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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May 06. 2024

세계 3대 미녀가 나라고?

는 꿈..

요즘 잠을  못 잔다. 잠에 들기만 하면 요란한 꿈을 꿔대는 통에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다. 괴물을 물리치는 꿈, 로또 번호 같은데 알고 보면 로또 번호 아닌 꿈, 돌연 삭발을 하는 꿈, 가족이나 친구와 싸우는 꿈, 그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꿈들까지 하루도 편안하게 자는 날이 없다.


흉흉하고 스펙터클 하고 가끔 애틋한 꿈들 사이에 최근에는 정말 어이없는 꿈을 꿨다. 아마도 회식 중인 것 같았다. 같이 일하는 선배들과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얼굴로 "근데 다들 그거 아세요?" 하면서 바람을 잡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즉슨 내가 세계 3대 미녀 중 한 명이라는 거였다(!!!). 3대 미녀인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여성은 무려 모니카 벨루치와 장쯔이였다(!!!!!!!).


그는 그게 기네스 같은 데라도 올라간 주지의 사실인 것처럼 굴었다. 모니카 벨루치, 장쯔이, 그리고 내가 자타공인 세계 3대 미녀란 사실을 난 이제야 알았는데 당신들은 그걸 알고 있었는지 묻는 투였다. 진지한 그의 물음에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심지어 그걸 듣고 있는 나까지도 조금 부끄러워할 뿐 '세계 3대 미녀'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조금도 부정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모니카 벨루치, 장쯔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미녀였다면 일요일 밤 집에 처박혀 글을 쓰는 대신 내 미모의 이로움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보다 공리주의적인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러질 못하고 브런치를 쓰는 처지인 난 한편으론 웃기고 한편으론 조금 열받는 이 꿈의 기원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친구들은 나의 숨겨둔 꿈이 세계 3대 미녀 되기 아니냐고 했다. 그런가. 미녀는 마다하지 않겠지만 모니카 벨루치까지 꿈꿔본 적은 없는데.. 장쯔이에 대한 시기 질투가 이런 꿈으로 표현된 걸까. 감히 제가요..


그나마 추측해 볼 수 있는 현실의 단서란 요즘 하루가 다르게 처지는 듯한 피부가 신경 쓰였다는 사실. 20대 때야 꾸밈 노동에서 자유로운 내 모습이 아무렇지 않았고, 오히려 좋았다. 30대가 넘어가니 내가 믿었던 나의 자유로움에 기만이 섞여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곳곳에 패인 나이 듦의 흔적이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조급하고 불안해진다. 피부과를 안 다녀도 될까, 좋은 화장품을 안 써도 될까. 아, 난 젊음의 힘에 기대 왔을 뿐,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진짜 자유로울 자신은 없는 거였구나. 꾸미지 않아도 예쁘게 보이고 싶은 꾸안꾸의 심리처럼 말이다.


나이 들어도 나이 안 들어 보이고 싶다. 이렇게까지 젊음과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된 내가 별로다. 원래 이랬던 게 아니라 끝없이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라고 강요하는 미디어의 메시지에 넘어가버린 거라고 믿고 싶다. 세계 3대 미녀보다도 나를 옭아매는 것들에서 자유로운 어른으로 크고 싶었는데. 30대의 나는 생각보다 유약하구나. 별로다. 그래도 아직은 해방이나 자유 같은 걸 꿈꾸는 사람이고 싶다. 오늘 밤에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꿈을 꿨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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