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와 P가 만나면 벌어지는 일
2월의 금요일 저녁, 고든 램지의 호텔 헬Hotel Hell을 보던 중 화면에 비친 정원을 본 A가 말했다.
-나는 너랑 저렇게 멋진 정원을 가진 집을 캐나다에 갖고 싶어.
꽤나 귀여운 말이라고 생각하며 나도 대답했다. 나중에 캐나다 꼭 가자고.
기초 한국어를 겨우 뗀 A는 자주 쓰는 한국말 중 하나를 골라 받아쳤다. "이따가?????"
이따가 캐나다를 어떻게 가냐며 푸스스 웃어버리는 나에게 A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진짜 가면 된다고 말한다. 갑자기 캐나다를 어떻게 가 !
전말은 이렇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대학교 수업도 거의 온라인일 거니까 어디서 듣던 상관이 없고(굳이 한국에 있을 필요가 없고), 이미 지불한 기숙사 비용을 환불받으면 캐나다에서 적어도 3달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오.. 생각보다 그럴 듯한데?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캐나다 세 달 살기를 하자는 제안에 덥석 알겠다고 할 순 없었다. 나는 취준도 해야 하고, 그리고 거기서 세 달 동안 뭘 한단 말인가. 약간 아찔해진 나는 일단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봤다. 솔직히 A는 어차피 타국에 있고, 사실 시간과 돈만 받쳐준다면, 그리고 자기가 가고 싶다면 내가 막을 이유도 A가 가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A가 한국에 있는 이유가 전적으로 '나'라는 사람 때문이기에 내가 가지 못하면 A도 가지 못한다.
어쨌거나 우리 둘 다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여러 가지를 따져본 결과, 캐나다에서의 세 달 살기는 다행스럽게도 무산이 됐다. 일단 기숙사가 100% 환불을 해줄지 알 수 없었고(문의를 남기긴 했다. 금요일 밤이라서 소통이 안됐을 뿐) 우리는 캐나다에서 운전을 할 수 없으며 (북미는 꽤 클 것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이거도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한국과 캐나다의 시차는 꽤 크기 때문에 A가 온라인 수업을 듣더라도 매우 힘들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나라에 가면 되잖아?
그렇게 이후 처음 언급된 나라는 베트남이었다. A가 늘 나와 함께 베트남에 가고 싶다고 말해왔기 때문에 그다지 놀랍진 않았다. 그런데 베트남은 현재 코로나로 인해 자가격리를 해야 하고 어행 목적의 입국은 불가하고.. 어쩌구 저쩌구.. 베트남에 입국하기는 꽤나 복잡하고 어려운 듯했다. 그렇게, 국적이 다른 우리 둘 모두가 입국이 가능한 나라를 찾는 과정에서 어쨌거나 다른 나라에서 세 달 살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하기엔 무리일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그냥 짧은(?) 여행을 가기로 했다.
백신 접종 완료자일 경우 자가격리가 필요 없으며, 영국과 한국 국적으로 현재 여행 목적의 방문이 가능한 나라로.
그렇게 어쩌다 보니, 캄보디아로.
동남아에 가본 적도, 딱히 그곳에 대한 이렇다 할 로망도 없었던 나는 A가 부모님께 허락을 받으려 전화를 하는 동안 조금 얼얼한 머리를 만지작 거리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도 되나? 안될 것도 없다. 수중에 모아둔 돈을 아주 많이 써야 하지만... (거의 다..)
-코로나는? 우리가 캄보디아로 결정했을 때 캄보디아의 일일 코로나 확진자 수는 100명이 안됐다. 한국보다 코로나 상황은 좋다는 거다.
좀 쓸데없는 걱정들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근손실 오면 어쩌지? 헬스장은? 헬스장은 ... 20일 연기신청을 해야 한다. 열심히 운동하고 있는데 다 까먹으면 억울하니까 중간중간 운동할 기회를 잡아야지....... 맨몸 투혼
-벌레는? 모기는? 더위는? 너무 더러우면 어떡하지...... 난 더러운 거 못 참는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떡할래? 너는 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