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시 Jul 02. 2023

정말, 진짜, 너무!

직업을 갖기까지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쳤는데 막상 합격했을 땐 별 감흥이 없었다. 그때 난 툭하면 밥을 굶어 대체로 기운이 없었고, 열심히 해보려는데 잘 안되니까 부조리하다는 기분, 무력감 같은 걸 바탕화면처럼 지녔었다. 기쁜 일을 온전히 기쁘게 받아들이기엔 너무 지쳐있었던 것 같다.


남일보다 더 남일처럼 느껴지던 취업이란 경사를 실감하게 된 건 친애하는 동료 J 덕이었다. 전화로 합격 소식을 전할 때만 해도 그는 담백했다. 정말 축하해, 짧은 인사를 건네는 정도. 며칠 뒤 만났을 땐 조금 달랐다. 생각만 해도 벅차오르는 과거 어느 영광의 시절을 회상하는 듯한 말투로 J는 말했다. "너 합격했다고 연락 왔을 때 정말… 아, 진짜 기분이 너무 좋더라."


J는 호들갑을 떠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사실과 부합하는 말만 했고 남 기분 좋으라고 빈말하는 법도 없었다. 말도 글도 늘 군더더기 없는 그가 '정말 진짜 너무'를 한 문장 안에 구사했다는 건 그게 정말 진짜 너무 진심이라는 소리였다(그 순간 J의 눈이 그렁그렁했던 것도 같다!). 기어이 내가 하나의 문턱을 넘었음을 자기 일보다 기뻐했다는 거, 내색하지 않았지만 늘 나를 응원해주고 있었다는 거. 그토록 다정한 진심은 나를 좀 얼떨떨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날 우리는 이촌동에서 만나 평소처럼 밥 먹고 맥주 마시면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었다. 헤어지기 전에는 J가 취업 선물이라면서 만년필도 줬다. 그에게 무수히 많은 책을 선물 받아왔지만 다른 걸 받아본 건 처음이라 왠지 쑥스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 안에는 깜찍한 편지지에 쓰인 손편지까지 들어있었다. '정말 진짜 너무'보다 더 적확하게 표현된 격려와 응원이 거기에 있었다. 


"취업을 다시 한번 축하해. 언젠가 살다가 펜으로 세상과 인간의 어두움울 이해하고 표현해 줘. 너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나는 그 글을 열심히 읽도록 할게."


위로와 응원에 천재적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내겐 몇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J는 그중 한 명이다. 이 문장만큼 멋진 격려의 말을 쓸 자신이 내겐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받게 될 그의 편지를 과거의 내가 일찍이 엿볼 수 있었다면. 그러면 끝없는 터널 같았던 2년의 시간이 조금쯤은 밝아졌을 텐데. 그 미래의 미래에 와있는 지금의 나 또한 길을 잃은 기분이 들 때마다 이 편지를 찾아 읽는다. 어떤 다짐의 끝에 오늘이 왔는지를 기억하고 어떤 응원들이 내 곁에 있었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


그는 또한 빈말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로 내가 쓴 글은 모조리 찾아 열심히 읽곤 했다. 여기 쓰인 글은 빼고. 수년 전 준 편지를 두고 아직까지 주접떨고 있다는 걸 알게 하고 싶지 않으므로 앞으로도 그는 이 글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언젠가 이 계정을 발견하면 그는 밤을 새워서라도 모든 글들을 읽어줄 것이란 걸.



작가의 이전글 이게 내 한계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