 모호했다. 정의에 따라 다르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씩 적어보면서 새해에는 이들에게 더욱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테니까.


새해에는 새로운 커뮤니티 한 군데 가입할 생각이다. AI가 업무에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 커져서 AI 관련해 오프라인 교육을 받고 수강생들과 커뮤니티를 가질 생각이다. 나이가 쉰이 넘어가면서 이런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게 조금 미안해질 때가 있다. 20대, 30대 젊은 친구들에게 괜한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우려가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말하는 역할이 아니라 듣는 역할이고, 가르치는 역할이 아니라 배우는 역할이면 나이와 무관하게 잘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용기를 낸다.



8. 2026년

가끔 묘비명을 생각한다. 내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하루키의 책 때문일 것이다. 하루키는 묘비명에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적고 싶다고 그랬다. 잘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잘 죽는 것이다. 어떻게 죽는 게 잘 죽는 건지 고민하다 보면 역으로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답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평온한 일상을 내년에도 즐기고 싶다. 아내와 강아지 산책 후 노천바에 앉아 맥주를 한잔 들이켜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비 오는 토요일 아내가 해주는 파전에 얼음 막걸리를 마시거나 추운 겨울 편의점의 뜨거운 단팥 호빵을 후후 불어 먹는 즐거움도 계속 누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 저녁 약속과 술자리는 조금 줄이고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날 생각이다. 그동안 나는 하루가 네 덩어리인 줄 알았다. 오전에 한 덩어리, 오후에 두 덩어리 그리고 저녁에 한 덩어리. 류재언 변호사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새해에는 오전을 두 덩어리로 늘려서 하루를 좀 더 길게 살아보려고 한다.


친구와 직원, 이웃에게는 더 친절해질 것이다. 경상도 사나이라서 천성적 한계는 있겠지만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더 친절하게 대하려고 한다. 나이가 있다 보니 내가 하는 말과 행동, 의사결정이 젊은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고 존경할만한 일인지도 따져보게 된다. 더 넓은 이해심과 관대함을 유지하고 더 많이 웃으려고 한다.


아버지가 아프시자 47살에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자주 난다. 가끔씩 사무치게 보고 싶을 때도 있다. 다시 어머니를 만나면 나는 어떤 얘기를 할까? 그냥 아무 말 없이 어머니를 꼭 안아드리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왜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안아주지 않고 있는 걸까? 문득 깨달았다.


새해에는 아내도, 아들도 강아지도 더 많이 안아줄 것이다. 가까운 지인들과도 손에 힘을 꾹 줘서 악수를 나누고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신뢰 가득한 표정으로 지지하고 응원해 줄 것이다. 그들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유한한 인생을 타인의 눈치를 보며 가짜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낭비할 순 없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곳, 나에게 가치 있는 곳에 내 시간을 쓰며, 2026년 한 해를 힘차게 시작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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