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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Jul 09. 2023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

만약 세상이 끝난다면

열차 문이 열리자 여름밤의 습한 공기가 피부에 눌어붙었다. 소문만큼 덥지는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역에 내렸다. 오락가락 비가 온 덕분이리라. 초복이 지나지 않은 7월 초인 데다 해가 떨어진 지도 한참된 시간이어서 그럴 수도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언제부턴가 더위를 많이 타게 된 엄마에게도 견딜만한 날씨일 거였다.


자정이 가까워가는데도 서대구역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손부채질 하는 무리를 따라 1번 출구로 나가니 청주에서 내려온 형부의 차가 비상등을 켠 채 날 반기고 있었다. 조수석엔 아빠가, 뒷좌석엔 엄마 언니 동생 그리고 조카 대추가 타고 있는 차였다. 나까지 몸을 구겨 넣자 진즉 정원을 초과한 차는 더 좁아졌고 엄마의 목소리가 그 공간을 쉴 새 없이 매웠다. 엄만 분명 평소보다 더 수다스러웠다. 한참 늦은 저녁을 위해 24시간 여는 식당을 찾아 헤맬 때도 변해버린 고향 풍경에 대한 감상을 쉴 새 없이 늘어놓는 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랜만에 고향에 와 들뜬 사람처럼 비칠 거였다. 별로 맛있지도 않던 국밥 한 그릇을 싹 비운 엄만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사람이 왜 이렇게 없냐, 객 맞이 준비가 왜 이리 덜 됐냐, 불만을 늘어놓기 바빴다.


거긴 투병 끝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빈소였다.




엄마가 어떤 딸이었는지 난 알지 못한다.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외할머니와 연을 끊다시피 했다. 그 세월이 너무 오래된 나머지 이젠 그로 인한 어떤 결핍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차라리 날 때부터 엄마라는 이름을 몰랐고 그래서 아무런 추억도 감정도 없다고 하는 게 더 그럴듯했다. 당신은 빈말로도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당신이 교복을 벗기도 전에 돌아가신, 고명딸 당신을 무척 귀여워했다던 아버지는 늘 사진을 품고 살 만큼 그리워했어도 말이다.


엄마가 친정과 왕래하지 않는데 나라고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있을 리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땐 가끔 외할머니를 만났지만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외할머닌 외삼촌네 아들들은 맨날 안아주면서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언니와 난 맨날 혼내기만 했다. 그녀가 아들만 지독하게 편애하고 하나뿐인 딸에겐 평생 매정했음을 다 커서 들었어도 새삼스러울 것 없었다. 아들의 아들, 딸의 딸까지 대대로 이어진 그 뿌리 깊은 편애를 어린 나조차 분명하게 느끼며 자랐으니. 그래서 일요일 오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내일 아침 천천히 대구에 가겠다고 했다. 엄마를 잃은 엄마가 아주 많이 울고 있다는 소식을 동생에게 듣기 전에는 그러려고 했다.




막차를 타고 내려가 만난 엄마는 외할머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은 눈을 하고서는 평소보다 많이 말하고 많이 먹는 게. 외할머니의 영정사진 앞에선 정작 이상할 만큼 울지 않는 게. 하지만 그런 상태는 별로 오래가지 않았다. 입관과 발인을 거치면서 유예된 이별이 천천히 닥쳐왔고 그러면서 엄마는 외할머니를 영영 잃었다는 걸 차츰 실감하는 듯 보였다. 커다란 슬픔을 분할납부하며 매번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저 많은 눈물을 한 번에 쏟아내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나아 보였다.


곁에서 지켜본 장례의 절차는 매 순간이 대단히 상징적이었다. 관의 문을 닫는 건 이승의 문이 닫히는 걸 뜻한다고 했다. 향을 피우는 건 영혼을 부르는 행위, 술은 육신을 부르는 매개라고 했다. 그렇게 불러낸 외할머니가 촉을 통해 식사를 하며 혼의 식사란 우리가 밥 아홉 숟가락 먹는 시간만큼 걸리는 법이라고도 했다. 이런 설명을 딴 데서 들었다면 난 좀 웃었을 것 같다. 유치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근데 직접 겪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 이렇게까지 엄마를 울게 하는 일은 자연법칙을 따르는 언어, 그러니까 숨이 멎고 심장이 멈추면서 그대로 생이 다했다는 식으로 설명돼선 안 될 것 같았다. 과학으로 이해될 수 없는 어떤 영적인 연결이 아직은 외할머니와 엄마를 이어주고 있어야 했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진짜로 보내줄 수 있을 때까지는 그래야만 했다.




외할머니가 잠들어있는 관의 문이 닫히기 전, 그러니까 이승의 문이 닫히기 전 마지막으로 행해진 의식은 묶인 끈을 푸는 거였다. 이승에서 맺은 모든 인연을 푸는 의미라고 했다. 난 그 말이 정말 무섭게 들렸다. 이제 다 끝이라는 게 그때 실감 났다. 엄마가 시장 한복판에서 엄마 손을 놓친 어린아이처럼 "엄마, 엄마"하고 울부짖기 시작한 것도 그 순간이었다. 간절히 부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던 이름을 부르듯 온통 떨리는 목소리였다. 차갑게 식은 외할머니 몸 위로 무너져내리는 엄마를 보면서 난 생각했다. 엄마가 아무리 외할머니와의 인연을 끊었다 말한들 그건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엉키고 꼬여버린 인연이라는 건 예쁘고 둥글게 이어진 인연보다도 더 끈질기게 이어지는 무엇일지 몰랐다. 그래서 삶이 끝나고 세상이 끝나야지만 비로소 끊어질 수 있는 걸지도 몰랐다.


사실 엄만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미워한다고 했던 건 사실 지독한 사랑의 말을 뒤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정확하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응어리가 그런 식으로밖에는 표현될 수 없었을 거였다.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기만 한 두 사람의 어긋난 세월이 엄마의 진심을 그런 식으로 뒤틀어 버렸을 거였다. 모든 게 끝난 뒤에야 가능해지는 진심이 있다는 게 나를, 그리고 거기 모인 모두를 허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또한 내가 온 마음을 다해 미워한 사람들, 미워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엄마도 나도 세상을 살아가기엔 많은 게 미숙하고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쉽게 현혹되긴 마찬가지인 것만 같았다.


저승이 있다면 좋겠다. 인연의 끈이 끊어진 이후에야 마주할 수 있는 우리의 진짜 마음들이, 그곳에서는 서로에게 똑바로 전해지면 좋겠다. 사람이 죽을 때는 청력이 가장 늦게 손실된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당신을 부르는 걸,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한 걸 들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걸 들었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외할머니가 저승의 문 앞에서 언제까지고 엄마를 기다리면 좋겠다. 아주아주 먼 미래에 두 사람이 거기서 만나면 속 시원하게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가 화해도 하고 이승에서 못다 한 수다도 떨고 작아진 엄마가 더 작아진 외할머니를 안아도 주면 좋겠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엄마가 너무 힘들 테니까 가끔씩은 외할머니가 엄마의 꿈에 나와서 사랑한다고 해줬으면 좋겠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그런 꿈을 엄마가 꾸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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