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워크만 한가득
코로나 시국이라고 말하기에도 너무나 길어지고 있는 이 팬데믹 속에서 해외여행을 떠나자니 준비해야 할 서류가 꽤나 많았다. 준비할 것들은 너무 많은데 일정을 너무 타이트하게 잡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생각해보면 약 2주나 시간이 있었다.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캄보디아에 입국할 때 필요한 서류들이다. 일단 캄보디아는 PCR 테스트 음성 확인서(영문)와 백신 접종증명서(영문)가 있으면 자가격리를 면제해주고 있다. 우리가 캄보디아행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도 자가격리 없이 해외여행이 가능한 동남아 국가였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증명서를 영문으로 뽑으려고 해당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공인인증서가 필요했다. 공인인증서라니, 진짜 귀찮게 군다.
나는 공인인증서를 사용할 일이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해서 스마트폰으로 어플을 다운 받아 월 990원 이용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인증서를 쓰자니 너무 번거롭고 귀찮았다. 차라리 보건소에 직접 방문하는 게 훨씬 덜 번거롭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얼마 전 한국에서 부스터 샷을 맞은 A의 백신 증명서를 받으려면 보건소에 직접 방문해야 하기에 함께 서대문구 보건소를 방문했다. 영문으로 된 백신 증명서 출력본을 받으러 왔다고 하면 된다. 이건 혹시 모르니까 두장 정도 복사본을 가져가야지.
그리고 또 중요한 서류는 캄보디아 입국 비자다. 여행비자를 꼭 발급받고 가야 하는 나라 중 하나인데, e-Visa라는 이름만큼이나 인터넷으로도 쉽게 신청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여행비자는 최대 한 달간 캄보디아에 여행 목적으로 체류가 가능한 비자다. 입국 당일부터 한 달이기에 신청은 미리 해도 된다. 대신 만료기한은 승인 날짜로부터 세 달이다. 비자를 신청할 때에는 캄보디아 내 주소를 적게 되는데, 이 주소를 적어야 해서 우리도 부랴부랴 프놈펜에서 머물 숙소를 예약했다. 에어비엔비를 통해 호텔을 예약했는데 21일부터 24일 체크아웃까지 3박 4일 가격이 두 명 합쳐서 총 44파운드 밖에 안됐다. 근데 복층이라 거실, 부엌이랑 침실이 분리되어 있고 세탁기, 주방, 식탁, 티테이블 다 있어......! 주방도 주전자, 전자레인지, 식기구와 냉장고 등 풀 구성의 주방이었다. 게다가 화장실도 샤워실과 볼일 보는 곳이 분리되어 있어... 이런 디테일 아주 좋아
에어비앤비가 좋은 점은 호스트/호텔이랑 바로 다이렉트 메세지를 할 수 있다는 점인데, 다른 호텔 앱들보다 뭔가 더 메세지가 빠르게 오가는 느낌이 든다. 내가 에어비앤비 주식이 있어서 하는 소리는 아니고
우리도 비자 신청 시 적어야 하는 휴대폰 번호, 호텔 전화번호 등등 궁금한 건 그냥 다 메세지로 와다다다 물어봤다.
비자는 한 이틀 만에 나왔던 것 같다. 별문제 없이 당연히 승인되겠거니 했는데 A가 너무 걱정해서 웃겼다. 비자 신청할 때 신청 목적을 적는 란이 있는데, 나는 뭐 친구한테 말하듯 "러블리한 캄보디아 여행을 갑니다~" 이렇게 썼다. A한테 넌 뭐라고 썼냐고 물었더니 그냥 심플하게 '여행'이라고 적었대서 내가 너무 격식 없이 썼나 좀 걱정하기는 했다. 이러나저러나 캄보디아어로 적는 것도 아니었는데 뜻만 통하면 되지 뭐.
다음으로 준비해야 했던 서류는 나 말고 A에게 필요한 서류였다. A의 지금 비자는 Single-entry visa라서 재입국 허가(Re-entry permit)를 받아야 한국으로 다시 입국이 가능하다. 딱히 빡빡하게 허가 심사를 할 것 같진 않았지만, 그냥 빠르게 처리해서 덜 귀찮게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가 도와준 건 딱히 없지만 A는 자기가 늘 이런 서류에 엄청난 걱정을 하는 사람인만큼 바로 후다닥 준비해서 끝내버리더라.
나는 필요한 요건만 잘 충족시킨다면 단순 서류 작업이 한국에서 얼마나 빠르고 순탄하게 처리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서류에 대한 걱정은 그닥...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이건 그냥 내가 얼마나 게으른가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튼 A는 필요한 동의서 몇 장과 재입국 신청서를 보낸 후 무탈하게 허가를 받았고 나는 또 '거 봐, 내가 걱정할 필요 없댔지'라고 덧붙였다. 아, 그리고 이건 무료였다.
비싼 건 따로 있었다. 코시국 해외여행이 다 그렇듯이 캄보디아 입국을 위해 PCR 테스트 음성 확인서를 영문으로 출력해 가야 한다. 비싸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종이 한 장을 위해 십만 원이 넘는 돈을 내려니까 약간 눈물이... 나더라...?
나는 원래 대충 머릿속에서 계획의 큰 틀만 추상적으로 짜두는 편이라 그때 가서 전날이나 이틀 전쯤 병원에 전화 돌려보지 뭐, 라는 생각으로 있었는데 역시나 이런 면에 있어선 나보다 준비성이 철저한 A가 미리 예약해두자고 해서 서울에서 영문 PCR 확인서를 받을 수 있는 곳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일단 영문으로 음성 확인서가 필요한 사람들은 모두 해외로 출국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정보가 많지는 않았다. 바로 앞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서도 영문으로 음성 확인서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비싸......
검색하는 이유는 순전히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확인서를 받고 싶어서였기에 계속 인터넷을 뒤져보았지만 2020년이나 작년 정보가 더 많아 확인해보면 현재는 쓸 수 없는 방법이거나 그때보다 가격이 더 오른 병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월요일 저녁 비행기로 출국하기 때문에 일요일이나 토요일에 검사를 해야 했는데 그래서 더 애매했다. 나름 저렴한 편에 속하는 서울특별시립어린이병원은 주말엔 PCR 검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해외출국용 코로나 검사는 오는 2022년 2월 21일 월요일부터 중단한다는 공지를 보곤, 한 끗 차이로 검사받을 수 있겠다-싶었는데.
근데 또 이걸 내가 검색하고 알아보고 있으니까 짜증이 나는 거다. 남자친구가 한국어에 서툰 게 그애 잘못도 아닌데. 그날 유난히 피곤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런 걸 찾아보는 것도 내가 해야 한다는 거에 심통이 났다. 짜증이 잔뜩 오른 내 얼굴을 본 A가 미안하다며 주섬주섬 영어로 구글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A가 찾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고, 외국인들은 대부분 인천공항에서 출국용 PCR 검사를 받고 있었다.
우리로선 이렇다 할 괜찮은 병원을 못 찾았기에 그냥 공항에서 검사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와 비가입자의 PCR 검사 비용이 약 5만 원 정도 차이가 나는 거다. 어차피 한국에 오면서 영국에서 따로 유학용 건강보험을 들었던 A는 얼마 전 직접 국민건강보험공단 외국인 민원센터에 방문해 보험을 해지했었고 (이중으로 돈을 낼 필요는 없으니-) 따라서 비가입자였다.
남자친구는 열심히 알아본 나에게 미안했는지 그냥 공항에서 검사를 받자고 했지만 짜증을 내는 나와 달리 다정한 태도를 보이는 그에게 괜히 미안해진 나는 인터넷을 좀 더 찾아보기로 했다.
결국 !
어떻게 찾았는지... 약 이주 전 프랑스로 출국 준비를 한 분의 블로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PCR 영문증명서...진짜 골치 아프다. 당연한 건 맞지만 값비싼 검사비용 때문에 영어로 그저 pain in the ass 그 자체다.
찾아낸 곳은 씨젠의료재단인데, 검사비용도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 11만 원으로 동일하고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시간으로 예약까지 사이트에서 미리 해둘 수 있다. 증명서를 처음부터 영문으로 준다고 하니 편리하고. 그리고 여권을 꼭 가지고 지참해야 한다! 결과는 5시간 후에 나오고 (검사 시간과 검사 결과 나오는 시간이 미리 홈페이지에 기재되어 있다) 메일로 전송해주시기에 프린트해가면 된다.
약 1-2만 원 아끼는 거지만 이 돈이면 캄보디아에서 더 알차게 쓸 수 있기에 최대한 아껴본다.
이렇게 코로나 시국과 비자 관련 서류는 준비가 다 됐다. 하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