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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한설 Jan 03. 2023

Slice of Life #1 - 고향

Slice of Life

삶의 달콤씁쓸한 단면들


김윤경, 피아노 정원,2012, oil on canvas, 72.7 x 52cm



제 글쓰기 선생님 중 한 명인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빌 브라이슨은, 그의 칼럼을 모은 책 <Notes from a big country("발칙한 미국학"이라는 조악한 제목으로 번역됨)>에서 다음과 같은 조크를 던집니다.


생에서 결코 이룰 수 없는 세 가지:


(1) 통신사와 싸워 이기는 것(You can't beat the phone company)


(2) 웨이터를 한 번에 돌아보게 만드는 것(You can't make a waiter see you until he's ready to see you)


(3) 고향에 돌아가는 것(You can't go home again)


제 나이가 만으로 40살이고 고향을 떠나온지 20년이 되었으니, 인생의 절반을 고향에서, 나머지 절반을 서울에서 생활한 셈이 됩니다. 스무살을 기점으로 데칼코마니처럼 인생을 반으로 접어볼 수 있게 되었네요.


인구 5만명 남짓한 촌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그곳에서만 보낸 저와 제 친구들은 서울에 와서 많은 좌충우돌을 경험했습니다.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들이 상경하면서 겪은 "문명화(civilization)" 과정을 저희 또한 경험했습니다. 아직도 술 자리에 회자되는 몇 가지 소소한 에피소드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1) Scene #1: 교통카드가 없던 그 시절, 길게 늘어선 지하철 표 판매기 앞에서 처음 지하철 표를 구입할 때


동전을 기계에 넣음 → 거스름돈 출구로 동전이 그대로 나옴  → 동전을 다시 기계에 넣음  → 거스름돈 출구로 동전이 다시 나옴  → 대여섯번 반복


(경상도어로) "이거 기계가 고장난 것 같아요"


뒤에 서 계시던 분이 조용히 다가와 "1구간"을 누르고 동전을 넣어 주심  → 표가 나옴


(2) Scene #2: 촌놈임을 알아본 선배의 질문


"너는 패밀리 레스토랑 중에서 TGI가 좋아 Friday가 좋아?"


"그건 사람마다 다른 거 아닐까요?"


(3) Scene #3: 주말에 놀러가자는 "서울" 친구들의 제안에 장소를 고르던 중


"테크노마트 어때?"


"나 춤 잘 못 추는데..."


위 세 가지 상황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면, 당신은 뼛속깊이 서울인이거나 New Generation일 것입니다. 


이십대 초반에는 지금보다 고향에 훨씬 자주 내려갔습니다. 당시에는 KTX가 없던 시절이어서 고향에 가려면 서울역에서 무궁화호를 타야 했습니다. 5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표에 적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연착이 안 된 적이 없어 항상 6시간 이상 걸려 고향 함안역에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무궁화호가 특유의 덜컹거림으로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나아가는 동안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참으로 무심하게 흘러가고, 나이가 들수록 그 속도는 점점 빨라만 지는 듯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하다보니 어느덧 불혹이 되었습니다. 제 친구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우리는 고향을 떠나오면서 일차적으로 고향과 물리적으로 멀어지고, 타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우리와 고향 사이의 심리적 거리 또한 멀어져만 갑니다. 타향에서 만난 지인들이 많아지고, 마침내는 제가 고향에서 맺어온 인연보다 많은 숫자의 새 지인들이 생겨났습니다. 


뼛속까지 촌놈이던 제가 어느덧 서울의 맛집들과 멋집들을 열거하고, 한 손에 스타벅스 커피를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폰을 들고서 경제 기사들을 읽으며 도심을 거닙니다. 마천루 사이, 일면식도 없는 군중 속을 거니는 것이 언제 이렇게 익숙해 져 버렸는지, 불야성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면서도 고향을 떠올리지 않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집과 동등한 의미의 명사에 불과했던 "고향"이라는 말이, 이제 제 마음 속에서는 과거 기억들의 총합으로서의 "고향"이 되어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멀어지고, 그렇게 잊어가는 것이겠지요.


빌 브라이슨의 오래된 농담은 참으로 진실입니다. 


우리는 결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제 새로운 삶터이자 일터가 되어버린 이 서울에서 저는 아마도 확정적으로 남은 생을 살아내게 될 것입니다. 새 삶의 터전인 서울이 이제 저는 싫지 않습니다. 처음 10년은 좀 많이 힘들었는데, 그 다음 10년은 그보다 훨씬 괜찮았습니다. 이제는 서울 신도심의 경쾌함과 구도심의 고즈넉함, 파리의 몇 배에 달하는 면적과 그 면적에 기인하는 다양성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장소, 더 많은 경험과 추억들이 축적되면서 저는 온전히 서울에서 살아가는 서울인(Seoulite)이 되어 갈 것입니다. 


한 줌도 안 되는 서울 멤버지만, 저와 제 고향 친구들은 아직도 매우 자주 만납니다. 


도저히 못 찾을래야 못 찾을 수 없는 강남역 지오다노 앞 랑데뷰에도 실패하고, 서울 사람에게 길을 묻기가 겁이 나 무작정 지하철 역이 나올 때까지 직진만 하던 우리였지만, 그래도 이 삭막한 서울에서 어찌어찌 꾸역꾸역 살아남았습니다.


만날 때마다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실 때마다 백번, 천번도 더 언급된 서로의 어린시절 치부를 들추면서 정신 없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고향과 우리의 어린 시절을 추억합니다. 


우리는 이제 가끔 고향을 방문합니다. 고향에 가도 친구들이 다들 생업에 바빠, 아주 짧게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은 여전히 완벽한 시간입니다. 20여년의 세월을 단숨에 건너 뛰어, 우리가 함께 울고 웃었던 그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습니다.


고향을 가도 정말 별 거 없습니다. 


여전한 논과 여전한 논두렁길과, 여전한 국밥집과, 여전한 시장과, 여전한 대지와 여전한 밤하늘이 있고, 여전한 가족과 여전한 친구들, 여전한 친구들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실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언제까지나 여전하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끝으로, 이 세상 모든 촌놈들을 응원합니다. 쫄지마! 서울 애들 별거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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