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가득히 (8/12)
#8. 무게를 결정하는 것은 관계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신문과 방송은 이솦 연구소와 미령에 대해 완전히 잊은 것 같았다. 미워할 다른 대상을 찾은 시위대도 새로운 깃발을 따라 사라졌다. 그래도 며칠 더 지켜보자는 연구소장의 의견에 따라 미령은 계속 재택근무를 했고 박은 매일 미령의 집으로 퇴근했다가 아침 일찍 자기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연구소로 출근했다.
어느 날 아침, 박을 배웅하고 현관문을 닫는 미령의 눈에 갑자기 형광색 글씨가 나타났다. 문 손잡이를 잡고 있는 정도로 미령이 가까이 있지 않았다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았지만 뚜렷하고 선명한 글씨였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돌아보니 미령의 머리 위에 작은 곤충 같은 것이 떠 있었다. 드론이었다.
"집으로 돌아와라. 건조대에 하얀 양말 세 짝을 널어놓으면 데리러 가마. 드론이 나가게 문을 잠깐 열었다 닫으렴. 령령맘"
엄마였다. 어릴 적 미령과 동생 귀령이 자고 있을 때 출근하는 일이 잦던 미령의 엄마는 종종 추우니까 따뜻한 옷 입어라 같은 메모를 남겼고 마지막에 령령맘이라 적곤 했다. 감시와 감청 그리고 CCTV를 모두 회피해서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다니, 어쩌면 엄마는 미령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과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문을 열었다 닫았다.
어디선가 미령을 감시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벌레가 들어와서 문을 열었다 다시 닫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초소형 드론의 배터리 용량과 다른 각도에 있는 사람은 볼 수 없는 정확한 위치에 메시지가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보낸 사람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감사함과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얼마 많은 눈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 몸서리가 쳐졌다.
미령은 중국 언론을 검색했다. 예상대로 인민망과 신화통신 같은 메이저 언론에는 자신에 대한 기사가 없었지만 웨이보와 틱톡에는 드문드문 한국에서 간첩 취급 당하고 있는 중국인이라는 멘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통제하지 않았다면 중국인이 외국에서 억압받고 있다는 뉴스가 모든 언론을 뒤덮을 텐데 이 정도로 기사가 없는 것을 보면 엄마가 아직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그렇지만 언제든 엄마의 정적들은 지금 상황을 이용해서 엄마의 딸이 남자에 미쳐서 조국을 배신하고 한국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프레임을 밀어붙일 수 있다.
엄마에게 회신해야 했다. 미령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면 엄마는 계속 접촉을 시도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보낼 것이기 때문에 빨리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혹시라도 엄마가 보낸 사람들이 자칫 한국 경찰이나 정보기관과 충돌하기라도 하면 엄마는 물론 가족 모두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도 하나하나 뒤져 보는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지 않을 그런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미령은 집전화를 들었다
"엄마? 잘 지내셨어요? 너무 오랜만에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요즘 제가 하는 일에 문제가 생겨서 좀 힘들었어요.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잘 견디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제가 이렇게 도망가면 지금까지 제가 해 온 일들이 모두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거예요. 그리고 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질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잘 해낼 수 있어요. 항상 제 생각하고 계신 거 알아요. 저도 엄마, 아빠 그리고 귀령이 보고 싶어요. 귀령이 결혼식에는 꼭 갈게요."
미령의 엄마는 안도했다. 미령이 자신은 물론 도청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자신의 상태와 의사를 밝힌 것은 가장 안전하고 확실할 뿐 아니라 현명한 방법이었다. 미령이 어설프게 이메일이나 메신저에 암호나 숨겨진 의미를 담아서 연락했다면 오해를 불러왔을 테고 잘못되면 간첩협의까지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건강상태와 심리상태가 양호하다는 사실까지 전달할 수 있었으니 더 그랬다.
"이번에 견학 오는 중국 과학고 학생들의 인솔 교사가 천박사의 동생이랍니다. 개인적으로는 환영입니다만 공연히 말 나오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 세대가 이렇게 대립한다고 해서 다음 세대까지 그런 정서를 물려주지는 않아야겠죠. 연구소가 힘들 때에도 학생들 견학 신청은 최대한 받았잖아요. 신청에 필요한 절차와 문서에 문제가 없으면 허용하도록 하시죠. 그리고 천박사에게 한 파트 설명을 해달라고 하시죠. 천박사와 동생분 모두 좋아할 겁니다."
미령의 동생 귀령은 과학교 교사였다. 부모의 보호망을 탈출한 미령과 달리 귀령은 부모의 근처를 벗어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학장으로 있는 대학을 다니며 무난히 물리학 박사과정을 마쳤을 때 귀령 인생에서 저지른 가장 혁명적인 반항은 부모가 권하는 자리를 마다하고 집과 멀리 떨어진 샹하이에 있는 과학고등학교에서 영재를 가르치는 일을 택한 것이었다.
귀령은 자신이 하는 일을 즐거워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의 수준이 학위를 받은 전문연구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깜짝 놀랄 만큼이라며 비록 가오카오(高考)에서 고득점을 받지 못할 수는 있어도 사회주의 중국의 예외로 특혜를 받는 만큼 장차 국가와 인류에게 큰 보답을 할 것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한동안 미뤄졌던 청문회가 속개되었다. 이번에도 미령은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청받았기에 이번에는 또 어떤 질의를 받을까 싶어 며칠 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지난 몇 주간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솦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높은 성과의 대부분이 지난 수년에 걸쳐 미령이 이룩한 것이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에 비록 국적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간의 공로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태도라는 여론이 형성되었고, 국회의원들은 어서 이 안건을 얼른 마무리하고 현재 진행 중인 대통령 선거를 위해 발로 뛰어야 하기 때문에 여론에 거스르기를 꺼려했다. 오히려 자신들이 이 프로젝트에 뭔가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숟가락을 얹고 싶어 했다.
국회의원들의 질문은 미령에게 쏠렸다. 예전처럼 공격적이거나 인신모독적이지는 않았지만 미령의 국적과 박과의 관계는 계속 도마에 올랐다. 그러던 중 청문회 기간 동안 줄곧 잠자코 있던 국회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요청했다.
"존경하는 동료 의원 여러분, 우리 모두는 지금 문제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달라진 여론과 대통령 선거라는 이벤트가 있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미래가 외국인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을 못 본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습니다. 천박사가 그동안 대한민국 과학계와 리솦 프로젝트에 기여한 커다란 공로 인정합니다. 지난 청문회에서 우리 의원들의 못난 질문들에 대해 천박사님께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비공개 청문회에서 나온 말들을 외부에 흘려서 천박사님과 리솦 프로젝트의 많은 분들께 상처를 주는 여론이 형성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합니다. 잘못된 판단이었고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이 문제를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나 곧 찬반양론으로 갈라진 국회의원들의 갑론을박이 계속되었고 누군가는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갑자기 과방위 위원장이 의사봉을 세게 내리치며 정숙을 요구하며 모든 증인들은 청문회장 밖으로 나갈 것을 요구했다.
"위원장입니다. 직권으로 안건을 상정하기에 앞서서 의원님들께 한 말씀드립니다. 지금 우리가 천박사에 대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는 국외추방입니다. 물론 범죄자도 아니고 많은 기여가 있었으니 강제추방이 아닌 외교적인 형식을 취하겠지만 결국은 국외로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박사는 어디로 갈 것 같습니까? 미국 아니면 중국입니다. 우리는 인재를 잃고 저들 손에는 한국을 따라오거나 추월할 무기가 쥐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다고 외국인에게 우리의 생명줄을 맡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 왜 우리가 우리 생명줄을 천박사에게 맡깁니까? 이 일은 천박사 혼자서 하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회사들이 모여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노력 끝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한국이 좋아서 여기서 살면서 일해서 모두에게 기여하겠다는 게 왜 그걸 우리가 나서서 적대시하고 쫓아내려고 합니까? 프로젝트 전체 예산이 100조에 육박합니다. 그리고 연인원 20만 명이 투입됩니다. 천박사가 원하는 것은 리솦 프로젝트가 성공하고 시간이 지나면 주변 나라는 물론 모든 인류가 깨끗하고 저렴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철부지 낙관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 철부지가 아무도 못하는 일을 이루어 냈습니다."
잠시 후 위원장은 밖으로 나갔던 증인들 모두를 다시 청문회장으로 들어오도록 하고 천박사에게 증언대에 오르라고 요청했다. 미령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천박사를 똑바로 바라보자 미령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천박사님, 그리고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주신 리솦 프로젝트 관계자 여러분께 과방위 위원장인 제가 전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대표해서 2회에 걸친 청문회 진행 과정에서 천박사님과 증인 여러분들께 상처를 주고 모욕한 언사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또한 비공개 청문회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내용을 외부로 전달해서 천박사님과 여러분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여론이 조성되도록 방관하거나 심지어 조장한 사실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깊은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부디 상처받은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증언대에 쓰러질 듯 서있던 미령은 어안이 벙벙했다. 뒷줄에 앉아있던 증인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고 곧이어 청문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박수 대열에 합류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위원장은 증인들의 실추된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비공개 회의록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언론에 공유하도록 간사에게 요청했다. 그리고 천박사와 악수를 나누며 늦었지만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환영하며 원하시는 만큼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내시며 더 많은 과학적 성취가 있기를 기원했다.
국회의원들이 미령과 연구소에 사과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프로젝트에 생기가 돌았다. 정치적 산법의 대상에서 벗어났다는 안도와 함께 몇 개월째 시작하지 못하고 멈춰 있는 리솦3 프로젝트가 곧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돌았다. 미령도 앞으로는 발사체 관련 협의가 좀 더 순조로울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다. 실제로 리솦3에서는 발사체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했다. 리솦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발사체를 보유하고 있는 모든 국가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조직 개편에서 대외협력팀의 인력보강이 시급합니다. 아시다시피 발사체를 가진 모든 국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미팅 요청을 하고 제안요청도 없었는데 제안서와 계획서를 들고 오고 있습니다. 자료요청이 하도 많아서 아예 자료를 편집해서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려놨습니다.
"정말 어려운 역할이에요. 예전에야 의전 잘하고 윗사람들 관혼상제 잘 챙기는 게 대외협력팀의 주 업무였지만 이제는 전문가가 이 일을 해야 하니까 외교 감각과 협상 능력을 가진 너드가 필요하다는 건데, 세상에 그런 너드가 흔합니까"
"천박사님이 이 포지션에 적격 아닐까요? 프로젝트 내용 잘 아시고, 스마트하시고 눈치 빠르시고요. 사실 리솦2부터 그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기는 한데, 직급상으로 너무 아래라서 천박사가 하려고 할까?"
"리솦개발단장은 박박사가 계속 이어서 할 테니, 발사체사업단장으로 천박사를 선임하고 천박사가 대외협력팀을 겸직하거나 아니면 아니면 아예 대외협력팀을 발사체사업단 아래로 보내는 방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리솦3에서 가장 큰 이슈는 발사체 관련 국제공조니까요."
첫눈에 미령의 능력을 알아봤던 과기부 장관은 적극적으로 미령을 박과 함께 프로젝트 전체를 책임지는 기둥으로 추천했다. 지난 인사이동에서 국가 안보 차원에서 미령을 한직으로 발령내면서 장관 자신도 무척 아쉬워했었기에 미령의 국적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자 미령이 더 큰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했다. 더구나 미령은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인 미국과 중국 모두에서 좋은 커넥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체 승진을 선호하는 발사체사업단 내부의 기류는 달랐다. 어디나 마찬가지듯 리솦도 조직의 생리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귀령은 학생들을 인솔해서 리솦 연구소를 견학하면서 프로젝트의 기술적 완성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중국이 거의 모든 종류의 상품을 대량생산하는데 전문화되어 있는 높은 생산효율성을 보이지만 10년이 넘도록 노동집약적인 생산 체제에 잔류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의 생산체제는 고도의 전문인력이 필요한 초정밀 설비와 전문 장치의 효율적인 생산단계로 넘어갔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중국에서 아이폰을 수 천만 대 만든다고 해도 중국에 남는 것은 조립기술일 뿐이고 수익의 대부분은 외국으로 이전되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태양광패널을 생산하는 중국이지만, 중국에서 생산되는 패널과 리솦 연구소에서 만들고 있는 태양광집적패널은 기술적으로 다른 차원이었다. 물론 향후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한국이 여전히 중국의 생산 라인을 이용할 것이지만 마찬가지로 핵심 기술은 중국에 남지 않을 터였다.
학생들은 태양광집적패널을 견학을 마치고 전송기술관으로 이동했다. 설명을 맡은 사람이 바로 귀령 자신의 친언니라고 소개하자 학생들은 우와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미령이 중국어로 우주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어떻게 지구에 전달되는지를 설명하자 학생들은 미령의 말에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
니콜라 테슬라가 개념화했던 원격 충전원리를 모형화한 체험관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의 휴대폰을 앞뒤로 움직이며 충전신호가 들어올 때마다 감탄하며 미령이 하는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니콜라 테슬라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이제 충전의 개념을 넘어서 원격지 무선 송전으로 발전되었으며, 여러 가능한 옵션들 중에서 왜 마이크로파가 가장 많이 쓰이는가에 대한 원리를 먼저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는 미령은 실제 리솦2에서 설계한 원격전송패널을 가져와서 보여주며 이론이 어떻게 쓰이며 실제 구현은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었다.
사실 고등학생들이 따라오기에는 너무 어려운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미령은 내심 걱정했으나 학생들이 설명을 따라올 뿐 아니라 좋은 질문들을 많이 해서 내심 놀랐다. 14억 중국인들 중에서 가장 똑똑한 영재들만 모아 놓은 학생들이다 보니 그럴 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 수준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눈을 반짝반짝하며 제일 앞에 따라오던 한 여학생이 미령에게 이 연구소에 있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일은 어떤 것이며, 지금까지 보여주고 설명해 준 것을 토대로 학교에 돌아가서 뭔가를 만들어보면 자신들이 감옥에 가게 되냐는 질문을 했다. 미령은 정말 좋은 질문이라 생각했다.
"여러분들이 오늘 듣고 본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론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연구원들이 그런 이론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주에 위성을 띄우고 태양광패널을 설치해서 전기를 만들어 지상으로 보내는 모든 과정에서 사용되는 무수한 이론들은 모두 책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책에도 나올 겁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 이론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모두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될 사람들이니 이것만은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어떤 것도 단 한 명의 천재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맥스웰이나 아인쉬타인도 그렇습니다. 그들도 역시 앞선 연구자들의 노력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공학(工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일하는 공학(共學)입니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면 다들 모여서 이번 여행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다시 생각해 보고 그려보고, 또 만들어 보시기를 적극 권합니다. 뭔가 만들어내거나 잘 안되면 제게 알려주세요.
여러분들은 저를 알고, 저는 여러분들을 압니다.
이제 우리의 관계는 무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