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시 Jun 26. 2023

이게 내 한계야...

최근 알게 된 나에 대한 사실이 있는데 스트레스에 대한 자각과 반응이 느린 편이란 것이다. 어떤 일에 부딪히더라도 이겨낼 거란 낙천적인 믿음이 내겐 있고 그래서 뭐든 치밀하게 생각하기보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데, 그런 후에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나중에야 알아채곤 했다. 그것도 주로 편도가 붓거나 하혈을 하거나 하다못해 감기라도 걸려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더는 모를 수가 없을 때에. 운 좋게 몸이 멀쩡하면 '나 그때 힘들었네' 과거형이 될 때까지 스스로의 마음을 끝까지 모르기도 했다.


요즘 나는 무리하고 있다. 손 들고 하겠다고 한 회사 사이드 프로젝트로 업무 로드가 많아져 주말에도 일한다. 금요일 저녁에는 작가 수업을 듣고 금요일이 오기 전 퇴근 시간마다 숙제를 붙들고 씨름한다. 일요일 밤에는 이렇게 브런치를 쓰며 마무리. 혼자서 벌인 일이면 진작에 뭐라도 하나 때려치웠을 텐데, 공식적인 업무이거나 수업료를 냈거나 벌금과 우정이 걸린 탓에 그럴 수도 없다.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하는 욕심 역시 여전히 날 괴롭히고. 그 탓에 중간중간 아침 수영 가고 수영 과외 하고 헬스 가고 친구들이랑 시간 맞춰 합주도 한다. 무리무리...


이 모든 걸 거뜬하게 해낸다면 이건 갓생 자랑글이 될 테지만, 맨날 '하기 싫어!'를 외치면서 마감과 스케줄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다. 뭔갈 하고 있거나 마감을 걱정하느라 일주일 중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부끄러운 건 이 모든 걸 시작할 때 딱히 갓생을 살겠다고 의지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쉬엄쉬엄 다 할 수 있겠지 생각할 만큼 절망적인 시간 감각을 가졌던 것뿐. 혹은 나의 에너지와 능력을 과신한 걸 수도 있다. 충동에 죽고 충동에 사는 사람답게 이런 와중에도 친구들과 번개를 하거나 갑자기 산책을 하겠다고 할 일을 미룬다. 하지만 뭐. 장마 전 자전거를 탈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방금 다녀온 자전거 산책이 즐거웠으니 그걸로 됐다. 이렇게 생각하는 걸 보면 아직 정신 차릴 마음이 없나 보다.


하루 건너 하루 닥치는 마감과 스케줄이 아직은 할만하다고 믿고 싶지만 그간 쌓여온 데이터로 보아 번아웃이 멀지 않았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은데 그 끝이란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 신호등에 노란불이 있는 것처럼 누군가 경고등을 한 번씩 켜주면 얼마나 좋을까. 너의 한계를 실험할 작정이니? 하지만 여긴 진짜 마지막의 마지막이야! 하면서. 그러면 회사 사람들을 실망시키거나 나에게 실망하거나 의지를 산답시고 지출한 돈을 허공에 날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텐데. 정말이지 그런 결말은 앞으로도 보고 싶지 않다. 지금 여기가 나의 마지막의 마지막일까? 한 걸음만 더 가도 되지 않을까? 조금 속도를 늦추고 내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살펴봐야 할 때 같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를 우리이도록 만드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