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깃발은 목적을 만든다

태양은 가득히 (2/12)

by 달을보라니까

#2. 깃발은 목적을 만든다


리솦 프로젝트 소식은 업계 사람들 사이로 소리 없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연구의 상세 사항이나 실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다들 짐작만 할 뿐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좋은 결과를 낸 학교나 연구소는 마치 생일파티에 학급 전체를 초대하듯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관련 연구자들에게 초대장을 보내곤 했다. 큰 강당을 빌려서 며칠에 걸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모인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그들의 연구를 공유하는 동시에 검증받는 게 당연한 관행이었다. 그래서 누가 어떤 연구를 하고 결과가 어땠는지 서로가 잘 알고 있었고, 실험 결과는 소수점 끝자리까지 포함해서 모두 공유되었다. 최초 연구자들은 일정기간 동안 우선적으로 후속 연구를 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런 관행은 어떤 의미에서도 독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명예였고 나폴레옹의 명예가 자크루이 데이빗의 그림에 영원히 박제되듯, 학회에서 찍은 사진이 언젠가는 솔베이 회의 사진처럼 되기를 바라는 게 전부였다.




세토내해(瀬戸内海)의 작은 고기잡이 마을에 유카와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님은 유카와가 자신들의 고기잡이 배를 물려받을 것이고, 나중에는 유카와의 자식들이 다시 그 배를 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을의 모든 집들이 비슷했다. 아이들은 비슷한 놀이를 하며 비슷한 심부름과 집안일을 하며 살았다. 유카와의 배다른 삼 형제도 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첫째와 둘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까지 차례로 군대에 징집되어 태평양 어딘가의 전장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집안 사정이 달라졌다. 갑자기 세 아들을 모두 잃은 부모는 전쟁이 끝난 얼마 후 어딘가 둘째 아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집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어머니는 죽고 간신히 살아남은 아버지는 1년 넘게 다케하라 부근의 어디선가 치료와 회복을 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유카와의 조부모는 아들마저 죽었다며 슬퍼하고 있다가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오자 한없이 기뻤지만 아들이 데리고 온 젊은 여자가 마땅치 않았다. 비록 그 젊은 여자가 죽을 위기에 있던 아들을 구해서 거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보살폈다는 것이 고맙기는 했지만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대해 당최 말하려고 하지 않는 점이 못내 이상하고 찜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들의 완강한 고집으로 그 여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유카와는 전쟁이 끝난 후 마을에서 태어난 첫 아이였다. 마을 사람들은 마침내 비극이 끝났다고 기뻐했다. 아들 셋을 잃었던 유카와 아버지는 오십이 다 되어 얻은 아들을 애지중지했다. 하지만 전쟁으로 모두가 가난해진 일본에서 아무리 고기를 잡아도 팔리지 않아, 온 가족이 굶주리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 유카와의 어머니는 젖도 떼지 않은 유카와를 등에 업고 새벽에 밴또를 만들어 자전거에 싣고 시내로 갔다. 늦은 오후가 돼서야 아침에 가지고 나갔던 벤또 대신에 쌀과 고기 같은 식재료들을 싣고 돌아온 그녀에게 하나 남은 손주를 그렇게 함부로 데리고 나갔다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조부모는 역정을 냈다. 어른들의 꾸지람은 유카와의 아버지가 바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이어졌지만 유카와의 어머니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손을 모으고 서 있기만 했다. 죽어가던 자신을 살렸고 이제는 가족 모두를 살리려는 사람에게 대체 왜 그러냐고 유카와의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고서야 어른들은 방으로 들어갔고 유카와의 어머니는 유카와를 업고 가지고 온 식재료를 손질해서 더 많은 벤또를 만들었다.


얼마 후 벤또 숫자는 여자 혼자서 자전거로 나를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아침에 한 번 시내까지 날라주다가 나중에는 할머니와 유카와의 아버지까지 나서서 벤또를 만들고 하루에도 여러 번 실어 나르게 되었다.




추수 감사절을 맞은 보스톤 공항은 떠나고 도착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유난히 일찍 시작된 추위와 눈으로 바깥은 벌써 크리스마스 느낌이 났다. 눈보라로 인해 전광판에 연신 결항표시가 뜨자 사람들은 항공기 사정으로 추수감사절 휴가를 망칠까 봐 노심초사하며 우왕좌왕했다. 유카와 교수는 급할 이유가 없었지만 자칫 이 많은 사람이 이대로 공항에 며칠간 고립되면 어찌 될까 싶었다. 일정을 며칠 연기하는 게 어떨까 생각하고 있을 때 그의 허리춤에 있는 블랙베리가 울렸다.


"빠른 티켓으로 바꿔 줄 수 있대요. 날씨 더 나빠지기 전에 비행기 표 바꿔서 얼른 출발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 일정에 맞춰서 호텔과 비행기를 예매해 준 브라운이었다. 유카와가 요청한 대로 예약을 마쳤으니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브라운의 책임이 아닌 만큼, 이제부터 추수감사절 휴일을 즐겨도 될 텐데 악천후로 공항이 폐쇄될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나오자 브라운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온 사방을 뒤져서 유카와 교수를 위한 표를 구해준 것이었다.


브라운은 비서 일만 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유카와는 서둘러 짐을 챙겨 티켓 오피스로 이동하면서 매점에서 초콜릿 바 몇 개와 사탕 두 봉지를 사서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다행히 비행기는 시간에 맞춰서 눈보라를 뚷고 출발했지만 악천후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이 많았는지 비행기는 남는 좌석이 하나도 없이 꽉 찬 만원이었다. 항공사 직원이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몇 시간만 참으면 되니까 오늘같이 추운 날에는 운항고도의 공기밀도가 어떻게 달라지고 그에 따라서 도착시간이 어떻게 될까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 보며 눈을 감았다.


몸이 붕 뜰 정도의 갑작스러운 터뷸런스에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 여기저기에서 오버헤드 빈에 넣어두었던 짐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있던 승객들은 공중에 떴다가 자리에 떨어졌고 몇몇 승객은 통로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비행기 안은 난장판이 되어 비명 소리로 가득했고 가까운 공항으로 비상 착륙할 예정이니 안전벨트를 매라는 기장의 방송이 반복됐다. 기체가 계속 좌우로 흔들리고 있어서 기내 승무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승객들을 향해 자리에 앉으라고 소리만 질러댔다.


다행히 비행기는 유타 사막 한가운데 있는 행크스빌 Hanksville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말이 공항이지 관제탑도 상주직원도 없는 농업이나 관광용 경비행기를 위한 공항이었다. 200여 명을 태운 보잉 737 맥스가 길이가 1.5km도 안 되는 활주로에 무사히 내린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30분만 늦었다면 조종사는 유도 장치는커녕 조명도 하나 없는 이 활주로를 찾지 못했을 테고, 그랬다면 비행기는 더 심각한 위험에 처했을 수도 있었다.


승객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들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고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창고로 보이는 건물 하나밖에 없는 작은 공항에 승객들을 2층 높이가 넘는 비행기에서 안전하게 내려줄 스텝 카가 있을 턱이 없었다.


지역 경찰들과 소방차가 도착했지만 그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서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착륙 다섯 시간 만에 비상탈출용 슬라이드를 펼쳐서 승객 한 명씩 차례로 비행기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마을에는 갑자기 들이닥친 200여 명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다행히 소방대장의 친구인 식당 주인 마이클이 식당을 열어주었고, 노약자 및 가족들을 제외한 백여 명은 그곳에서 밤을 새기로 했다.


마이클은 좋은 사람이었다. 식당 문을 열고 사람들에게 물과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 주고 나서 바로 주방 옆에 있는 큰 냉장고에서 빵과 고기 페티 같은 재료들을 모두 끄집어내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UIUC 셔츠를 입은 대학생과 다른 몇 사람이 일어나서 마이클을 도와 페티를 뒤집고 빵을 데우고 커피를 내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식당 안을 정리했고 몇몇은 식당 앞에 모닥불을 피웠다. 잠시 후 모닥불 주변에 음식을 놓을 테이블들을 준비했다.


음식은 잘해야 삼십 인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들 서로에게 양보하고 나누어 먹었고, 그날 마이클의 식당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배가 불렀다. 낯선 이들의 호의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방도 지갑도 없이 낯선 곳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비행기에 두고 온 짐은 언제 받을 수 있을까요? 지갑이고 뭐고 그 속에 다 들었는데 난감하네요."


브라운에게 비행기가 긴급착륙을 했다는 사실과 오늘과 내일 미팅 스케줄을 연기해 달라며 블랙베리 자판을 꼭꼭 누르고 있던 유카와 옆에서 누군가 말했다. 페티를 굽던 대학생이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200명의 짐이 뒤죽박죽 되어 있어서 다 꺼내고 본인확인하고 돌려주려면 시간이 걸릴 거예요. 최악의 경우에는 추수감사절을 여기서 보내게 될 수도 있고요."


"저 비행기 다시 타서 자기 자리에 앉아서 가면 간단하게 해결될 텐데 왜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아까 우리가 타고 내려왔던 비상탈출 슬라이드는 텐트처럼 접었다가 다시 쓰는 게 아니라서 떼어 내고 수리해야 해요. 그리고 애초에 긴급착륙을 하게 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한 저 비행기는 운항하지 못할 겁니다."


"난감하군요. 그래도 이런 경험은 평생 없을 거예요. 처음 보는 사람이 친절을 베풀고 누가 지휘하지 않아도 다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부족한 음식으로 모두가 배불러지는 일이 미국에서 일어나다니 믿을 수 없어요."


문득 유카와는 출발하기 전에 공항 매점에서 샀던 초콜릿 에너지 바와 사탕이 생각났다. 벗어두었던 자켓의 속주머니에서 에너지 바와 사탕을 꺼내서 모닥불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똑 같이 나눠주었다. 건너편에 조용히 있던 동양인 여학생이 말했다.


"혼자 한적한 곳에서 드셨어도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마치 생명을 나눠주시는 것 같아요."


모닥불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 초년생들이었다. 유카와가 물리학 교수라는 걸 알게 되자 몇몇이 자신의 전공과 향후 전망에 대해 물었고 그렇게 시작한 대화는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되었다.


국비 장학생으로 보스톤으로 왔다는 어느 한국 학생은 미국에서 배운 것으로 고국의 과학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을 때 유카와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 온 가장 큰 공동체가 국가이기 때문에 우리는 국가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현재 시점의 인류 정신에 그어진 상한선은 분명하지만 오늘 여기서 소유라는 틀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그 상한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항상 기억하라고 말했다.


항공사가 마련해 준 대체비행기를 타고 LA에 도착해서 브라운이 준비해 둔 승용차에 오르려 할 때 그 여학생이 유카와에게 뛰어와 인사하며 말했다.


"어제 말씀 정말 너무 잘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지금까지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어요. 다음 학기에 꼭 교수님 과목 수강 할게요. 제 이름은 첸 메이링이에요."




유카와가 해야 하는 일은 에너지를 장기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지금 당장 미국이 해야 하는 일을 정리해서 미국 대통령이 추수감사절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볼 수 있도록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도착이 늦어진 만큼 LA에서 일정은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소문만 무성하던 애플의 아이폰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판매를 시작했고 앞으로 많은 기기들이 모바일 형태로 전환되면서 엄청난 계산을 필요로 하는 연산장치가 온 사방에 깔리게 되면 지수함수 형태로 증가할 단위 시간당 필요한 에너지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미국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학계와 산업계는 물론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자료와 업데이트를 받았다.


포인트는 명확했다. 얼마 전까지 소니 휴대폰은 한 번 충전하면 일주일은 거뜬히 사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 허리에 차고 있는 블랙베리 볼트는 2~3일에 한 번은 충전기에 꽂아 줘야 했다. 이번에 행크스 빌의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았던 20대들은 모두 지난 9월에 애플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아이폰을 가지고 있었지만 배터리가 남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기를 사용하는 방법과 용도 그리고 빈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앞으로 모든 사람이 배터리가 하루를 못 넘기는 강력한 휴대용 컴퓨터를 가지고 다닐 것이고, 거기에 연결된 서버와 다른 인프라는 엄청난 에너지를 24시간 내내 잡아먹을 것이었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전력 공급은 모두의 문제였고 모든 국가가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문제는 거의 사안이 너무 정치화되었다는 것이었다. 정치화는 미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이 잠재적 경쟁자로 보고 있는 중국, 한국, 일본 모두에게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정보의 유통속도가 빨라지면서 사회적 가치를 배분이 필요한 사안들이 종류와 긴급성 여부와 무관하게 특정 집단의 이해에 따라 해석되고 심지어 조작되는 경향이 급속히 가속화되었다. 비밀유지와 긴급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항도 동네 하수도 공사를 위한 예산을 다루는 것처럼 처리되고 있었다. 게다가 대부분 국가들이 민주적 의사결정 체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 예외적인 국가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일에 특별한 방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동안 수집한 정보와 며칠간 만난 휴민트들의 첩보를 종합하면 경쟁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원자력과 태양광을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무의미한 정보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둘 다 특별한 방식으로 고안되고 운용될 것이고 아직 기술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용융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소형 원자로 (MSR)은 안전성과 설치의 유연성 그리고 친환경성에서 강점이 있었다. 비록 아직까지는 실용화 모델이 나오지 않았으나 기술갭은 극복가능한 정도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현재는 미국이 기술 우위를 가지고 있으나 다른 나라들과의 차이가 크지 않으며 동시에 다양한 방식으로 MSR이 구현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대통령에게 지금 바로 특별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보고 할 필요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반면 태양광 발전은 상황이 달랐다. 중국이 저궤도에 태양광 발전소를 세울 계획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경쟁은 생산된 전력을 지구로 보내는 요율 높은 기술을 누가 먼저 확보하는가였다. 아직 까지는 실용화된 기술이 없지만, 돌파구만 찾는다면 바로 그 순간 바로 기술한계점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고, 곧바로 대체불가능한 글로벌 희소자원인 저궤도를 자신들의 우주태양광패널로 채워버릴 것이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훨씬 저렴하고 지속적인 에너지는 무기로 사용될 것이었다. 주도권을 잡지 못한 국가는 천천히 말라죽거나 종속될 수밖에 없다.


현존하고 명백한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저궤도 우주태양광발전은 미국이 이미 한참 전에 포기, 아니 폐기한 아이템이었다. 유카와 자신이 직접 당사자로 관련되어 있었다. 나사의 비밀프로젝트로 10여 년간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원격지 전력 전송에 꽤 많은 성취를 이뤘었다. 하지만 우연히 정치권으로 프로젝트 개요와 예산 정보가 흘러 들어가면서 난장판이 됐다.


장기적인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를 지지하고 지원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녹색당이 뜻밖에도 태양광 패널 제작과 유지에서 발생될 환경오염을 문제 삼았고, 곧이어 민주당이 가세하면서 각 정파들이 제 입맛대로 해석한 그럴듯하지만 틀리고 잘못된 정보가 넘쳐났다.


가짜뉴스를 바로잡으려 노력했으나 한 번 올라간 깃발은 내려오지 않았다. 유카와 교수 역시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여러 번 전국 방송에도 나갔으나 사회자는 교묘하게 유카와 교수의 말을 자르거나 막고 다른 패널의 주장을 옹호했다. 언론은 진실을 밝히는데 관심이 없었다. 언론은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 위해 유카와 교수를 바보취급했다. 번번이 좌절했지만 누군가는 진실을 말해야 했기 때문에 언론의 취재 요청에 계속 응했다.


그러던 중 전국에 생중계된 하원 청문회에 소환되었던 샐린 박사가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대시보드에 있던 권총을 꺼내서 자신의 머리를 쏴 버렸다. 격분해서 하원 의장 사무실로 달려갔던 동료 과학자들이 모조리 현장에서 구속기소되고 심지어 일부는 폭력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우주태양광발전은 과학계의 터부가 되었다. 유카와 교수 역시 체포되었고 테뉴어를 박탈당하고 강제 추방의 위기에 몰렸다가 간신히 교수직에 복귀할 수 있었다.


유카와 교수는 자유와 민주의 나라 미국에서 당한 가장 비미국적인 폭력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연구를 꺼렸고, 학생들 강의를 준비할 때면 오랫동안 써왔던 붉은색 파카 만년필을 꺼내서 강의 시간에 할 말을 써보는 습관이 생겼다.


몇 년 후에 이 모든 것이 태양광패널 분야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인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부 관련자가 사과하기도 했지만 비정상은 결국 정상이 되었다. 그리고 깃발은 스스로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계속 만들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