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으로 이사를 오면서는 집안의 여름 풍경이 달라졌다. 그때는 없고 지금은 있는 것.. 바로 에어컨이다.
독립해 내 공간을 갖기 시작하고서는 한 번도 집에 에어컨이 없었다. 늘 에어컨 등 옵션이 없는 깡통 집에 들어갔었고, 들어가서도 굳이 에어컨을 달 필요를 못 느꼈다. 더위를 많이 안 타는 편이기도 하고 그때만 해도 분명 여름이 이만큼 덥지는 않았으니까. 간혹 열대야에 잠을 못 이루는 밤들을 겪기는 했어도 어차피 1년에 며칠뿐이니까. 그런 밤들은 집에 에어컨이 꼭 있어야 하는 이유가 되진 못했다.
반면에 이 집엔 들어올 때부터 에어컨이 달려있었다. 없는 걸 안 쓰긴 쉬워도 있는 걸 모른 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에어컨이 없이 못 사는 사람처럼 온종일 에어컨을 틀어놓고 살고 있다. 해마다 뜨거워지는 여름이 좋은 핑계기도 하고, 에어컨의 존재가 전에 없던 수요까지 새롭게 만들어낸 면도 물론 있다. 길어지는 장마에 진짜 불볕더윈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온종일 에어컨을 틀고 있는 걸 보면.
굶어 죽는 북극곰이나 이상기후로 목숨을 잃은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공통의 책임감을 느껴왔다. 에어컨 없는 삶에 소소한 자부심을 느껴왔던 이유다. 하지만 지금은 에어컨이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오면 이런 망설임은 점점 더 커져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