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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켠서 Feb 18. 2022

가자, 여행

어쩌면 심리치료


솔직히 늘 즉흥적인 우리라도 이러다가 말겠지 싶었는데 A는 100% 진심이었다. 우리는 즉흥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둘 다 추진력이라고 해야 하나, 목표가 생기면 밀어붙이는 성격이 똑 닮은지라 이번에 정말 캄보디아에 가겠구나-하는 예감이 들었다. 중요한 건 내가 가고 싶냐는 거다.


처음엔 목적지가 그닥 내키지 않았다. 캄보디아라니... 주위에 가봤다는 사람이 없어 정말 생소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베트남이라면 몰라. 캄보디아에서는 사람들이 뭘 먹는지도, 어떻게 인사하는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낯선 곳으로 달랑 둘이서 떠나도 될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말 가고 싶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인 걸까, 목적지는 상관없는 걸까, 나도 모르겠다. 여행이 그리운 건지, 그냥 도망치고 싶은 내 변명인 건지, 그것도 모르겠고. 그래도 이젠 말로만 말고 진짜 떠나고 싶다. 이 도시가 너무 물려서 이따금 머리가 핑핑 돌았다. 서울이 싫다거나 서울에 질려버렸다는 말을 한 백번쯤 하다 보면 스무 살에 처음 서울에 정착하면서 느꼈던 설렘이 전생처럼 느껴진다. 고작 삼 년 전까지도 신촌에 살고 있다는 게 그냥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는데. 지금도 이따금 그 감정을 곱씹긴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곳의 내가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것에 불만을 품고 그걸 밖으로 내뿜는 존재가 된 것 같아 더 싫었다. 예전의 나는 이렇지 않았는데.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내가 살아있음에 자주 감사해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생생히 기억하는데. 그래서 나는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면서 곧잘 슬퍼했고, 함께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A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다.


원래 크리스마스를 가족들과 보내려 영국에 가려했던 A는 지난 12월, 오미크론 변종 바이러스 때문에 한국 입국 시 백신 접종 완료 자임에도 다시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애가 얼마나 가족들과 가까운지, 얼마나 가족들과 친구들을 보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우리가 만나는 동안 단 한 번도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초를 함께 보내지 못했다는 것과 이번에도 그럴 거란 사실에 심통이 났다. A의 종강이 다가오던 어느 날, 그와 전화를 하는데 A가 물었다.


-너는 내가 안 갔으면 좋겠어?

-당연히 안 갔으면 좋겠지.

-왜?

-그야 한 번도 같이 크리스마스나 연말 연초를 보낸 적 없으니까?

솔직하게 대답한 나에게 A는 뜸조차 들이지 않고 굉장히 쿨하게 대답했다.

-그럼 안 갈게. 영국.


얘는 늘 이런 식이고, 그래서 나를 너무 놀라게 한다.


황급히 나 때문에 그렇게 결정하는 거라면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덧붙이는 나에게 A는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고민하고 있던 문제인데 내가 원한다면 그냥 한국에 남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이 문제로 일주일을 고민했다는 사실을 잊고는 '딱 그 정도로만 가고 싶었나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곤 이 사람이 지금 여기 남아있는 이유가 오로지 나 때문이라는 걸 잊어버렸다.


친구들도 방학을 맞아 다들 각자 본국으로 돌아가버리고 나니 A가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거의 나뿐이었다. (아니면 내 친구들...) 우리가 캄보디아로 여행을 가자고 이야기한 지 하루쯤 지났을까, 나는 그날도 수시로 바뀌는 감정들 속에서 떨고 있었다. 그리고 A가 입을 뗐다. 내가 힘든 걸 보는 게 아프다고 했다.


-내가 여기 남기로 한 건 정말 딱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였는데, 너는 내가 여기 있어도 딱히 행복하지 않아 보여서 그게 너무 힘들어. 나는 요즘 너무 외롭고, 슬퍼. 내가 가족들을 보러 가지 않은 거... 그거 정말 큰 결심이었어.


이 말을 하는 A를 보는데 그가 정말 슬퍼 보였다.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내가 아파하고 슬퍼할 때마다 A는 자기도 너무 슬프다고 했다. 나는 그저 나를 달래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난달엔 걔도 한번 울었다. 원체 잘 우는 애가 아니라서 놀랐었지만 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A의 감정까지 봐줄 여유가 없었나 보다.

그런데 며칠 전 저렇게 말하는 A를 바라보면서, 이해했다. 공유했다. 미안했다.


나에게는 이 여행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어쩌면 변명일지도 모르고 도망일 수도 있는 이 여행이 가고 싶다. 얼마 전 맡게 된 일도 있고 코시국 여행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더욱 많기에 이제부터 아주 바쁠 것이다. 엉덩이를 붙이고 당장 내일부터 뭐라도 하겠다고 다짐하는 게 고장난 나를 고쳐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냥 최소한 행복이라도 하기 위해서.


그리고 뭐 변명이면 어떻고 도망이면 어ㄸㅐ... ^^

어차피 지금 맡은 일은 할당된 일을 제대로 하고, 제때 보내드리면 되는 거니까 잘 해내기만 하면 된다.

가고 싶고, 갈 수 있는데 왜 가면 안 되는데요?


엄마와의 전화에서 엄마가 이런 말을 해줬다.

-엄마도 이십 대 땐 불안했어.

안정적인 직장도, 결혼을 당연하게 생각할 만큼 오래 만난 연인도 있었지만, 이십 대 땐 그냥 불안했어, 엄마도.


그러니까 걱정이 많은 것도, 불안한 것도, 커리어를 위해 뭐 하나 선택할 때마다 오래 고민하는 것도, 다 괜찮다.

사실 이것도 다 아는데 그냥 힘든 거지. 불안한 게 싫은 거지.


A가 그날 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대답을 생각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러려면 나부터 행복해야 한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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