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반성문
옆 건물에서 일하는 동료 리와 점심에 만나 평양냉면을 먹은 날이었다. 12월의 겨울이었지만 평년보다 푹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고, 리와 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면을 국물까지 비운 뒤 조금 빨개진 코를 하고 카페를 향해 걷고 있었다. 서초동의 거리는 초록빛이 하나 없이 휑했다. 그 흔한 크리스마스 전구는커녕 서류가방을 들고 바쁘게 걷는 변호사들만 바글바글했고, 정의를 호소하는 1인 시위대의 확성기 소리만이 찢어질 듯 시끄러웠다.
카페로 향하는 10분 동안 대화 주제만큼은 퍽 12월스러운 것이었다. 올해 가장 즐거웠던 일, 행복했던 일, 잘한 일에 대해 묻는데 시위대의 소란 때문인지 대화에 자꾸만 마가 떴다. 그런 리와 나 모두가 말이 많아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올해 가장 후회스럽고 창피한 일이 무엇인가 이야기할 때였다.
리는 며칠 전 네이버에서 해외 직구로 커피 한 박스를 샀다고 한다. 희귀한 식재료나 술 같은 것들을 모았다가 남들에게 대접해 주곤 하던 리는 이번에도 두근대며 배송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웬걸, 기다리던 물건은커녕 추가 요금을 요구하는 메시지만 온 것이 아닌가! 재고가 떨어져 물량을 더 확보해야 하는데 하필 그 사이에 환율이 올랐다는 설명이었다. 납득할만한 이유였고 충분한 사과도 있었지만 그런 건 리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늘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띠고 여기저기 툭툭 끼어들곤 하는 걔가 '머리끝까지 화가 난' 모습이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어쨌든 리는 몇 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하는 이 상황의 부당함을 따지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더 극진한 사과를 받아냈다고 했다. 그러고선 주문을 취소했다.
비슷하다면 비슷한 경험이 나에게도 있었다. 서초동까지 날 보러 와준 친구와 식사를 한 날이었다. 와인을 3분의 2 정도 비웠을 무렵 10분 뒤에 나가달라는 청천벽력 같은 안내를 받았다. 만석일 때는 2시간으로 이용 시간이 제한된다는 것인데 아무런 안내를 받지 못한 나는 억울하기만 했다. 이럴 거면 와인을 병이 아니라 글라스로 시켰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려는 순간, 다행히 다른 빈자리가 생기면서 우리는 와인 한 병을 비울 시간을 더 벌 수 있었다. 그런데도 구겨진 기분이 펴지질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별점 테러를 했다. "시간제한을 미리 안내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쏘아붙이듯이 쓴 나의 리뷰는 며칠 뒤 식당으로부터 블락 처리가 됐다. 식당은 정말 죄송하다는 사과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 일이 있은 후 리는 자신이 분노의 타이핑으로 보낸 메시지가 자기 전마다 떠오른다고 했다. 나 역시 내가 쓴 별점테러를 지울까 말까 며칠을 고민한 건 마찬가지였다. 리와 나 모두 격무로 인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때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핑계 같았다. 리라면 모를까 자영업을 하는 엄마를 둔 나는 사람들이 매기는 별점에 누군가의 생계가 얼마나 휘청일 수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질된 시장 논리를 앞세워 골목 구석구석까지 별점으로 줄 세우는 플랫폼 경제의 생태계를 누구보다 못마땅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돈 몇 푼에 내가 누군가를 평가할 권리를 가졌다는 느낌을 잠시나마 받았던 것 같다. 각종 플랫폼들이 나에게 심어주려고 했던 바로 그 느낌을 말이다.
비슷한 후회와 창피를 가진 리도 나도 새해의 목표가 같았다. 그런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것. 그런 사람이란 무엇인가. 돈이든 시간이든 가진 것을 지나치게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모든 일의 합리성을 따지려 드는 사람. 수가 틀리면 누군가의 입에서 기어이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야 마는 사람. 술 줄이기, 꾸준히 운동하기, 올해엔 진짜 영어공부 시작하기... 늘 그랬듯 공수표로 돌아갈 많은 새해 목표들에 어려운 미션 하나가 더 추가됐지만 마지막 네모칸만큼은 빈틈없이 채워져 있는 걸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