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시 Jul 17. 2023

아무튼, 2도 5촌(?)

회사 일로 한동안 지방에 내려가 살게 됐다. 간단한 짐을 싸 부랴부랴 내려간 게 지난 주말, 학원에 가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서울에 올라온 게 이번 주말. 그러니 일주일 동안 ‘2도 5촌’ 생활을 한 셈이다.


인접 지역 출신으로서 애정을 담아 '촌'이라고 부르는 것뿐이지 이곳은 엄연히 도시이고 인구도 많고 규모도 꽤 크다. 영화관도 있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생활과 이곳 생활 사이에 ‘도’와 ‘촌’만큼의 간극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지하철이 없고 버스는 10분씩 기다려야 오고 그렇게 기다렸다 타도 앉아서 갈 수 있고 밤에는 개구리 소리가 들리는 그 모든 것들이 서울과 같을 수는 없다.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회사에 요구한 건 지난해 일이다. 하게 될 일이 재밌어 보였다. 여러 일로 소원 수리가 미뤄지며 간절했던 마음은 조금씩 변했고 그 얄궂은 타이밍에 발령이 났다. '왜 이제 와서…' 약간 투덜거렸다. 막상 지내다 보니 마음이 또 부침개처럼 홀라당 뒤집힌다. 더 바랄 게 없는 인사였다며 만족하고 있다. 일이 주는 재미도 있지만 이곳 생활에서 오는 기쁨이 큰 덕이다.


지방에서의 생활은 복잡할 게 없다. 회사, 집, 회사, 집, 끝! 물론 서울에서도 회사와 집만 오가던 날이 없었던 건 아닌데 그렇게 단순한 동선을 위해서도 지하철을 갈아타고 많은 동네를 지나고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스쳐야 했다. 여기선 안 그래도 된다. 차 타고 10분이면 집에서 회사까지 간다. 걸어서도 25분이면 간다. 가는 동안 사람도 차도 많지 않은 엇비슷하게 생긴 동네들을 지난다. 극히 단조롭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새로운 팀에 적응하느라 일이 바쁜데도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가 이거다.

   

말하자면 내겐 심심함이 필요했던 것 같다. 서울에서는 늘 바빴고 늘 뭔갈 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할 것만 같았다. 절반은 내 의지였고 절반은 떠밀렸다. 원래도 무료한 걸 잘 못 참고 일 벌이길 좋아하는데 서울의 어떤 분위기가 내 그런 면을 더 날카롭게 만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 있으면 안 그래도 될 것 같다. 조금 느려도 되고 심심해도 되고 인적이 드문 산책로를 아주 천천히 걸어도 될 것만 같다.


가족과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진 것도 좋다. 차 타면 40분이면 간다. 이게 뭐가 가깝냐고 할 수도 있지만 고속도로를 2~3시간씩 달려야 했던 서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이웃 동네다. 일이 조금 일찍 끝난 날에는 갑자기 집밥을 먹으러 집에 갈 수도 있다. 가족들이랑 둘러앉아 김치찌개 같은 걸 먹고 뜻 없이 켜둔 티비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다시 내 공간으로 돌아오는, 그런 한가한 저녁이 언제든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 저녁을 앞으로 얼마나 자주 맞게 될지는 다른 문제다. 어쩌면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안 갈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건 이런 생활이 언제든 가능한 선택지로 열려있다는 것. 돌아갈 곳이 생긴 것만 같다. 텅 빈 집 말고 온기와 복닥거림이 있는 진짜 집이.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서울에서 혼자 지내는 게 외롭고 버거웠나 보다.


한가한 저녁에도, 마감을 앞둔 주제에 잔뜩 대범해진 저녁에도 불쑥불쑥 불러내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산책하던 친구들과 멀어진 게 2도 5촌의 유일한 단점. 하지만 버스 타고 KTX 타고 다시 지하철 타면 DOOR TO DOOR 3시간이면 가니까. 이 정도면 우리 여전히 동네 친구 아니야? (아니다) 괜히 품이 커다란 사람인 척도 해본다. 3시간 걸려 서울에 가 저녁 먹고 다시 3시간 걸려 집에 오는 번개, 언제든 가능하다. 이 동네의 새로움에 취한 지금의 내겐 그런 것쯤!


고작 일주일 지내며 느낀 이 설익은 기쁨이 얼마나 갈진... 나도 모른다. 이 마음이 또 부침개처럼 뒤집혀 6개월쯤 후엔 너무 지루하다고, 얼른 서울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그때는 또 그때의 기분에 따라 훌쩍 떠나버리면 되니까. 지금은 이 도시의 속도를 닮아 내가 조금 더 느긋해지기를, 미적지근하며 가끔 다정한 유유한 날들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